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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 제32호

반성 없는 이재용 부회장 … 비호에 열 올리는 보수세력

노동하는 시민의 적, 삼성공화국 공범들에 대한 진짜 법정이 필요하다

  • 홍명교
 
지난 8월 7일 ‘삼성 공화국’의 수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마지막 공판이 열렸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을 대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433억원(약속금액 포함)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박영수 특검팀은 “경제계의 최고권력자”인 이재용과 “정계의 최고권력자”인 박근혜가 독대한 자리에서 오간 대화와 이후 수백억 원대 거래는 “뇌물을 주고받기로 하는 큰 틀의 합의를 하고 진행된 범행”이라고 규정하며, “전형적인 정경유착과 국정농단”이라고 밝혔다. 또, 이재용의 공범인 최지성, 장충기, 박상진에겐 징역 10년, 황성수에겐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여론 재판인가 기억상실증인가

보수언론과 재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이 재판이 법리보다는 ‘여론 재판’의 성격이 강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통상 형사재판의 결심공판에서는 수집된 증거를 전제로 첫 기일에 밝힌 공소사실 요지를 보완하고, 가중처벌 등 양형인자 위주로 처벌강도에 대해 설명한 뒤 구형을 내리는데, 특검이 법리 설명보단 “국민의 힘으로 법치주의와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는 등 감정에 호소한다는 것이다. 판사들이 법 이외의 요인을 염두하게 하니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300억 원의 돈이 최순실에게 건네진 것, 박근혜 정부의 관계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삼성 합병에 도움을 준 건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재용과 최순실이 특별한 친분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 이상, 삼성의 승마 지원과 청와대의 경영권 승계 지원은 대가를 전제로 한 거래다. 게다가 2014년 9월 박근혜와 이재용의 첫 만남 때부터, 박근혜는 유독 승마에 대한 지원을 부탁했고, 이재용은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만나 합병의 당위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 전직 임원들은 특검에서의 진술을 갑자기 뒤집어버렸다. 법정에서 이들은 이재용이 아무것도 몰랐으며, 합병 역시 무관하다고 우기고 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을 이용해 이재용의 ‘스마트 리더쉽’을 자랑하던 걸 기억한다면 코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을 ‘논란거리’로 만들려는 보수언론의 공세는 그들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를 상기하게 한다. 삼성의 노동자,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최상위층에서 국민들을 농락해온 공범들의 말만 논거로 삼는 것은 스스로를 우습게 할 뿐이다. 누가 공범들의 말을 믿고 판결을 내리는 게 타당하다고 하겠는가? 이번에도 삼성의 대국민 사기를 용인한다면, 과거 삼성이 자행해온 범죄를 다시 반복할 뿐이다.
 
에버랜드 사건과 비자금 사건 때에도 이건희는 불법·비리 혐의로 법정에 불린 바 있다. 이 사건 역시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고, 금세 사면 처리를 받았다. 삼성은 반성하겠다고 했지만, 그 후 어떤 반성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재용으로의 불법 세습을 위해 각종 암수를 동원했고, 'S그룹 노사 전략' 문건 사건과 노조 탄압, 박근혜 정부와의 뇌물 거래 등 온갖 범죄를 또 저질렀다. 그런데도 별 근거없이 용서한다면, 사법부 스스로 기억상실증 환자이거나 삼성의 하수인임을 인정하는 게 아닐까?
 
'S그룹 노사 전략' 문건
 

12년 감옥행도 모자라다

이재용에 대한 12년 구형은 당연한 결과다. 선고 역시 그에 부합하게 나와야 할 게다. 아니, 오히려 지금껏 이건희‧이재용 일가가 한국 사회에 심은 각종 적폐들에 비해 부족하다 할 수 있다. 단지 박근혜와의 뇌물 거래가 아니더라도, 이건희‧이재용 일가는 이 땅 평범한 노동자들의 삶을 심각한 수준으로 추락시켜왔다는 점에서 전 사회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삼성은 ‘무노조 방침’을 수십 년간 밀어붙이면서 무수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압살해왔다. 납치, 미행, 감금, 일상적 감시와 차별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노조 만들기를 좌절시키려 했다. 대한민국 헌법마저 무시할 수 있는 힘이 삼성에게 있었다.
 
삼성이 하면 모든 기업이 따라했다. 그 때문에 삼성의 노무관리는 한국 기업들의 ‘표준’이 됐다. 이는 삼성에서 일하는 20만, 삼성 하청 백만 노동자만이 아니라, 2천 만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약하고 축소시켰다. 노동 안전이나 직장 민주주의, 인권 따위는 요원한 일이었다. 노동권 제약은 삶의 추락으로 이어졌고, 그 피해는 온전히 대다수 국민에게 이어졌다.
 
뿐만 아니다. 삼성은 비용 절감과 이윤 추구를 위해 환경을 파괴해왔고, 시민 안전을 위협한 기업 범죄도 자행해왔다. 해외에서도 아동 노동을 착취하거나 심각한 수준의 장시간 노동 착취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획득해왔다. 이런 범죄들은 삼성 자본이 이건희‧이재용 일가 중심의 독단적이고 반민주적인 리더쉽에 의해 움직여왔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낼 공간도, 낼 수단도 없었다.
 
태안 앞 바다 기름 유출 사고
 

이재용은 정말 반성 했을까?

할 말이 떨어졌는지 지겨운 레퍼토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이재용이 구속되면, “삼성 내·외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 부회장과 경영진에 대한 재판에 따른 경영 공백이 발생”한다는 논리다. 삼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판 결과와 삼성의 미래를 연결시키는 데엔 이유가 있다. 삼성의 위기가 곧 한국 경제의 위기라는 걸 연결시켜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려는 것이다.
 
이는 삼성의 ‘시스템 경영’을 자랑거리처럼 얘기해왔던 과거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시스템 경영’이 사실이라면, 이재용 구속과 무관하게 자신의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고, 그룹을 정상화시키면 된다. 오히려 삼성 자본이 해야할 일은 노동자들에게 자행해온 각종 노동 탄압을 멈추고, 이들과 교섭에 임하는 일일 게다. 지난 8월 21일에도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수리기사 700여 명이 삼성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서초동 삼성 본사 앞 상경 집회를 연 바 있다. 최근 삼성 내엔 웰스토리, 엔지니어링, 에스원 등 여러 노동조합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1심 마지막 공판 최종진술에서 이재용은 자기는 몰랐지만 어쨌든 반성한다고 말했다. 억울하지만 뉘우치겠다는 식이다. 일부러 바보 행세를 하면서, 실제론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보수언론들을 동원해 특검의 기소가 근거가 없다거나, 증거가 흔들리고 있다는 등 터무니없는 얘기들도 쏟아냈다.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되는 것이 작금의 사태에 대한 삼성 자본의 전략인가?
 
그간 삼성은 이재용 일가에 부정적인 기사가 나올 때마다 입장을 밝히기보다는 초유의 언론 플레이를 통해 인터넷을 뒤덮곤 했다. 이는 그간 삼성이 언론들과 맺어온 ‘부적절한 관계’에서 기반한다. 삼성은 광고를 무기로 언론사를 압박해 삼성에 유리한 기사를 내게 했다. 얼마 전 <시사IN>의 보도로 밝혀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의 문자 통화 내역엔 언론사 간부들이 인사 청탁을 하고 광고 청탁을 하고 전 검찰총장이 인사 청탁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간 시민들이 삼성의 언론 관리 행위에 대해 가졌던 의심을 사실로 확인시켜준 셈이다.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의 문자 내역 ⓒ한겨레
 
삼성과 이재용이 진정으로 지난 과오를 뉘우친다면, 지금껏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보인 잘못된 방침들을 철회하고, 삼성전자서비스‧웰스토리‧엔지니어링‧에스원에서 노조를 세운 노동자들과 직접 대화에 임해야 한다. 또, 십여년 째 고통받고 있는 반도체공장 산재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죄하고, 최근의 교란과 피해자 분열 조장 등을 멈춰야 한다. 이런 조치들 없는 무죄 주장은 파렴치한 국민 사기에 불과하다.
 
이재용과 삼성 자본은 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며 끝까지 무죄를 주장할 것이다. 시간을 벌며 더 많은 자기편을 만들려 할 것이고, 반성하는 척 쇼를 하면서도 끝까지 범죄들에 대해선 부정할 것이다. 삼성에서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키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시민의 지지 속에서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사회운동 전반이 이런 움직임들을 지원하고, 전폭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그 힘만이 이재용 일가에 대한 진정한 처벌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침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이 8월 25일 1심 선고가 있을 법원 앞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삼성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일련의 촛불 항쟁이 이재용 구속과 박근혜 퇴진을 만들었듯, 삼성 내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와 사회운동의 강력한 연대만이 법정에서의 정의마저 만들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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