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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 제31호

생각마저 처벌하겠다는 일본 정부

일본 사회운동의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 이준혁
ⓒAP통신
 

‘생각을 처벌하는 법, 공모죄?’

공모죄(共謀罪). 이 세 글자로 온 일본 열도가 들썩였다. 범죄를 실행에 옮기지 않아도 죄가 되는, ‘생각을 처벌하는 법’이 공모죄 법안이다. 

야당과 시민의 반대가 들끓었다. 그러자 집권 자민당은 통상적인 법안 심사 절차인 법무위원회 표결을 포기했다. 대신 참의원 본회의에 바로 회부하는 ‘중간보고’(일종의 국회의장 직권상정)로 6월 15일, 공모죄 법안을 기습 통과시켰다.

최근 사학비리에 휘말린 아베 총리로서는 지지율 하락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공모죄 법안까지 통과되자 50~60센트 대를 꾸준히 유지하던 아베의 지지율은 2012년 2차 내각 출범 이래 최저인 36센트까지 떨어졌다. 일본 정치 향방의 시금석이 될 7월 도쿄도의회 선거에서도 자민당은 ‘역사적 참패’를 기록했다.

공모죄 강행 통과는 ‘정치인’ 아베로서는 확실히 ‘무리수’였다. 하지만 아베의 일본은 이를 통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 
 
ⓒ로이터

공모죄, 무엇이 문제인가

공모죄의 공식 명칭은 ‘테러 등 조직범죄 준비죄’.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테러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법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현행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겠다는 모의만으로도 처벌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왜 이 법이 문제가 되는지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범죄가 결과를 낳기까지는 4가지 단계를 거친다. 범죄의 합의(공모), 구체적인 준비(예비), 범죄의 실행 착수(미수), 범죄의 결과 발생(기수). 일본만이 아닌 대다수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형법은 기본적으로 ‘기수’ 단계에서 처벌이 가능하다. 즉, 범죄가 발생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에만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공모죄 법안은 범죄를 합의했다는 것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대 형법 체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전부터 극히 예외적인 사안에 국한해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범행 착수 이전인 공모 단계에서 처벌이 가능토록 되어 있었다. 여기서 ‘중대한 범죄’란 내란, 사전(私戰) 준비, 폭발물 관련 등 71개 범죄를 일컫는다. 공모죄에 반대하는 일본의 법조인들은 하나 같이 새로운 법 없이도 테러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공모죄의 진정한 목적은 따로 있다.

공모죄의 적용 대상은 이른바 ‘조직적인 범죄집단’이다. 범죄집단이 되는 요건은 조직의 구성 목적 자체가 4년 이상의 징역, 금고의 죄를 실행하려는 경우다. 이 대목에서 흔히 ‘야쿠자’를 떠올리겠지만, 범죄가 목적인 단체라고 스스로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판단은 검경 등 조사기관의 판단에 달려있다. 게다가 적법한 단체가 위법행위를 계획할 경우 그 시점에서 조직적 범죄집단이 될 수 있다. 회사나 시민단체, 노동조합도 범죄를 공모했다고 정부가 판단하면 즉시 공모죄의 대상이 된다.
 
 

공모죄에 반대하는 일본의 시민단체가 발간한 팜플렛(《一からわかる共謀罪》)에는 공모죄가 통과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을 설명하고 있다. 자위대, 미군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도로 연좌농성을 계획하기 위해 현지 지리를 조사할 경우 조직적 위력의 업무 방해 공모죄가 된다.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자위대 기지에 붙일 ‘죽이지 마라’ 스티커를 사려고 ATM에서 돈을 인출하면 건조물 손괴 공모죄가 된다. 심지어 안전수당을 깎으려는 회사의 조치에 분노하여 사장의 사무실 앞에서 연좌농성을 계획했다는 이유만으로 조직적 감금 공모죄로 처벌대상이 된다.
 

아베는 감시사회를 완성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이 반대 측의 과장된 사례로 보일 수도 있다. 아베 정부도 비판을 의식했는지 ‘일반 시민이나 단체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논란을 진화하기 바쁘다. 하지만 한켠에서 나오는 여러 ‘막말’들은 공모죄를 통과시키려는 진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지난 4월 자민당 주최의 한 행사에서 시민들에게 배포한 유인물에는 평화운동 단체나 야당을 공격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평화를 외치면서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진짜 물러빠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공모죄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물론, 보통 사람이 체포될 일은 없어. 술집이나 SNS에서 농담하다가 체포!? 이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이야말로 공모죄가 생기면 곤란해서 그런 거 아닐까?” 심지어 자민당의 한 의원은 공식 석상에서 “미군기지 반대운동이나 탈원전 운동에도 공모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단지 그들의 막말이 문제가 아니다. 아베 정권은 반대파를 짓밟고 감시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조치들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2013년 12월 통과된 ‘특정비밀보호법’은 일본의 안보에 대해 은닉할 필요가 있는 정보를 특정비밀로 지정하고 해당 사항을 누설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을 통해 국가가 자행한 부당한 행위를 내부고발하거나 보도하려는 언론을 처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지금도 제기되고 있다. 2016년 5월에는 도청법과 형사소송법이 개정됐다. 이전에는 수사 목적으로 도청을 할 경우 경찰에 의한 무작위 도청을 제한하기 위해 제3자의 입회하에 통신사업자의 시설에서 제한적으로 할 수 있었는데, 이것마저 없앤 것이다. 조사기관에 의한 무제한적인 도청이 가능해진 셈이다.

이 조치들과 공모죄가 결합되면 끔찍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한 언론사가 자위대나 국방 관련 비리를 취재한다고 치자. 국가안보와 관련이 있다며 언론보도를 제한하거나 심지어 취재를 하겠다는 계획만 세우려고 해도 비밀보호법을 위반한 공모죄로 처벌할 수 있다. 경찰에 의한 도청에 제한이 없기에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간편하다. 심지어 해당 언론사가 ‘조직적인 범죄집단’인지 규정할 수 있는 권한도 조사기관에 있다. 검경 관계자들의 로비를 의심할 정도로 아베 정부는 그들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한 셈이다.
 
ⓒ시사in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가는 일본

공모죄 법안은 일본 내에서도 제국주의 시절 ‘치안유지법’과 비교된다. 1925년 채택된 치안유지법은 천황제와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결사를 조직하거나 그에 가담, 지원한 자를 사형, 무기징역 등에 처하는 법률이었다. 초기에는 일본공산당을 탄압하려는 의도의 법이었지만 점차 여타 사회주의 운동 세력과 노동운동, 종교로까지 확대됐다. 일본 정부는 사회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특별고등경찰 제도를 도입해 무자비한 고문을 자행하기도 했다. 지금도 국가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치안유지법피해자연맹’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만 고문 또는 처형당한 피해자 수가 7만 5781명에 달한다고 한다.

공모죄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은 단지 법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치안유지법이 시행된 이후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일본은 전쟁의 길로 나아갔다. 공모죄는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가는 징검다리인 것이다. 실제 아베 총리는 2020년에는 집단적 자위권과 교전권,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일본 사회운동의 갈 길은 멀다

현대판 치안유지법이라는 비판에 아베 정부는 다시 막말로 응수했다. 카네다 카츠요시 법무대신(법무부장관 위치)은 중의원 법사위원회에서 “치안유지법은 제정, 집행 모두 적법했다”고 발언했다.

공모죄가 중의원을 통과한 5월 19일, 국회의사당 정문에는 1500명의 시민들이 모여 반대 집회를 열었다. “공모죄는 지금 즉시 폐기!” “국민을 얕보지 마라!” “카네다는 나와라!”라는 구호가 하루 종일 울려 퍼졌다. 참의원마저 통과한 6월 15일에는 9000명의 시민들이 “여론을 무시하지 마라!” “독재국가!”라며 아베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전쟁법 반대 운동을 통해 등장한 20~30대 청년들의 운동이 이번 공모죄 반대 운동에도 주력이 되었다. 공모죄에 대해 설명해주면 ‘엄청 무서워’ ‘일본, 뭐가 잘못되고 있는 거 아닐까’라며 정치 얘기를 나누는 젊은이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TheJapanTimes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공모죄와 비리 사건으로 자민당은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참패했지만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대안세력이 아니었다. 대신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도민퍼스트회’가 압승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하게 떠오르는 고이케는 2007년 1차 아베 내각 당시 방위상(국방부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아베 세력의 중추를 이루는 극우 정치세력 ‘일본회의’에도 가담했던 고이케는 아베 못지않은 외교적 강경파로서 일본의 콘돌리자 라이스로도 불린다. 2003년에는 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고이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는 향후 헌법개정과 일본의 전쟁국가화의 향방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베 내각이 정치적 위기를 맞더라도, ‘전쟁할 수 있는 국가’ 일본의 시스템은 완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테러 방지, 국가안보 등은 국가가 민주주의를 탄압할 때 단골로 끌고 오는 구실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졌을 때 전쟁을 막을 힘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일제는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었고, 그 대가는 타국과 일본의 민중들이 짊어져야했다. 다시는 그러한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일본 사회운동의 목소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하는 이유다. ●
 
 
필자 소개

이준혁 | 만화, 게임을 좋아하다보니 일본에 관심이 많아졌다. 가끔은 동아시아 민중의 연대와 평화 같은 고민도 한다.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에서 일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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