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경제
- 2017/08 제31호
한국의 수출딜레마, ‘노조 할 권리’ 확대로 해결하자
문재인의 경제 정책, 성공할 수 있을까? ②
지난 호에서는 정부의 일자리와 부동산 정책을 살펴봤다. 이번 호에서는 경제정책의 또 다른 핵심이라 할 수출 관련 문제들을 살펴본다.
무역흑자와 최저임금, 한국경제의 기막힌 두 풍경
최저임금이 결정되자 경제학자 일부와 보수 언론들이 난리가 났다. 이들은 법정 최저시급이 1060원(2017년 대비 16퍼센트) 올라 내년에는 지불능력이 없는 자영업자가 줄도산하고 실업률이 급등해, 노동자의 소득도 결과적으로 하락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장의 해외이전이나 구조조정을 눈치만 보고 있던 기업들은 기회는 찬스라고, “최저임금 탓에 한국에서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 말만 듣고 있자면 최저시급 1060원 탓에 나라가 망할 것 같다.
그런데, 시선을 자영업에서 나라 경제 핵심부로 돌려보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우리나라는 지난 5년 간 다른 나라와 대외거래에서 4210억 달러(한화 약 500조원) 경상수지 흑자를 봤고, 순위로 보면 세계에서 3위였다. 우리나라 위에는 독일과 일본이 있고, 우리나라 바로 밑에는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있다. 세계 최강의 무역흑자 나라, 연 100조원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나라에서 최저시급 1060원, 총인건비 약 3조원(정부 추산) 올랐다고 “나라가 망한다.” 난리치는 꼴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경상흑자는 2011년 190억 달러에서 2016년 990억 달러로 증가해 그 상승 속도 또한 세계 최고였다.
장기간의 무역 흑자로 인해 현재의 한국은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가장 부자인 상태다. 우리나라는 2014년 최초로 순채권국으로 돌아서, 2016년 말 우리나라가 해외에 보유한 금융자산이 외국이 국내에 보유한 금융자산보다 2780억 달러 많다. 자산을 보유할 권리가 아예 없었던 식민지 시기, 해외차관이 없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던 해방 후 수십 년의 산업화 시기, 대외부채로 경제 주권 일부를 내줘야 했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시기를 생각해보면 정말 격세지감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한국은 기적의 나라, 희망의 나라가 아니라 ‘헬조선’이라고 불린다. 보수 세력은 연 100조 원의 무역 흑자 속에서도 연 3조 원의 최저임금 상승에 기겁을 하고 난리를 친다.
요컨대, 수출과 내수가 괴리되고, 수출 대기업의 부가 국민경제로 순환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도, 최저임금 인상도 조만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수출로 생산한 부가 국내로 순환하지 않으면 정부 세입도 내수 서비스 부문의 임금 증가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문재인 정부의 경제개혁은 이 부분을 빗겨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권 초라 그럴 수도 있지만, 수출 재벌보단 프랜차이즈나 유통 대기업 같은 정부 입장에서 다소 ‘만만한’ 상대에게 개혁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수출재벌의 탄생과 성장
우리나라의 경제문제는 수출 증감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상당수다. 수출과 내수의 괴리, 재벌의 독식, 서비스 부문의 저임금 등 오늘날의 경제 문제에 국가의 수출 정책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수출이 경제정책의 핵심이 된 것은 1960년대다. 박정희 정권은 감소하는 미국의 무상원조와 차관을 보완하기 위해 수출에 매달렸다. 한국 자본주의는 일제 수탈과 한국전쟁으로 제대로 된 자본축적의 기회를 갖지 못했고, 만성적 자본 부족 상태를 내부적으로 피할 방법도 딱히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외국 자본을 가져오는 것만이 살길이었던 것이다. 1960년대 초부터 의류, 가발, 합판, 전자기기 같은 노동집약적 제품의 수출이 크게 증가하기는 했지만 나라 경제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가운데 1964년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 엄청난 규모의 전투병을 파병하며 미국의 전략적 지원을 받아내려 했다. 우군이 별로 없던 미국은 한미동맹을 전략적 지위로 격상시키며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고 한국산 제품 수입을 늘렸다. 박정희 정권은 이렇게 확보된 자본을 1973년부터 자주국방 산업정책에 쏟아부었다. 탱크를 만들기 위해 철강, 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자동차, 전자 등을 육성하겠다는 것으로 이를 박정희는 이를 ‘중화학 공업화’라고 불렀다. 중화학 공업 기업으로 인정받으면 마이너스 금리 대출이 가능했는데, 1950년대 적산불하와 미국 무상원조를 독점했던 재벌 대기업들이 또 한 번 이 자금을 독차지했다.
우리나라의 재벌은 1970년대까지 일본 적산, 미국 원조물자, 그리고 미국의 냉전 자금을 독식해 성장했다. 매판자본과 크게 차이가 없던 재벌이 수출재벌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건 1980년대 3저 호황 덕분이었다. 박정희의 중화학 공업화는 사실 실패한 경제정책으로 1980년대 초반까지도 중화학 공업의 가동률은 매우 낮았고, 자본 생산성도 1970년대 중반부터 계속 폭락 중이었다. 그런 중화학 공업이 3저 호황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저금리, 저유가로 제조업 비용이 하락한 가운데,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평가절상돼 일본 기업의 수출 시장 일부를 한국 기업들이 장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986~1989년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며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경험했다. 이 호황의 최대 수혜자는 당연히 재벌들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1979~1981년 대위기에 빠진 중화학 공업 재벌 대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구제금융을 지속해서 제공했고, 산업 합리화라는 명분으로 이들의 독과점을 지원했다. 또한 물가안정을 위해 저곡가 정책을 더 가혹하게 밀어붙이고, 임금도 통제했으며, 환율도 낮게 유지해 가계 소득의 구매력을 희생시키며 수출재벌의 경쟁력을 높였다.
신자유주의 정책 하 수출재벌
3저 호황이 끝난 후 1990년대 초반 경기침체 속에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기존 수출 정책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했다. 금융규제 완화로 수출기업들이 자유롭게 해외차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고, 외국 금융자본이 더욱 쉽게 한국 자본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게 했다. 재벌들은 금융 계열사를 늘려 세계 금융자본의 하위 파트너가 되려고 했으며 대마불사의 믿음으로 3저 호황기에 버금가는 자본투자를 해외차입을 통해 단행했다.
이런 가운데 결국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졌다. 역사상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권은 IMF가 오히려 놀랄 정도로 아주 과감하게 시장 규제를 모두 해체했다. 부실이 심각했던 대우·한보·삼미 등의 재벌이 해체되었지만, IMF 구조조정 과정에서 삼성·현대차·LG·SK·현대중공업·두산·한화·롯데 등의 그룹은 독점을 높이고, 부채를 털어낼 기회를 얻었다. 2000년대 금융세계화로 인해 선진국들과 신흥시장의 소비가 증가해 수출도 날개를 단 듯 다시 증가했다. 금융세계화에 동참해 동북아금융허브, 한·미자유무역협정 등을 추진한 노무현 정부는 결과적으로 수출 재벌들의 경제집중력을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높였다. 특히 이런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은 수출재벌의 초민족 기업화와 이에 따른 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시켜, 이후 우리나라 국민경제 성장 속도를 더욱 낮추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7~20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심각한 저성장 상태로 돌입했다. 이 가운데 보수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전통적인 수출기업 지원 정책들을 사용했다. 환율을 낮게 유지해 노동자 구매력 희생 위에 수출을 지원하고, 법인세 인하, 정책자금 등으로 정부가 직접 기업들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노조법 개정과 노동운동 탄압으로 수출제조업 기업 노조의 힘을 많이 약화시킨 것 역시 두 정권이 재벌에게 준 선물이라 할 것이다. 한편, 노무현 정부가 제조업 수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마련한 서비스업 수출 전략이 두 정권 하에서 본격화됐지만, 생산성 고도화보다 저임금 노동에 익숙한 재벌들은 그다지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성장한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은 초민족 자본으로 성장하며 국민경제와 괴리되기 시작했고, 반대로 내수 시장의 재벌들은 저임금과 시장 독점력으로 이윤을 늘리며 국내 경제를 갉아먹었다.
요컨대, 한국의 수출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국민경제 전체의 부를 늘리는 방식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1987년까지는 수출재벌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저곡가, 저임금 체제로 농민과 노동자를 수탈했고, 1997년 이후에는 세계화와 탈규제라는 명목으로 경쟁력 있는 재벌들이 국민경제에서 탈출해 저 혼자만의 부를 쌓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 국민 모두의 힘으로 이뤄낸 수출이지만 그 성과는 오로지 소수의 재벌이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폐해진 내수 부문 역시 이와 관계가 깊다.
최근의 수출 경향과 시사점
2012년부터 급증한 무역 흑자는 수출량의 증가보다도 수입량의 급감과 관계가 더 깊다. 원자재 가격 하락이 결정적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바일기기, 자동차 등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수출을 주도했다. 30대 재벌은 이제 2대 재벌과 나머지로 재편되었다. 10여 개의 대기업이 무역수지 흑자 대부분을 책임진다.
이들의 부가 국민경제로 선순환하려면 수출 대기업이 고용과 조세에 보다 책임감 있게 나설 필요가 있고, 제조업 공급사슬과 수출제조업이 국내서비스업에 지출하는 비용이 전반적으로 상승해야 할 것이다. 앞서 봤듯 수출재벌의 부는 결코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며, 국민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국민이 골고루 성장 혜택을 누리는 것은 소수의 대기업 수출을 국민경제 전반에 순환시킬 수 있는 체계를 만든 것과 관련이 깊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런 부의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전국적·산업적으로 교섭하고 투쟁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디 ‘노조 할 권리’를 크게 확대하는 것으로부터 한국의 수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