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7/06 제29호

군인이 사랑한 죄

  • 한가람
친구 중에 장교로 복무하면서 연애를 한 게이가 있다. 상대방은 병사였다. 군에서 만난 것은 아니고, 바깥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서로 부대도, 소속 군도 달랐다. 군인이라고 서로 사랑이 싹트지 않을 리가 있나. 둘은 휴가나 외박을 나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듯 즐겁게 데이트를 하는 예쁜 커플이었다. 

군형법상 ‘추행’죄(현행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활동을 하며 이 조항이 동성 군인 간의 사랑을 처벌하는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많은 사례들을 봐왔다. 그랬기에 마냥 축하해 주지만은 못했다. 그 커플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군형법에 ‘추행’죄가 있으니 조심하렴. 한 번 잘 때마다 죄의 숫자를 하나씩 세는데, 너희들은 대체 몇 번의 범죄를 저지르는 거니?”라고 웃으며 얘기하기도 했었다.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사실 두렵기도 했다. 그 친구들도 농담으로 받아쳤지만, 제도가 자신들을 옭아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군 당국이 이 조항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색출’당해 기소될 가능성은 낮았다. 그러나 실수로라도 부대에 알려진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었다. 

전역을 했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역 후에도 나는 그 친구들에게 “공소시효 동안(5년)에는 조심해라”라는 말을 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고는 했다. 이제 그 친구들의 공소시효는 지났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될 가능성이 낮은 잠재적 공포였지, 실제로 누군가가 자신의 정체성과 연애관계를 파헤칠 것이라는 실질적 위협은 아니었다.

군인 간 합의된 성관계에 대해 이 조항을 적용해서 처벌한 사례들은 종종 있어왔다.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마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처벌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일처럼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해서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다. 상존해 왔던 이 조항이 주었던 잠재적 공포가 현실적 위협이 된 것이다. 군대는 이렇게 무리하게, 또 조직적으로 성소수자 ‘색출’ 수사를 하고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바로 이 군형법 제92조의6 때문이다.
 
이 조항에 대한 폐지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꼭 10년이 됐다. 평범한 성소수자 군인들을 가슴 졸이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고, 결국 기소와 구속·처벌까지 하는 법률이다. A대위에 대한 유죄판결을 가능하도록 한 법률이다. 당사자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다수의 시민들까지도 평등과 존엄이란 대체 무엇인지 회의하도록 만든 ‘동성애 처벌법’이다. 

5월 25일,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안 발의가 이루어졌다. 힘들게 발의 최소 요건에 딱 맞게 10명의 의원들을 모았다. 어렵게 발의된 이 법안이 활발히 논의될 수 있게 많은 힘이 모였으면 한다. 사법부가 아니면 입법부가, 입법부가 아니면 정부가, 정부가 아니면 헌법재판소가 나서도록 할 것이다. 이 조항, 이번에는 꼭 폐지해야겠다. 

군인 동성커플이 우리 사귄다고 하면, 몇 년 전처럼 못되게 “조심하렴”이란 말이 먼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정말 축하해!”라는 말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 《친구사이?》(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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