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7/07 제30호
노동시간 단축하면 우리 임금은?
지연된 시간, 지체된 권리
2003년 8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법정노동시간이 단축됐다. 하지만 그 성과를 노동자들이 누렸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일자리 창출효과에 대한 의견도 갈리거니와[1], 법정 노동시간 단축이 전체 노동시간 단축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논란이다. 2004년 이후의 노동시간 감소 추세가 법정노동시간 단축의 영향인지, 경기불황과 함께 2000년부터 시작된 전체 노동시간 감소 추세의 연장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장근로시간이 도리어 늘어난 흔적도 발견됐다.(어수봉외, 2007)
이는 법정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노동자계급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보단 상당히 불평등하게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주 40시간으로의 법정노동시간 단축이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됐고, 직업군별로도 하루 8시간·주5일제가 현실화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2004년 1,0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법정노동시간 단축이 적용된 이래 5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생산직은 2012년부터 교대제 개편이 이뤄졌다. 통상임금 논의가 본격화되어서야 하루 8시간, 주5일제 근무가 현실화됐다. 강력한 노조 조직력을 갖고 있는 현대자동차 생산직도 2016년 1월, 8+8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으로 하루 8시간 노동을 기본 생산체제로 규범화했다. 대공장 생산직으로 확산되기 까지 무려 12년이 걸린 셈이다.
법정노동시간의 적용이 지체된 사이, 법정‘최대’노동시간은 도리어 확대됐다. 고용노동부는 “일주일은 주5일”이라며,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지 않는 행정해석을 유지했다. 그러다보니 주당‘최대’노동시간이 44시간일 때에는 64시간(소정44시간+연장12시간+휴일8시간)이었다가, 40시간 근무제에선 68시간(소정40시간+연장12시간+휴일최대16시간)으로 확대된 것이다.
법이 허용하는 주당‘최대’노동시간이 늘어났다. 이것이 고용유연성과 결합되면서 노동시간 유연성은 새로운 차원을 맞게 된다.
장시간 노동과 유연근무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동이동률(입직률+이직률)이 가장 높다.[2] IMF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제가 도입되면서 사실상 해고가 자유로워졌다. 또, 간접고용 확대, 노조 영향력 약화로 근로기준법 상 부당해고 금지조항이 무력화됐다.
노동이동률은 높은데 초단기근속자(근속 1년 미만) 비율도 30퍼센트 이상 유지된다. 청년·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단시간 일자리 비중도 확대되고, 비정규직의 노동시간 유연성도 급격히 심화된다. 법정‘최대’노동시간만큼 일하는 노동자들과 단시간·단기간 노동자들이 동시에 상존하면서, 노동자 내부에서 노동시간도 양극화되는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간 분포를 보여준다. 정규직의 경우 69.0퍼센트가 주 40시간 일한다. 비정규직은 34.2퍼센트만이 주 40시간 일을 하고 있을 뿐, 32.1퍼센트는 35시간미만 단시간 노동을, 나머지 33.7퍼센트는 연장근로를 당연시하는 일터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비정규직의 48시간 이상, 52시간 초과 근무 비중은 정규직보다 높다. 정규직은 11.4퍼센트, 8.1퍼센트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13.0퍼센트, 13.4퍼센트다. 심지어 52시간 초과 근무자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양적으로도 많다. 노동시간 52시간이 넘는 초과근무 비정규직은 112만 명으로, 정규직(87만)보다 25만 명이나 더 많다. 임금과 고용 양극화만이 아니라, 노동시간조차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업주들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재량근로시간제, 선택근로시간제, 보상휴가제 등 불법·탈법을 넘나들고 있다. 강제 조퇴(꺾기), 연차휴가 휴일 대체(유급휴가 대체) 등으로 추가비용 없이 노동자 개개인의 노동시간을 신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노무관리기법을 개발해왔다.
그 결과 시간당 임금은 더욱 낮아지고, 수당을 벌기 위해 잔업특근을 더 하려는 노동자 내부의 경쟁은 심해졌다. 고용유연성과 장시간 노동 관행에서 단기간·단시간 일하는 노동자층(반실업자층)이 늘고, 시간당 임금의 인상은 억제됐다. 악순환이다. 사업주들은 고용유연성, 임금유연성, 노동시간 유연성을 확대하면서 노동시간밀도(임금 지급 대비 노동력 사용시간)를 높여온 것이다.
더구나 장시간 노동과 함께 노동시간이 신축적으로 운영되면, 노조로의 단결 가능성도 희박해진다. 휴식 시간이 부족하고, 출퇴근 시간과 공간이 달라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법정‘최대’노동시간 52시간, 현실화해야 한다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제 도입이 지체된 사이 법정‘최대’노동시간은 오히려 확대됐다. 장시간 노동 관행은 지속되고, 단시간·단기간·탄력적 노동시간 운영이 가능해졌다. 노동시간마저 양극화된 상황이 유연화된 노동시간의 실상이다. 한편에선 과로사 위험을 동반하는 초장시간 노동이 존재하고[3], 다른 한편에선 반실업상태나 다름없는 불완전 취업이 존재한다.
이것의 한 축은 초장시간 노동의 존재 자체다. 따라서 법정‘최대’노동시간은 일단위든, 주단위든 철저히 제약해야 한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법정‘최대’노동시간으로 68시간을 묵인하는 노동부의 행정해석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행정해석의 폐기보다 법 개정을 통한 법정‘최대’노동시간 규제를 고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건 법정‘최대’노동시간인 주 52시간마저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시간 특례업종에 대해서도 단계적 폐지를 검토 중이다. 하지만 주 40시간 노동이 관례로 자리 잡은 업종만 폐지하고, 운수업, 방송업 등 노동시간이 60시간을 넘는 업종에 대해선 존치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흘리고 있다. 업계 현실이 구실이다. 포괄임금제 불법화도 이와 비슷한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노동시간 규제방안이나, 농어업·축산업에 대한 휴게·휴일시간 규제 방안은 일언반구도 없다.
현실적으로 법정‘최대’노동시간 문제를 우회한 법정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시간 유연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법정‘최대’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임금 삭감으로 귀결된다는 이유로 법정‘최대’노동시간 단축투쟁을 회피하는 것 역시 ‘임금 보전을 위한 투쟁’이 노동조합운동의 ABC라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법정‘최대’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손실 책임을 사업주들에게 묻고, 임금 보전을 위한 투쟁에서 노동조합 조직을 비약적으로 확대시킨 금속노조 경주지부의 경험을 되짚어봐야 한다.
법정‘최대’노동시간을 제한하고,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보전을 요구하는 투쟁은 노동자운동에게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첫째, 지체된 ‘노동시간 단축’을 현실화할 수 있다. 둘째, 장시간 노동으로 파편화된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셋째, 노동시장 유연화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 역시 마련할 수 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은 이 과제에 집중해 발언해야 한다. ●
- ^ 1) 김유선(2008)은 1980~2008년 사이의 법정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효과가 있었다고 보지만, 황선웅(2006)은 1989~1991년까지 법정노동시간단축과 2004~2005년 법정노동시간단축을 구별, 분석한다. 전자는 일자리 창출효과가 있었다고 보고, 후자는 일자리 창출효과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것의 원인으로 노동시간 단축 과정의 차이에 주목한다. 1989~1991년 사이의 법정노동시간 단축은 기간도 짧았을 뿐더러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48시간 → 46시간 → 44시간 순으로 단축되었기 때문이다.
- ^ 2) OECD 노동이동률, 한국은 압도적인 1위다.
- ^ 3) 그런데 포괄임금형태의 근로계약마저 확대되면서, 노동시간 양극화의 한 축인 초장시간 노동자의 비중은 이제 사실 통계적으로도 짐작 수 없게 되었다. 법정‘최대’근로시간을 넘나드는 초장시간 노동의 존재는 노동력 파괴의 흔적으로 ‘과로사’ 통계로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2009년 이후, 뇌심혈관 질환 산재사망자 수는 300명 선을 꾸준히 유지한다. 참고로 과로사 산재인정 기준중 하나인 만성과로는 실제 근무시간이 12주 평균 60시간 이상에 해당했을 때다.
- 필자 소개
박준도 |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노동시장에 대한 분석과 공단조직화사업 정책업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