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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 제3호

노동시장 구조개혁 주장이 은폐하는 것들

  • 박준도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7.4퍼센트에 대한 증오감 조성

박근혜 정권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기업의 수익성이 하락하고 외부 경제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은 만큼, 노동시장의 시스템 조정을 통한 기업의 수익성 제고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노동시장의 시스템 조정방안으로 내놓고 있는 것은 첫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둘째, 고용유연성을 해치는 노동법 관련 규제 완화이다.

이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문제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권 초기 고용률 70퍼센트를 강조하던 정부는 느닷없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섰다. 
 
 
정부는 7.4퍼센트의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을 양극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한 달 평균 임금은 392만 원으로,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135만 원에 비하면 3배나 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가입률과 퇴직금 적용률, 상여금 적용률이 유노조·대기업·정규직은 각각 99.5퍼센트, 99.6퍼센트, 99.1퍼센트인데 반해, 무노조·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은 34.2퍼센트, 36.4퍼센트, 36.6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유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근속년수는 13.4년이나 되고 무노조·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속년수는 2.3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상위 7.4퍼센트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키다 보니 신규채용률이 6.2퍼센트에 불과하고, 하위 26.4퍼센트의 노동자들은 접근할 엄두도 못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체 표본 중 상위 7.4퍼센트와 하위 26.4퍼센트만을 비교한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선동이 아닌지 되물어 볼 법도 한데, 언론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 적었고, 7.4퍼센트에 대한 증오감을 조성하며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당위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높은 고용 경직성? 높은 고용 유연성!

지난 10년 동안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유연성을 짐작할 수 있는 피보험 자격 상실률을 살펴보자. 한국고용정보원이 분석한 〈고용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04년 19.9퍼센트였던 피보험자격 상실률이 2013년 29.8퍼센트로 크게 늘었다. 2001년 대우차 정리해고, 2008년 쌍용차 정리해고, 2014년 KT의 8300명 명예퇴직·권고사직 등이 떠오른다.
 

근속년수는 어떨까? 정규직 노동자의 직장유지율이라고 높은 것만도 아니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노동패널데이터를 분석한 자료(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정규직이라 해도 1년 동안의 직장유지율이 49.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5년간 같은 직장에 남아 있을 생존율은 22.4퍼센트로 하락한다. 비정규직, 중소기업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규직이라고 고용이 안정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의 고용유연성은 박근혜 정권의 선동과 달리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나라로 손꼽힌다. 근속년수는 (2011년 기준) 평균 5.1년밖에 안 되어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더 심각한 것은 1년도 고용을 유지 못하는 단기근속자의 비율인데, 무려 35.5퍼센트로 어느 OECD 국가도 견줄 수 없는 부동의 1위다. 물론 10년 이상 장기근속자는 반대로 18.1퍼센트로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고용이동성이 약하다는 것은 현실과 전혀 다른 새빨간 거짓말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틀은 이런 문제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높은 임금 경직성? 높은 임금 유연성!

박근혜 정권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제기하면서 우리나라의 고용보호지수가 매우 높아 노동이동이 어렵고, 해고절차가 없어 사법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개별해고 제한은 OECD 평균보다 높고, 파견근로 제약은 평균보다 훨씬 높아 고용경직성이 너무 높다며, 이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당해고 규제를 완화시키고 파견근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변한다. 아울러 연공급제로 인한 기업의 임금부담을 낮추기 위해 임금피크제 도입과 함께 직무·성과급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불필요한 임금지급을 줄이기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운영하자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용유연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더구나 남성의 경우 50~54세를 기점으로 평균근속년수가 급격히 하락한다. 임금피크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 마다 인용되는, 근속년수 30년에 이르는 노동자가 얼마 되지 않음을 알려주는 수치다. 게다가 300인 이상 대기업의 75.5퍼센트가 이미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고, 46.8퍼센트는 성과배분제까지 활용하고 있다. 연공급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노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 가지 더, 50세 이상 평균근속년수는 OECD 최하위권이라는 사실도 유의해 보자. 정년을 보장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다. 여성의 근속년수는 아예 전 세대에 걸쳐 최하위권이다. 

또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공장주들은 노동력을 탄력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물량이 감소하면 노동자들에게 연차를 쓰게 할 것을 강요하고, 15개 연차를 다 소비하면 다음날 결근계를 내게 한다. 오후에 물량이 없으면 조퇴계를 작성하게 한다. 그렇게 해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도입되면 연장근로수단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제조업 현장에도 연봉제와 포괄임금제가 도입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서로 임금명세표를 비교해 볼 수 없도록 임금비교를 금지시킴과 동시에 ‘성과에 따른’ 시급 차이를 제도화하고 있다. 통상임금 소송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재직자에게만 상여금을 준다던가, 기본급으로 계상하면서 은근슬쩍 임금삭감을 시도하기도 했다. 취업규칙 변경을 하려면 노동자대표의 선출, 총의를 모은 과반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현장에서는 사문화되었고, 단협 해지와 함께 취업규칙 개악을 시도하는 서울대병원 사례에서 확인되듯 이제 사용자들은 노동조합이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취업규칙을 개악시킬 수 있다.

자영업자와 특수고용노동자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최저임금 미만율이 2001년 4.3퍼센트에서 2013년 11.4퍼센트로 치솟아도 이를 규제할 법 집행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내하도급이라 우기며 진행되는 제조업에서의 불법 파견은 이제 보편적인 관행이 되고 말았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 곁에 있는가

개별 해고나 파견근로의 제약이 높다고 하지만 정작 규제는 작동하지 않는다. 노동시장에 대한 ‘법 미비’ 혹은 ‘법 집행의 미비’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규제가 없거나,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 비규제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지탱한다. 

이런 방식의 노동유연화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고, 단체협약 적용률마저도 형편없이 낮을 때 작동한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10퍼센트도 안 되고, 단체협약 적용률은 10퍼센트를 겨우 상회하는 한국이 바로 그 경우다. 근로기준법은 있다고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에 해고금지 조항은 사문화된다. 취업규칙이 있다고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에 취업규칙상의 과반 동의는 사문화된다.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건 대개 법에 근거한 연장근로수당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인데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에 체불임금을 받을 도리도 없다. 휴업수당은커녕, 연차휴가 → 결근계 작성으로 무마하려는 시도도 막을 방법이 없다. 제조업 파견은 금지되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역시 사문화되고, 파견업체가 기숙사도 운영하며 노동시장을 쥐락펴락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식’ 노동유연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논거삼아 기업의 임금부담률이 높다느니, 청년·저임금 노동자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느니 하는 주장만큼 궤변도 없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재벌과 하청자본의 수익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독점부문과 비독점부문의 수익률 차이는 인센티브 지급액 크기의 차이로 나타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형성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고용형태도 아닌) ‘기업의 규모’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더 강화된다.
 
 

노조할 권리와 근로기준법 준수 투쟁

민주노총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맞선 투쟁을 기획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노동조합의 힘은 너무도 미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인가? 생각보다 답은 멀리 있지 않은데, 규제가 없거나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 ‘비규제’를 작동시켜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찬물을 끼얹는 것, 바로 ‘근로기준법 준수 투쟁’이다. 

‘근로기준법 준수 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이 현실에 존재하고, 노동자들의 최소 권리를 옹호하는 투쟁에 민주노총이 함께 하고 있음을 대중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근로감독관과 같은 법 집행관이 아니라 노동조합에 의해 주도되는 근로기준법 준수 투쟁은 노동자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 올 것이다. 취업규칙을 후퇴시키려는 사업주의 행동에 ‘일정한 제약’을 가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과반을 대표하는 행동 ― 노동자 대표 선출의 의의를 노동자들 사이에서 환기시킬 수 있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노동자의 입장에 선 ‘근로기준법 해석,’ 즉 노동자 입장의 근로계약서 교부, 무료노동과 포괄임금제 근절, 휴업수당 지급, 연차휴가 사용권한 확대 등은 “단체협약 없는 실질적인 노조전술”(SEIU)로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이런 투쟁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제고시킨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투쟁들이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맞서는 법 개악 저지투쟁과 맞물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너무나 반대로 가고 있지 않은가? 민주노조운동의 재건은 어디에서 비롯되어야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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