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름X정치
- 2014/11 창간준비1호
<파업전야>와 <카트>사이
어제와 다른, 그러나 여전히 같은 ‘오늘’
영화 <카트>가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기일에 맞춰 개봉한다.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와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바 있는 <카트>는 2007년 이랜드-홈에버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루는 본격 ‘파업 영화’다. 대다수가 여성이면서 비정규직인 노동자들이 ‘계약 해지’라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매장 점거’라는 극강의 투쟁을 벌이는 드라마틱한 전개를 이음새가 훌륭한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카트>는 상업 영화임에도 높은 수위의 정치성, 오늘날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지키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이렇게 싸울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정치가 이야기의 끈끈한 매듭과 제각각 생동하는 캐릭터들에 의해 어색하지도 거북스럽지도 않게 채색되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카트>는 정치적인 것이 강렬해지면 대중성을 상실하기 마련이라는, 그래서 지난 시기 정치적 사건들을 소재로 삼는 몇몇 정치 영화들이 범했던 반-정치의 오류를 아슬아슬하게 넘어선다. 노동권의 문제가 몇몇 혁명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체감케 한다. 역사 속의 한 사건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의 행동 요령 혹은 교훈이 되어 남는다.
헌데 우리는 <카트>를 통해 25년 전 혜성처럼 등장했던 독립영화 <파업전야>를 떠올리게 된다. <파업전야>는 상영되는 것 자체가 격렬한 투쟁이었던, 한국 독립영화의 전설적인 16밀리미터 필름영화다. 실제로 <카트>를 기획하고 제작한 영화사 명필름의 이은 대표는 <파업전야>의 연출자 중 한 명으로, 영화를 만든 1987~89년 당시 노동자 문예운동의 전망을 갖고 활동한 영화운동그룹 장산곶매의 핵심 멤버였다.
80년대에 서울예대와 중앙대, 한양대 등에서 영화를 전공한 청년들이 당대 노동자운동의 고조에 영향을 받아 인천의 투쟁사업장이었던 동성금속에 들어가 위장폐업에 맞서 농성하던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우여곡절 끝에 만든 영화가 바로 <파업전야>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대해 다룬 극영화이면서, 전국 대학가에서 치열한 투쟁 속에서 ‘순회상영’하면서 30여만의 관객을 모은 비공식 흥행작이기도 하다. 이는 전노협 중심의 거센 노동자 투쟁과 전성기를 구가하던 학생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이런 ‘커넥션’(?) 때문인지 1988년의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룬 <파업전야>와 2007년 감정노동과 구조조정의 옥죄임 속에서 고통받던 대형마트 서비스 노동자들을 다룬 <카트>는 20여 년이라는 시간 사이 노동자계급이 마주한 정세와 현실을 때로는 같게, 때로는 다르게 보여준다. 두 영화를 나란히 놓고 비교함으로써 여전한 것은 무엇이고 바뀐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게다.
어제와 다른 ‘오늘’
<파업전야> 속 노동자들은 끈끈하고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없고 세대가 달라도 같은 공장에서 부대끼며 일하는 이들 사이의 문화, 이해관계, 언어 등에 계급적 동질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이 망설이는 이유는 오직 자신들에게 ‘저항’의 권리가 있는지, 우리가 뭉치면 저 사장놈에게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뿐이다.
그러나 <카트>의 노동자들은 서로 친근하지 않다. 그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세대별로, 직종별로, 남성과 여성으로, 살아남은 자와 해고된 자로 갈라져있고 그 때문에 극심한 갈등을 겪는다. 이런 차이는 이들이 계약직 전원을 파견으로 돌린다는 낭떠러지 상황이 오기까지 계급적 단결을 저해하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노조를 조직하고 파업을 시작한 이후에도 정규직-비정규직의 갈등은 현저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둘 사이의 갈등을 주되게 다루면서 가족의 생계를 떠맡은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갈등을 드러낸다. 가사와 육아, 생계까지 도맡는 기혼 여성노동자들의 이중고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드라마와 캐릭터를 더 강렬하게 조형한다.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카트>에는 청소년 아르바이트의 현장이 ‘디오’(엑소)를 통해 서브플롯으로 등장하는데, 이런 풍성한 내러티브는 영화를 더 탄탄하게 만든다.
두 영화가 만들어진 조건 역시 상이하다. <파업전야>는 기술적으로 미숙했던 영화 지망생들이 노동자문예운동의 전망 속에서, 아주 적은 예산으로 만든 16mm 필름영화였다. 반면 <카트>는 충무로에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상징적인 대중영화들을 종종 만들어왔던 주역들이 만든 디지털 영화이다.
<파업전야>가 철저하게 현장 지향적이며 참여적인 창작법을 지향했던 ‘아마추어 영화’였다면, <카트>는 철저하게 대중지향적인, 어떤 이야기가 대중에게 울림과 자극을 주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해온 이들의 누적된 고민의 산물이다. 오늘날 예술에게 중대한 과제는 독자적인 완고함보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대적인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용기와 울림을 주느냐가 아닐까.
여전히 지속되는 ‘오늘’
한편 두 영화는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이 뿔뿔이 흩어져있던 조건을 뛰어넘어 어떻게 스스로를 조직하고 단결하며 저항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동성금속’과 ‘더마트’의 노동자들은 참혹한 현실에 대한 불만 속에서 동일한 분노를 찾아 조직하고 동지를 모으며 자본에 의한 탄압과 이간질, 조직 내의 갈등을 거침에도 굴하지 않고 또 다시 강고한 투쟁을 전개한다.
<파업전야>의 마지막 숏에서 구사대였던 ‘한수’는 갈등과 번뇌 끝에 커다란 몽키스패너를 든다. 그리고 동료들을 모아 공장 밖으로 뛰쳐나가고, 고속촬영으로 촬영된 영화는 서서히 슬로우모션이 되다가 세상을 향해 뛰쳐나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화면을 멈춘다. <카트>의 마지막 숏 역시 <파업전야>의 그것을 닮았다. 25년을 두고 연결된 두 영화의 엔딩이 어떤 전형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게스투스(개인의 행동을 결정짓는 계급적·사회적 관계를 드러내는 연극 용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인상적인 엔딩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두 영화가 닮아있다고 말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달라진 정세와 이데올로기의 조건이 있다면 응당 우리의 저항의 양식과 고민들 역시 달라져야 할 게다. 우리는 두 영화가 만들어지고 배급되는 방식의 차이를 통해서도 오늘날 예술과 미디어가 대중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응시하고 대중운동 속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따져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아름다움이란 곧 ‘진리’였다. 그러나 ‘역사의 종언’ ‘예술의 종말’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위의 선언들이 횡행했던 지난 20년 포스트-모더니즘의 쓰나미 이후 우리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춰온 지 오래다.
<카트>는 폐허더미의 이 사회에서 진정 아름다운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내내 눈물 흘리면서도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다른 무엇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야만, 지금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사건’으로 만들 가능성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좋은 물감이 나왔다. 우리의 현장에 채색하는 것은 이제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