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만나다
  • 2014/11 창간준비1호

“스물다섯 살 노조활동가를 만나다”

  • 인터뷰 안민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남부권역 교육선전위원
  • 만난활동가 황수진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 정리 조은석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노조 활동가로는 가장 젊은 축에 속할 거 같은데, 어떻게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학생 때는 사회에 아직 정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 나 누군가가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분명 옳은 게 이길거라고 생각했죠. 주변에 호소하고 경찰서 찾아가고 법으로 해결하면 부당한 일은 해결될 거다. 그렇게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괜찮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쌍용자동차 투쟁을 보면서 알았어요. 자본과 정부의 탐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무너질 수 있는지. 대학교 1학년 때, 쌍용차 파업 당시 실천단으로 공장 앞에 갔어요. 물과 의약품을 전해주자 외쳤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순식간에 전경들이 덮쳤었고 무자비하게 연행해갔어요. 그때 도망가다가 바지 무릎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넘어졌어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더 이상 못 뛰겠다 연행해가라 그랬죠. 그런데 같이 왔던 선배가 내 손을 놓지 않고, 정신 차리라면서 내 머리위에 물을 붓는 거에요.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뛰기 시작하고. 그 때 충격과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 뒤로도 많은 이들의 싸움이 있었고, 고요해보였던 세상이 실은 요동치는 곳이었다는 걸 알 게 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학생운동을 하다가 어떤 계기로 삼성지회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졸업 후에도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할 때 제안을 받았어요. 지역에서 삼성지회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학생 때 연대를 한 경험도 있었고 투쟁하는 모습을 보며 힘도 많이 받았기에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면접을 잘 봤나봐요. (웃음)
“삼성의 온갖 해괴한 짓을 보다보니 깨달았어요. 믿을 건 동지뿐이더라고요. 결과는 우리가 만드는 거예요. 저는 조합원들에게 늘 배워요.”
지회 설립부터 지금까지 변화가 많았을 거 같아요. 처음 지회 활동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자신도 무언가 바뀐 게 있을 것 같은데.
지회 활동을 막 시작했을 때 제가 본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정말 위세 있고 당당한 모습이었어요. ‘내가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생각도 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일을 시작하면서 첫 파업이 벌어졌고 위장폐업 철회투쟁, 또 한 번의 열사투쟁과 노숙농성, 임단협 투쟁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쏟아졌어요. 
 
답답한 일이 많았죠. 상대는 거대한 ‘삼성’ 자본인데, 우리는 하나로 뜻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거든요. 사실 다들 그랬어요. 가장 많이 하면서도 싫어하는 말이 ‘온도차가 난다’는 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지회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오히려 단단해 지더라구요. 나의 것을 포기하면서 동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고, 누구나 망설이는 일에 거침없이 앞서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런 과정에서 신규 분회의 단체 가입 소식도 큰 힘이 되었고요. 

지회의 투쟁 과정에서 저도 어느덧 공기 같은 존재로 녹아든 것 같아요. 늘 함께 있는 사람이 되려 노력했거든요.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었어요. ‘도대체 이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하지.’ 그런데 센터 폐업같은 황당한 일도 겪어보고 삼성의 온갖 해괴한 짓을 보다보니 깨달았어요. 믿을 건 동지뿐이더라고요. 해운대분회를 지켜보니 더 그래요. 결과는 우리가 만드는 거예요. 조합원들은 저에게 언제나 자극을 줘요. 저는 조합원들에게 늘 배우는 거 같아요.
“염호석 분회장님이 제일 생각이 나요. 염분회장님이 나한테 장난 많이 치고. 정이 많은 분이었어요. 작은 일에도 항상 나한테 고마워했어요.”
조합원들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장점과 단점이 있죠?
단점은 가끔은 너무 어리게 볼 때. 나한테도 의지하고 고민을 나눠줬으면 좋겠는데 내 앞에서는 절대 힘든 걸 티 안낼 때. 장점은 내가 뭘 하든 사람들이 활기를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해운대 분회장님이 저한테 그랬어요. “난 너만 보면 그냥 힘이 난다”고. 조합원들도 나랑 하는 경험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경험이라 재밌어 하는 것 같아요. 
 
지회 설립부터 파업투쟁을 거쳐 단협을 쟁취하기까지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고 염호석 분회장님이 제일 생각이 나요. 염분회장님이 나한테 장난도 많이 치고. 정이 많은 분이었어요. 작은 일에도 항상 나한테 고마워했어요. 양산에서 피켓 만드는 거 도와달라고 해서 간 적이 있었죠. 하시고 싶은 말씀, 표현하고 싶으신 것 들으면서 같이 맞춰보고 만드니까 정말 좋아하셨어요. 그날 밥도 사주시고 참 잘해주셨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니었는데, 저는 오히려 챙겨주시니 고마웠죠. 

그 뒤에 피켓 만드는 일로 한 번 더 만나자고 하셨는데, 서울 일정이랑 겹쳐서 양산에 못 갔어요. 많이 힘들어하셨던 때여서 계속 가슴에 남죠. 그날 내가 갔어야 했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분회장님 사라졌다는 이야기 듣고 카톡 보냈을 때, 피켓 만들자는 그 대화가 아직 카톡창에 남아 있었어요. 너무 죄송했어요. 평소에 더 많이 대화하고 만나고 같이 했었어야 했는데 내가 부족했던 것만 같아서.          
 
남부권역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안에서도 가장 조직력이 높고 활발한 지역이라고 알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지회 1년을 평가해 보면 어때요?
갈 길이 멀지만 노동조합을 인정받고 단협을 체결한 것으로 일단 단초를 마련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저절로 지켜지는 게 하나도 없어요. 진주 폐업만 해도 그래요. 숨 고를 여유도 없이 사측의 공작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금속노조 세우고 노조 인정받았더니 작업복에 삼성 마크를 떼버리더군요. 결국에는 우리가 힘을 키워나갈 수밖에 없어요.

어쨌거나 조합원들이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깬 자신들이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남들은 쉽게 할 수 없는 실천을 했는데, 본인들은 스스로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항상 연대를 잘 하는 우리 노조 사람들이 삼성에 노조를 세웠듯이 새로 누구나 감탄할 만한 사회운동을 만드는 일을 같이 하고 싶어요.”
파업 이후에 지회 차원에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일은 뭔가요?
농성투쟁 이후에 각 지역에서 수련회, 체육대회, 단합대회가 있었어요. 이런 사업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남부권역 문화패를 활성화하려 노력하고 있고 교육 사업도 고민 하고 있어요. 조합원들에게 치유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해보고 싶고. 지회 차원에서는 아무래도 현안이 정리되면 간부교육, 수련회, 간담회가 많이 배치될 것 같아요. 

또, 조합원 소개팅! 지금 우리 지회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연애를 못하는 경우가 많데, 그건 다 삼성 때문이에요. 노동시간이 너무 길고 삼성을 위해서만 일하다 보니 사람 만날 시간이 없고. 이 사람들은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고 인물도 좋아요. 이제 파업투쟁 끝났으니까 연애도 좀 하면 좋겠어요.
지회 차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현실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있고, 갈등은 어떤 식으로 해결했는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직할 지회에다 전국적인 규모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들이 생기네요. 현안은 넘쳐나고 체계는 정비 되어있지 않다보니 혼선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은 상황에 맞게 이를 보안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어요. 전국적인 체계도 잡아가고 있고, 또 조금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조합원, 간부들이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니, 경험을 축적하며 체계를 만들어갈 것이라 생각해요. 
 
별난 취미가 있다고 들었는데?
크루져보드 타기. 자전거 라이딩. 웹툰 보기. 크루져보드 알아요? 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요즘 20대 애들이 너도나도 타는 거. 어느 날 새벽에 보드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보고 멋있어서 타게 되었는데 요즘은 롱보드도 많이 타요. 사고 싶은데 그건 좀 비싸요.
 
젊은 활동가들은 가족과의 관계가 보통 문제가 되는데, 가족들은 운동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저를 100퍼센트 신뢰해요. 저랑 대화를 해보면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믿음이 가고, 조곤조곤 말하는 거 보면 니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가족들이 부담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을 주려고 해요. 내가 하는 활동을 걱정하긴 하지만 지켜봐주고, 그래서 저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미리 이야기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참 좋은 분들이시네요. 사회운동가, 노조활동가로 살면서 포부가 있겠죠? 
개인적인 한 가지는 일단 몸짓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항상 연대를 잘 하는 우리 노조 사람들이 삼성에 노조를 세웠듯이, 누구나 감탄할 만한 운동을 만들어가는 일을 앞으로도 같이 하고 싶어요. 희망버스를 보면 우리가  계획해서 만들어낸 게 아닌데 깜짝 놀랄 일들이 일어났죠. 이런 원동력이라면 또 하나의 시작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걸 같이 해나가면서 내가 있는 지역의 운동을 활성화 시키고 싶어요.
“이제는 늘 해오던 것과 달라야 해요. 기존의 방식과 틀을 조금만 벗어나면 불안해서 다시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봐요. 그래서는 반복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죠. 새로 운동을 시작하는 활동가들이 꿈꿀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죠.”
젊은 사회운동가로서 다른 활동가들에게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앞으로 새롭게 만들고 싶은 운동의 비전도 좋고요.
활기 있는 운동들이 많이 벌어졌으면 좋겠어요. 가끔은 얼마나 많이 희생하고 얼마나 더 포기했느냐가 좋은 활동가의 척도가 되는 것 같아요. 누가 더 헌신적인가를 비교하고, 새로 운동을 시작하는 젊은 활동가에게 ‘너희도 나만큼’을 요구하고. 그런데 그런 걸 보면 자기위안을 위한 것 아닌가 하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힘든 건 좀 나누고 같이 보조하면서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제는 늘 해오던 것과 달라야 해요. 기존의 방식과 틀을 조금만 벗어나면 불안해서 다시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봐요. 그래서는 반복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새로 운동을 시작하는 활동가들이 꿈꿀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죠. 우리가 앞으로 많은 사람들과 해 나가야 할 운동에는 분명 활력과 새로움이 필요해요.
    
마지막으로 《오늘보다》에 바라는 점을 한 말씀 해주세요. 
정말 새로운 매체가 될 것 같네요. 진짜 새로운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많은 시도를 해 주셨으면 해요. 저도 《오늘보다》가 활발히 읽히길 바랄게요. 
 
《오늘보다》가 지역과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운동가들을 만납니다. 운동이 어렵다지만 여전히 다른 세상을 꿈꾸며 활동에 뛰어든 청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생과 운동에 대한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다음 호에는 건설노조 경기인천본부 김태완 조직부장을 만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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