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7/01 제24호

신자유주의 정치위기와 광장 시위의 미래

한국의 촛불과 스페인 광장 시위는 무엇이 다른가

  •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2011년 5.15운동 한복판의 스페인 마드리드 광장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우마 호세프(노동자당)는 2016년 8월 상원의 탄핵투표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녀를 탄핵으로 몰아낸 미셰우 테메르 정권이 거꾸로 탄핵 대상이 됐다. 노조와 농민조직들은 테메르 탄핵 요구서를 12월 8일 하원에 제출했다. 남아공 제이컵 주마 대통령(아프리카민족회의)도 부패 혐의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여당의 반대로 탄핵안이 부결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미래가 불안하다.

12월 8일 <뉴욕타임스>는 호세프, 박근혜, 주마 대통령을 예로 들면서 ‘제도적 부패’를 제기했다. 부패가 심각하면 전체 시스템을 감염시켜 정직한 사람조차 부패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검찰이나 관련기관이 충분한 독립성을 누리며 부패공무원을 조사하고, 시민사회의 감시가 동반되어야 한다, 즉 검사들이 ‘정직의 섬’이 되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았다. 
 

정치 위기와 부패 이슈

동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대표적 신흥시장으로 꼽혔던 나라들에서 대통령이 줄줄이 탄핵 위기를 맞는 게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기실 부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해 국제금융기구가 세팅한 아젠다였다. 한마디로 경제 저성장의 원인이 부패라는 말이다. 따라서 ‘굿 거버넌스’(좋은 통치)가 필요한데, 굿 거버넌스의 전제조건은 청렴한 사법부고 전문가 비정부기구(NGO)의 감시활동은 그 보완물이다. 그렇다면 이제 저개발국에서 경제성장은 사법부와 전문가 NGO의 손에 달려 있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바로 이 부패 이슈가 부르주아 지배에 ‘자멸적’ 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현재 세계정치는 부패 이슈를 매개로, 정당 간 극단적 대립이라는 파괴적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좌우파 정당의 이념, 정책이 신자유주의 정책·전략으로 수렴된 후, 정당과 유권자의 관계는 약화되고, 오히려 정당 간 대결은 격화되었다. 정치인은 유권자와 직접 접촉하기보다는 언론폭로, 국정조사나 특별검사제도, 소송과 같은 비선거적 수단에 더욱 의존한다. 사정기관(국정원, 법무부, 검찰, 경찰,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통령과 집권당이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이라면, 특별검사 제도는 야당이 집권당과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동원하는 장치다. 그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 ‘정치의 사법화’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를 복기해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총선 직후 새누리당의 쇄신이 실패한 후 → 보수언론 주도 하에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 비리 폭로 → 우병우 수석을 수사하지 않는 검찰에 대한 공격 → 미르· K스포츠재단 폭로 → 비선실세 최순실 그룹 폭로로 이어졌다. 그 후 검찰조사, 국정조사, 특별검사제도 도입, 탄핵소추 등등 일련의 과정이 이어졌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너서클에서 배제된 일종의 ‘여당 내 야당’이 대통령과 ‘여당 내 여당’을 제거하기 위해 ‘정치적 무기로서의 법의 지배’를 활용한 셈이다.

물론 애초 보수언론이 공공연하게 제시한 것처럼, ‘거국내각, 개헌,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시나리오가 어그러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촛불시위다.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를 통해 국회가 정한 일정과 절차에 따라 퇴진할 수 있다고 선언했지만, 촛불시위에는 최대 규모가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철저한 처벌’을 요구한 셈이다.

그런데 이는 대중시위가 부패 이슈에 몰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 전 대표는 12월 12일 구악을 청산하는 ‘국가 대청소’를 주장했는데 청소라는 말 자체가 부패를 연상시킨다. 안철수 전 대표도 12월 11일 “부패기득권과 전면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즉 탄핵 국면의 키워드는 부패로 집중되는 셈이다. 

그런데 부패 이슈는 다른 모든 이슈를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보수언론은 “탄핵, 헌재에 맡기고 여야 국정 수습하라”, “경제·안보는 축제 건너편 벼랑 끝에 있다”며 촛불집회가 초점을 확대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경계했다. 이를 의식하여 촛불집회 참여단체 일각에서도 보수세력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다른 이슈가 배제되고 오직 ‘부패’만 부각된다면, 문제의 해결책은 검찰과 사법부 강화를 지시할 뿐이다.
 
최순실 게이트 재벌 총수 청문회에 참석한 삼성 이재용

제왕적 대통령-제왕적 사법부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이 언급된다. 하지만 그 치유책이 ‘제왕적 사법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실 우리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정치의 사법화’를 목도하고 있다. 사법부가 입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거나, 행정부 정책에 대한 위헌 판결 등이 그것이다. 

정치의 사법화가 왜 문제인가? 간단히 말하면,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표기관, 선출된 권력이 제정한 법률을 대표성을 위임받지 않은 사법부, 즉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판결을 통해 무효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사법부·헌정주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 특히 사적 소유권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었다. 그래서 사적 소유자들은 정부를 엄격한 헌법적 틀 안에 두는 것을 고안했다. 설사 다수의 지배에 따라 무산대중이 의회를 장악하더라도 유산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법률을 입법할 수 없도록 헌법 체계를 구성한 것이다. 이런 원리에 따르면 결국 헌정주의는 행동을 제어하는 권력인 반면, 민주주의는 행동을 취하는 권력이다. 헌정주의는 본질적으로 반민주적이며, 헌법의 기본적 기능은 민주적 과정에서 특정한 결정(예컨대 ‘사적 소유권의 제한’)을 제거한다. 보수언론이 “헌재 재판관들은 그 어떤 압력으로부터도 벗어나 순전히 법률과 양심에 의해 심리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의회민주주의, 정당민주주의로 복귀하자고 주창하는 부르주아 정치학의 관점과 배치된다. 우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되면 분배 정의의 실현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통상 사법심사는 절차적 정의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분배 정의에는 그렇지 않다. 사법부가 재산권 보호라는 부르주아 법체계를 수호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치의 사법화는 입법 활동을 제약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입법가는 헌법재판소의 예상 반응에 맞춰 법안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셋째,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의 범죄화를 야기한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법수단을 동원할수록 정치의 범죄화는 심화된다. 이는 유권자의 정치혐오로 이어져 정치참여 의지를 상실케 한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부패 이슈가 양날의 칼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정치의 사법화가 사회운동과 좌파를 공격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지극히 주의해야 한다.
 

광장 시위의 미래는?

그렇다면 광장 시위는 이런 제약을 넘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신생정당 포데모스(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떠올린다.
 
“광장의 급진적 의제와 정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결사체로 스스로를 새롭게 조직화해가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재 ‘시민평의회’, ‘시민제헌의회’, ‘95%위원회’, ‘국민명령제안위원회’, 해적당이나 ‘포데모스나 시리자’와 같은 정치운동 등 다양한 고민이 던져지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 송경동, 12월 8일, <오마이뉴스>
 
심지어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12월 15일 신당을 선언하며 “포데모스는 스마트폰 하나로 의사결정을 다 한다. 공천권도 필요없다. 우리는 포데모스 정당에 주목한다. 직접 민주주의 형태의 요구가 분출한 촛불민심에 걸맞은 ‘네트워크형 신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과연 포데모스는 촛불집회의 미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는 포데모스가 출현하기 전 5·15 운동(스페인에선 ‘15-M 운동’이라 불린다)이 분출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5·15 운동의 출발점은 2011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개설된 플랫폼, ‘지금 진정한 민주주의를!’(Democracia Real YA!)이었다. 이 페이지는 ‘실업자, 저임금 노동자,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청년’이 5월 15일 전국 곳곳에서 가두를 점거하자고 제안했다. 시위를 앞두고 ‘지금 진정한 민주주의를!’ 집단은 여러 상징적 행동을 펼쳤다. 예를 들면, 부동산 폭락에 따른 주택 압류로 생긴 금융자본에 대한 분노로 5월 13일 무르시아 은행을 점거했고, 5월 15일 시위에는 마드리드 5만 명, 전국 13만 명이 참가했다. 6월 20일, 각지에서 출발해 마드리드로 향하는 ‘분노한 사람들의 행진’을 개시했고, 7월 25일에는 5·15 운동 사회포럼을 개최했다. 또, 10월 15일에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도합 50만 명이 운집한 시위가 벌어졌다.

훗날 포데모스의 지도부가 되는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와 그의 동료들은 당시 TV 정치토크쇼를 진행하던 집단이었고, 그들이 집회를 제안한 것도 아니었다. 이글레시아스는 <뉴레프트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 운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몇 주 전 우리 TV쇼에서는 아랍의 반역을 토론하면서 경제위기가 다른 지정학적 공간에서는 정치소요와 사회운동을 창출할 것이지만, 스페인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 5·15 운동은 스페인 좌파의 현실을 보여줬습니다. 전통적인 좌파정당은 그러한 운동의 부상과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좌파정당 지도자는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일부는 오히려 화를 냈죠. 그들은 [시위자들이 ‘분노한 자들’라 불리는 것에 대해] ‘나는 지난 30년간 분노한 자였다. 그때 너흰 어디 있었냐?’는 식이었죠.”
 
2011년 마드리드, 실업 대책과 민영화 철회를 요구하는 청년들의 시위
 

그들은 누구였는가

그렇다면 실제 광장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초기에 정당이나 노동조합과의 협력을 거부하고, 제도화된 정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독립성을 강조했는가? 이에 대해 집회 참가자의 주축이 교육을 받았고, 반(半)프롤레타리아화된 서비스부문 중간계급, 즉 전형적으로 말하자면 ‘콜센터에서 일하는 대졸 청년’이라는 보고가 많았다. 이글레시아스에 따르면, 강력한 노동조합이 없는 부문의 청년 노동자가 핵심층이었다. 그들은 장기간에 걸친 부동산버블로 높은 소비 수준에 기반한 정체성을 갖고 성장했지만, 위기로 인해 취약계층으로 전락했다. 그는 공공부문과 산업부문 노동조합이 세계 금융위기 초기에 총파업을 비롯해 긴축 반대 투쟁을 전개했으나, 5·15 운동은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간 투쟁을 전개했다고 덧붙였다. 5·15 운동의 참가자들은 특히 공화국 깃발과 같은 좌파적 상징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총파업 참가자들과는 구성이나 문화가 크게 달랐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런데 5·15 운동의 인상적인 측면은 유로존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자율적 조직의 물결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세 가지 운동은 ‘퇴거반대운동’(PAH), 보건서비스를 방어하는 ‘흰색 물결’(Marea Blanca) 운동, 공공교육 체계를 방어하는 ‘녹색 물결’(Marea Verde) 운동이었다. 이글레시아스는 “자율조직에 참여한 수는 5·15 운동에 참여한 수보다 아마 작을 것입니다. 하지만 방법은 훨씬 효율적이었습니다. (…) 그로부터 많은 이들이 포데모스에 참여했고, 포데모스의 지도부는 대부분 사회운동에서 온 사람들로 충원됐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이글레시아스 그룹이 정치조직화에 나선 것은 2013년 여름이다. 그는 현존 좌파와의 협력을 통해서 새로운 정치조직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좌파정당들에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예비경선)를 제안했다. “시민에서 후보자 선택을 개방하는 것이 세력균형의 열세를 만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페인공산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IU) 지도자들이 완고한 태도를 보이자 독자 활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2016년 총선에서야 포데모스와 좌파연합은 동맹을 형성했다.(연합-포데모스 UNIDOS-PODEMOS)
 

스페인과 한국의 운동은 무엇이 다른가

5 ·15 운동은 첫째, 부패 이슈라기보다는 실업자, 저임금노동자,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에게 시위를 호소했고, 실제 청년층이 운동의 핵심이었다. 둘째, 중도우파 정당(인민당)과 중도좌파 정당(스페인사회주의노동자당)의 실패, 그들에 대한 대중적 환멸을 배경으로 했다. 셋째, 2011년 5.15 시위 전후로 시위, 포럼, 행진 등 다면적 활동을 전개했고, 그 후로도 흰색 물결, 녹색 물결 등 자율적 조직화의 과정을 겪었다. 넷째, 기존 좌파가 5·15 운동에 대해 완고한 태도를 보이면서, 자율적 조직은 점차 포데모스와 연계를 맺기 시작했다.

반면 현재 한국의 촛불집회는 어떠한가. 첫째, 부패 혐의자 처벌이 중심이 되면서 이슈가 아직은 상당히 제약적이다. 둘째, 거대 야당을 통한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높은 편이다. 셋째, 촛불집회 주최 단체의 실천적 의지에 비해, 참여 대중이 지속적 활동을 전개하며 자기조직화를 실행할 의지가 있는지 아직 불확실하다.

결론적으로, 현재 촛불집회가 자연적으로 5·15 운동과 같이 청년 노동자의 자기조직화나, 그 후 주택, 의료, 교육 이슈를 둘러싼 사회운동의 형성으로 이어질 것이며, 나아가 포데모스와 같은 신생 좌파정당의 약진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르게 말해 이는 사회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이 더욱 목적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운동과 대중 조직화를 실행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단계의 운동을 펼칠 수 있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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