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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과 사회
  • 2017/06 제29호

의료비 걱정 없는 사회는 가능할까?

문재인 정부 보건의료정책 톺아보기

  • 채수용
아파도 의료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는 가능할까? 지난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공공병원을 폐쇄하고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했었다. 시민 건강은 산업과 이윤의 논리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문재인 정부는 어떨까? 최근 발표된 문재인 정부 보건의료 정책을 바탕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어떻게 가능할까?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60퍼센트 초반)은 OECD 수준(평균 80퍼센트)에 크게 못 미친다. 높은 의료비는 국민들의 오랜 걱정거리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선거 때마다 주된 보건의료 공약이었다.

보장성 강화의 핵심은 비급여 진료에 대한 통제다.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급여 항목과 절대량이 늘어나더라도 비급여 진료 증가로 전체 의료비가 함께 증가하면 보장성은 강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보험 진료를 ‘급여화’하여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고가의 검사비, 신약, 신의료기술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를 축소하고, 건강보험 적용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본인부담률은 차등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5월 1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급여등재실은 새정부 정책방향에 따라 선별 급여제도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선별급여는 박근혜 정부 시기 비급여 대책으로 도입됐다. △의학적 필요성이 낮으나 환자부담이 높은 고가의료, △임상근거 부족으로 비용 효과 검증이 어려운 최신의료, △치료 효과 개선보다는 의료진 및 환자편의 증진 목적의 의료 등에 본인부담금을 50~80퍼센트로 정해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방안이다. 선별급여로 지정된 의료행위는 5년마다 재평가해 필수급여로 전환하거나, 본인부담률을 조정한다.

신약·신의료기술을 급여화 할 경우 그 효과와 타당성의 입증이 필수적이다. 헌데 선별급여제도는 이에 미달하는 ‘자격 없는 비급여 급여화를 통한 의료자본 지원책’에 가깝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본인부담금이 높아 보장성 강화 효과도 제한적이다. 게다가 한번 급여화된 항목의 경우 병원 경영상의 어려움, 환자의 편의·요구 등의 명분으로 퇴출 기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선별급여는 국민의 보험료로 대형병원, 민간보험사, 제약·의료기기 자본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인 셈이다.

또한 비급여 진료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원인은 과잉진료를 통한 수익 창출로 경도된 민간중심 의료공급체계에 있다. 이윤 추구에 경도된 의료기관에 대한 통제 없이는 모든 필수적 의료행위를 급여화하더라도 행위량 증가를 통한 과잉진료(건강보험 재정의 과도한 지출로 귀결), 비급여 진료의 지속적 도입(보장성 강화 지체)을 막을 수 없다. 결국 보장성 강화 정책은 의료기관에 대한 통제, 민간중심 의료공급체계를 혁신하기 위한 전략과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공공의료 인프라 강화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 확인했듯 공공병원은 의료 공공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공공병원은 이중의 위기에 처해 있다. 우선 전체 병상 수 대비 10퍼센트 정도 수준으로 공공의료 인프라가 미약하다. 또한 대부분의 민간병원이 이윤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소수의 공공병원만으로 공공성을 지키기엔 한계가 있다. 안타깝지만 대선 당시 문 대통령에겐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이나 역할에 대한 포괄적인 공약이 없었다.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표준진료를 확립하여 민간의료기관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양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의 적절한 재정 투입 역시 필수적이다. 이미 의료기관이 포화 상태라 새로운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면, 기준에 미달하는 부실 의료기관을 폐업시키고 ‘공적 인수’로 전환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물론 양적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질적 혁신 역시 중요하다. 기능적으로 왜곡되고 있는 공공병원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립중앙의료원→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보건소 등으로 이어지는 공공의료전달체계를 제대로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보건복지부, 교육부, 노동부 등으로 제각각 분리된 공공병원 소관부처부터 일원화해야 한다. 공공병원은 표준적이고 적절한 수준의 의료를 공급해 민간병원에 대한 비교우위를 확보해야 하며, 이러한 비교우위를 통해 개별적으로 분산된 채 과잉진료로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병원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립대병원 경영평가 폐지, 공공병원 이사회 구조 개선이나 병원장 임명과 관련한 절차 등 공공병원 운영에 있어 공공성의 의미를 실질적으로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료전달체계에 대해 “대형병원의 외래진료를 제한하되 중증 입원환자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능별 수가구조 마련”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과거 의료전달체계 개편에 대한 전략은 공급자에게 경제적 보상을 강화하거나 환자에게 부담(본인부담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시행된 반면, 문 대통령의 공약은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의료기관을 규제할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러한 공약들은 제도 도입 과정에서 공급자들의 반발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왜곡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추진할 의지가 관건일 것이다.
 

재원 마련 방안이 없다

문 대통령의 공약에는 재정 마련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건강보험 재정은 국가, 기업, 가입자가 나눠서 부담한다. 현재 전체 건강보험료 총액의 20퍼센트만큼을 국가에서 지원하도록 규정(2007∼2015년 실제 국고지원율 16.2퍼센트)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해외(일본 38.4퍼센트, 대만 37.8퍼센트, 프랑스 52퍼센트)에 비해 한참 부족한 국고지원율을 늘리겠다는 이야기는커녕 규정된 국고지원을 지키도록 하는 사후정산제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기업부담비율의 확대에 대한 방안도 없다. 한국에서 기업과 직장가입자는 5대5의 비율로 건강보험료를 내는데, 프랑스의 경우 기업과 직장인의 부담 비율이 7대3이다. 게다가 프랑스는 건강보험적자가 발생하면 대기업 매출액의 0.1~0.2퍼센트를 사회연대부담금으로 걷어 재정적자를 메꾼다. 재정 마련에 있어 국가와 기업의 부담 증가에 대한 논의가 없으면 결국 가입자의 ‘건강보험료 부담 증가’만 강조될 것이다.

지난 3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의 핵심 목적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사이의 형평성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책임을 오로지 가입자에게 돌릴 뿐이다. 가입자의 건강보험료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더욱 높이는 것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 오마이뉴스
 

의료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불행히도 문재인 정부의 미래성장동력 확충 약속은 ‘제약·바이오·의료기기 산업 육성’ 등 의료를 산업으로 보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산업발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관점에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의료자본의 요구가 끊임없이 빗발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 한 의료영리화 정책(원격의료, 영리자법인 허용, 법인약국 허용)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규제프리존법에 대해서도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20년 동안 다방면으로 추진된 의료민영화 정책들은 건강보험 보장성이나 공공의료 등 한국 보건의료 전반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새 정부는 의료영리화에 대한 명확한 반대 입장을 확고히 관철시켜야 한다.

의료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고비용을 발생시키는 민간중심 의료체계에 대한 해결이 우선이다. 의료기관의 의료행위를 사회적으로 통제할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어떠한 보장성 강화 전략도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 둘째, 제약·의료기기 자본에 대한 통제 방안도 필요하다. 새로운 의약품·의료기술의 도입 과정에서 안전성·유효성·비용효과성 기준을 명확히 하고, 가격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박근혜 정권 동안 완화·철폐된 많은 신의료기술 관련 규제를 정상화해야 한다. 

이처럼 보험료와 세금으로 보장성을 올리는 것과 반대의 방향은 뭘까? 재벌병원·제약회사·의료기기회사와 같은 의료자본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방향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제는 유턴할 수 있을까? ●
 
필자 소개

채수용 | 노동자운동연구소와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에서 공공의료 강화와 민중건강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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