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7/05 제28호

4.16 기억 수업

잊은 것은 저들 뿐이다

  • 최주연
‘4.16 기억 수업’ 을 공개수업으로 진행했다. 교사에게 ‘공개수업’이란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청한 것에는 수업을 계기로 참사에 관한 관심이 고양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수업 한 주 전 세월호가 인양되면서 내 수업과는 별개로 세월호에 관심이 다시 집중됐다. 교사가 65명이나 참관을 와서 ‘성황리’라는 말이 어울리게 됐다.

참사와 관련해서 쓰기엔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3주기 즈음해서 목도되는 상황은 어디나 ‘성황리’다. 전국에서 수백 명의 교사가 4.16 관련 수업이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세월호가 누워 있는 목포 신항엔 화창한 주말에 나들이를 포기하고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참사 하루 전 아침 10시에 시작되는 도보행진에는 예상보다 두 배가 넘는 교사들이 제주에서, 부산에서 올라와 서울 시내를 걸었다. 광화문엔 10만 인파가, 3주기 당일 안산 기억식엔 2만 명이 함께 했다.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상황은 3년이라는 시간보다 힘이 세다. 사람들은, 아니 참사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어린 중학생들도 그날을 잊지 않았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학생들의 기억과 마음을 끌어 올리는 과정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데 3월 10일 박근혜가 파면되던 순간의 감상을 그린 학생들의 작품에서 거의 모두가 ‘촛불-탄핵-세월호’를 연결 지은 것을 발견했다. 놀라웠고, 여기서 수업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끌어 올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1700만 촛불의 동력은 ‘세월호’ 였다고 이야기한다. 피해자가 직접 움직이는 싸움을 3년 동안 목도한 사람들이 기꺼이 ‘광장의 한 점’이 되기를 자처했고,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나는 그 촛불이 40미터 바다 밑에서 배를 건져 올리고 일상의 껍데기에 잠시 가려졌던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도 끌어올렸다고 생각한다.

기억이 촛불을 피웠고 촛불이 기억을 끌어올렸다. 이 아름다운 상호 순환은 사람들이 몸으로 기억하는 ‘사회적 경험’이 되었다. 추운 겨울 밤 허들링 하는 황제 펭귄처럼 타인의 체온에 몸을 녹이며 자식 잃은 부모와 함께 울었던 토요일들을, 국회와 법원의 판결에 숨을 죽이다 환호했던 금요일들을, 그리고 3년 전의 약속을 지켜 바다에서 돌아온 또 다른 금요일을, 우리는 잊지 못하게 되었다.

‘세월호 세대’ 라는 말이 있다. 참사 당시 스무 살을 전후한 청년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수업을 하고나서 ‘세월호 세대’의 범위가 확장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어린 사람들도 세상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판단한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직접 겪은 이 세대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없는 기억을 주입하지도, 잊혔던 기억을 끌어올리지도 않았다. 그저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기억을 ‘표현’하는 장을 마련했을 뿐이다. 이 세대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잊은 것은 저들뿐이다. ●
 
 
필자 소개

최주연 | 수학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싶은 수학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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