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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 제28호

노동자들의 잇따른 과로사,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일본 과로사방지법의 의의와 한계

  • 이준혁
넷마블, LG유플러스 콜센터, CJ E&M. 작년과 올해 젊은 노동자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곳이다. 일터에서의 죽음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20~30대 젊은 노동자들의 자살·돌연사는 큰 사회적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젊은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옆 나라 일본 광고대기업 덴츠에서 일하던 신입사원이 재작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고인은 사망 전 한달 동안 105시간의 연장근무를 했을 뿐 아니라 상사의 폭언, 괴롭힘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명문 도쿄대 출신의 24세의 젊은 노동자는 “내일이 올까 두렵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죽음은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아베 신조 총리는 고인의 어머니를 직접 총리 관저로 초대하기도 했다. 아베는 눈물을 흘리며 “두 번 다시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결의로, 장시간노동을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과로사 문제를 제기하다

일본에서 과로사 문제는 1980년대부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1982년 《과로사》라는 책이 인기를 끌면서 이전까지는 그저 우연한 돌연사로 취급되었던 죽음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88년 변호사, 의사 등 직업병 전문가들은 ‘과로사 110번’ 상담 전화를 개통했다. 상담이 폭주해 3년간 2500건에 달했다.

1991년에는 과로사·과로자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전국 과로사를 생각하는 가족모임’(이하 가족모임)이 결성되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 정부는 “과로사라는 병은 없다”며 용어 사용조차 거부했다. 가족모임은 보상을 신청하는 한편, 산업재해 인정기준에 ‘과로사’ 항목을 넣을 것을 요구했다. 가족모임은 산재 인정 및 재판, 보상 과정에서 법률적 지원 및 유가족들 간의 정보 공유에 힘을 쏟았다.

유가족들은 정부와 사측만이 아닌 스스로를 짓이기는 외로움, 슬픔과도 싸워야만 했다. 유가족들의 상당수가 “무리해서라도 회사에 보내지 말 걸…”, “일하러 내보내지만 않았어도…” 같은 자책과 슬픔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족모임은 유가족 스스로의 괴로움을 언어화하면서 같이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여러 상담, 회합의 자리를 열었다. 집단적, 사회적으로 슬픔을 나누면서 연대의 끈은 단단해졌다.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정부도 조금씩 대책을 마련했다. 1988년에는 주 40시간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하고(전면 실시는 97년) 1992년에는 기업주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노력의무를 명시한 ‘노동시간단축추진법’이 제정되었다. 산재 인정 기준에도 과로사 항목이 추가되었다.
 
"5시 이후는 나의 시간! 너무 오래 일하는 건 안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 일본의 노동자들
 
 

과로사방지법의 의의와 한계

그러나 일터에서 죽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다. 2014년 과로사한 노동자는 763명으로, 1999년 493명보다 많았고 2007년 952명과 비교해도 크게 줄지 않았다. 2014년 산업재해 인정 건수도 277건에 불과했다. 이에 가족모임을 포함한 노동 및 시민사회단체는 과로사 문제를 다루는 특별법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55만 명이 입법 청원서명에 동참할 정도로 사회적 관심이 뜨거웠다.

결국 2014년 11월 ‘과로사방지추진법’이 도입되었다. 과로사방지법은 장시간 과중노동 문제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명시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 근로감독 강화, 상담 확대에 더해 관련 지표, 통계자료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도록 했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과로사 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과로사방지법은 이른바 ‘과로사 라인’도 제시했다. 1개월 간 연장근로시간이 월 평균 100시간이거나 2~6개월 간 월 평균 연장근로시간 80시간인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업무기인성을 인정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노동시간을 줄여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했다. 주당 총노동시간을 법으로 제한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이른바 ‘36협정’이라고 불리는 노사합의를 체결하면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다는 것 외에 특별한 법적 규제가 없다. 1 (36협정은 해당 내용이 있는 노동기준법 36조의 이름을 딴 것) 심지어 이조차도 잘 지켜지지 않아서,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36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채 연장근로를 시킨 중소기업의 비율이 43.4퍼센트에 달했다. 이 중 35퍼센트에 달하는 사업주는 36협정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답했다.

 

아베의 노동개악

지난 3월 13일, 아베 총리의 주선 하에 일본의 노총인 렌고, 경영자 단체인 게이단렌이 노동기준법 개정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체결했다. 아베는 처음으로 근로시간 상한제도를 도입하고 처벌조항까지 넣었다며 ‘역사적 한 걸음’이라 자평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실체는 ‘과로사 합법화’다. 2~6개월 평균 연장근무시간이 80시간을 넘는 것을 금지했으며, 성수기에 한해 월 100시간 미만까지는 연장근무가 가능하게 한 것이 이번 노사정합의의 골자다. 앞서 언급한 과로사방지법이 규정한 과로사 라인을 합법화한 것이다.

일본 시민사회는 이번 개혁이 ‘노동방식 개혁’이 아니라 ‘노동착취방식 개혁’이라 비판한다. 가족모임과 야당은 이번 노사정 합의가 과로사방지법 위반이라 주장했다. 청년단체들은 게이단렌 회관 앞 등지에서 “우리들은 놀 시간도, 사랑을 할 시간도 필요하다! 과로사 시키지마라! 목숨을 빼앗지 마라!”며 집회를 열었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월 100시간 연장근로하다 사망해도 기업 측이 ‘법률 범위 안’이라고 주장할 것이라며 앞으로 과로사 산재인정 건수가 더욱 줄어들 것이라 비판했다. 심지어는 노사정합의의 주체인 렌고의 산하조직에서조차 “80시간미만의 잔업으로도 조합원들이 계속 쓰러지고 있다. 100시간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사례의 교훈

지난 3월 7일, 국회에서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여 과로사방지법을 발의했다. 산재보상법에 ‘업무상 재해’를 ‘과로사’라는 표현으로 바꾸고 노사정이 과로사방지협의회를 꾸리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 과로사 문제가 개인이 아닌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제도적·정책적 방안 못지않게 슬픔을 함께 나누고 국가와 기업에 책임을 묻는 노동자·시민의 운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대중적 제어를 받지 않는 대책은 아베의 노사정 합의와 같이 오히려 현실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덧붙이는 말

이준혁 |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넷마블 게임개발자의 사망 사건에 충격을 받고 글을 썼다.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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