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기획
  • 2017/04 제27호

어느 콜센터 현장실습생의 죽음

엘지유플러스에게 책임을 묻다

  • 이상욱

소모품으로 파견되는 현장실습생

“콜수 못 채웠어”, “귀책 잡혀서 콜 들어야 해”.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북 전주 현장실습생이 생전에 남긴 문자메시지다.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고인은 전공인 애완동물과는 무관하게 엘비휴넷으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엘비휴넷은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 업무를 대행하는 회사다.

고인은 해지를 목적으로 전화하는 고객들을 응대하여 마음을 돌리고, 심지어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SAVE(해지방어)부서에 있었다. 재직했던 사람들이 ‘욕받이’부서라고 지칭하는 곳이다. 실적에 대한 압박과 감정노동 스트레스가 재직·퇴사자의 공통된 고충이다.

그럼에도 회사 측은 고인의 극단적 선택에 ‘업무연관성’은 없다고 말한다. 2016년 이 고객센터로 파견나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은 33명이었지만, 2017년 2월 기준으로 10명만 남아있는 상태다. 2009년에 설립된 엘비휴넷에 2016년 9월 입사한 고인은 무려 212기였다. 이처럼 평균근속은 0.86년에 불과했고, 2주마다 신규채용을 해왔다. 작년에는 입사자(594명)보다 퇴사자(631명)가 많았을 정도였다. 2014년에도 해당 센터 상담사가 실적압박과 노동착취를 폭로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고인과 남겨진 동료들은 현장실습생이자 노동자로써 소모품 취급을 받아왔음이 명백하다.
 
 

경영세습으로 탄생한 엘비휴넷, 진짜 사용주 엘지유플러스

엘지그룹은 다른 재벌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창업주의 아들과 손자에게 경영세습과 부의 대물림을 해왔다. 엘비휴넷은 구인회의 손자인 구본완 대표와 그 일가가 장악하고 있다. 작년에는 엘지CNS의 콜센터 운영 자회사인 유세스파트너스(자본규모 59억 5천만 원)를 32억 원에 헐값으로 인수했다. 

무엇보다 엘비휴넷은 전체 매출의 80~90퍼센트를 엘지유플러스(특수관계자)를 통해서 거둬들인다. 그룹차원의 경영세습과 편법적인 지원으로 총수일가는 3대째 부를 쌓고 노동자를 지배해왔다. 자본금 10억 원으로 설립된 엘비휴넷은 2015년 말 기준 93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744억 원이 엘지유플러스로부터 얻는 매출이다. 이것이 금수저 물고 태어난 총수일가가 세상을 지배해 온 방식이다.

엘비휴넷을 포함해 전국의 고객센터가 엘지유플러스 관리하에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매일 센터의 실적을 집계해 순위를 매기고, 이를 각 센터→부서→팀장→상담사로 공지한다. 이 문서는 엘지유플러스 내부에서 작성되고 전국 5개 센터로 하달된다. 센터별 비교경쟁을 부추기는 진짜 사용주가 엘지유플러스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배·관리를 행사함에도 하청구조·간접고용을 통해 사용자는 책임을 외주화했다. 반대로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하청·파견 노동자들은 맨 밑바닥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이것이 고인과 흙수저의 삶이었다. 그럼에도 엘지유플러스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안타까운 죽음의 의미

고인이 체결한 실습협약서는 하루 7시간 기준 160만 5000원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학생·회사 간 근로계약이 다시 체결되었다. 실습협약서보다 훨씬 적은 기본급 지급, 직업교육법을 위반한 연장근로가 적용된 것이다. 실제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과 해지방어, 상품영업 등의 실적이 반영되는 성과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인은 수습기간을 마친 작년 12월부터 기를 쓰고 실적을 올렸다. 재·퇴직자들은 고인이 올린 실적이 막 수습을 마친 18세 노동자가 이루기에는 버거웠을 수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인은 그 대가를 수령하지 못했다. 엘비휴넷이 상품영업에 따른 성과급은 익익월에나 지급했고, 중간에 퇴사하면 성과급을 아예 지급하지 않았던 탓이다. 

고인의 유가족은 고인이 12월 임금을 받고 나서 매우 크게 실망했다고 기억한다. 특성화고 취업률 경쟁에 떠밀려 나간 현장실습, 감정노동의 스트레스, 실적압박에 나머지 공부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행한 노동의 의미를 확인할 길은 월급명세서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노동의 대가는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는 올 1월에 명을 달리한 고인을 중도퇴사 처리하고 끝내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죽음은 현장실습의 문제, 재벌대기업 하청노동자의 현실, 실적과 감정노동의 압박의 심각성을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노동자로서 첫발을 내딛는 수많은 현장실습생·청년들은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내던져지고 있다. 

임기가 없는 재벌대기업은 앞으로도 노동자로 살아 갈 모두를 고통으로 몰고 갈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는 경영세습을 종식시키고, 외주화·간접고용을 통한 책임회피와 초과착취를 중단시키는 싸움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재벌대기업과 흙수저의 죽음을 뒤집어야 한다. 엘비휴넷과 엘지유플러스가 고인 앞에 사죄하고 실질적인 사용자 책임을 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덧붙이는 말

이상욱 | 지독한 야구팬.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에서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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