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사회운동
  • 2017/05 제28호

2017년 대선, 새로운 한국사회를 설계해야 한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 심상정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표명한다.

  • 사회진보연대
오늘의 사회운동은 총체적 위기에 처한 한국사회를 재건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박근혜 탄핵과 이재용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정치권력과 경제구조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하고 이재용을 구속시킨 민주주의의 힘으로 정치공동체와 사회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번 대선은 이러한 변화를 설계하는 첫 걸음이 되어야 한다. 진정 새로운 한국사회를 위해서 우리는 보수세력은 물론 보수세력의 집권을 초래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무능과 실패와도 대결해야 한다.
 

문재인·안철수, 한국사회 재건할 역량과 의지 있나

오늘날 한국사회는 실로 엄중한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한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미국 트럼프 정부 등장으로 한층 고조된 가운데, 한국의 사드 배치 문제가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이재용 게이트’를 통해 민낯을 드러낸 한국 재벌체제의 결함이 저성장 국면의 장기 고착화와 함께 수출·제조업을 지탱해온 중후장대 산업의 구조조정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 그 위기의 결과로 노동의 불안정과 계급간 불평등이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과연 유력 후보들은 이번 대선에서 위기의 한국사회를 재건할 전망과 대안을 보여주고 있는가? 더민주당 문재인 후보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서 그러한 의지나 역량을 발견하기는 매우 어렵다.

탄핵으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이 박근혜 정권과 분명히 단절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뜨거운 겨울,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이를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 국면이 시작되자 유력 야권 후보들은 적폐청산 구호를 슬그머니 감춰 버렸다. 더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대연정을 앞세운 안희정 후보가 급부상하자 적폐 ‘정치세력’ 청산으로 말을 바꿨다. 또 안 지사의 탈락으로 지지율이 급상승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나를 지지하는 국민이 적폐세력’이냐고 묻자 아예 적폐청산 구호를 용도 폐기해 버렸다. 안철수 후보 측은 적폐청산 구호가 “문재인을 반대하면 모두 적이라는 패권적 발상”이라며 “안 후보를 따라 이제라도 국민통합을 얘기하는 건 환영하지만 그에 앞서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가 적폐청산 대신 국민통합을 내세우게 된 것은 이해득실 판단에 따라 과거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보수층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치공학적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유력 후보들의 적폐청산 의지 실종은 실로 한국사회 가장 큰 적폐라 할 수 있는 재벌 정책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일반적으로 기업집단 지배구조에서 가장 큰 결함은 다단계출자에 의한 총수 또는 지배주주의 소액지배, 즉 소유와 지배의 괴리에 있다. 한국의 재벌에 고유한 순환출자는 총수의 출자금을 일부 회수하는 것이므로 최소의 소유로 최대의 지배를 실현하는 최악의 다단계출자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무능한 총수가 초래한 위험을 노동자와 주주가 부담해야 하고, 나아가 기업에 특수한 위험이 시스템적 위험으로 보편화하면서 국민경제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재용 게이트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이 한국의 재벌은 국민경제나 사회에 대한 일말의 책임도 없이 개인적 부와 기업집단에 대한 통제력 유지에 몰두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재벌은 경제적 혁신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식도 없다.

이재용 게이트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한국 재벌이 갖는 문제점은 조선·해운·유화·철강 등 주요 수출 제조업 부문의 대대적인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업의 경우, 총수일가 경영세습 관련 소유지배구조, 불법 다단계 하청구조와 노동유연화에 따른 비정규직 대량 해고, 정부 산업정책 실패와 관리·감독 부실, 산업금융 특혜·비리 등 모든 측면에서 재벌체제의 모순이 응축되어 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유력 후보들은 △지주회사 요건 및 규제 강화 △다중대표소송제·집중투표제 도입 △횡령·배임 등 기업범죄 처벌 강화 등의 방안을 제시할 뿐, 재벌 기업집단의 해체나 경영권 세습, 불법·편법적 부의 증식을 근본적으로 제한할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재벌 위주 경제구조와 경제정책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또 문재인 후보는 ‘일방적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는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할 뿐,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로 귀결되는 친재벌 산업정책이나 구조조정 관련 법·제도 개혁 방안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오히려 소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을 바탕으로 산업개혁·구조개혁 논리에 편승하면서 구조조정을 합리화하고 있다.

유력 후보들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자세는 사드 배치 문제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안철수 후보는 사드 배치 반대 당론까지 주도적으로 뒤집으려고 시도하면서 사드 찬성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 역시 그간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며 사실상 사드 찬성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보수후보들은 대놓고 한반도 전술핵 배치를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드 배치는 핵무기 숭배를 자극해 군비경쟁을 촉발하고, 군축과 평화로 나아가는 데 크나큰 걸림돌로 작용할 따름이다.

 
근본적 사회변화를 위한 운동을 강화하자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이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향우 경쟁을 펼치는 역설적 정세에서 노동자운동의 상태는 어떠한가.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운동은 박근혜 정부의 반민중·반민주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선도 세력이었고, 마침내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촛불항쟁의 주도 세력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으로 발생한 정치적 진공상태를 폭넓은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실력과 태세를 갖추지는 못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대선에서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정치전략안을 합의하는 데 실패했고, 다만 대선에서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고 보수야당에 대한 지지를 금지한다는 투표 방침을 수립한 상태다. 최선의 방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짧게 보더라도 지난 10여 년간 난맥상을 드러낸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 운동의 현실에서 민주노총이 취할 수 있는 차선책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 방침에 공감을 표한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이번 대선에 한해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로 집약되는 심 후보의 정책이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1만원, 재벌체제 해체, 사회공공성 강화, 노조할 권리 등 노동자운동의 핵심 의제와 맞닿아 있다고 판단한다.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로 상징되는 진보진영이 정권교체의 들러리가 되기보다 독자적인 색깔과 목소리를 내야 향후 노동이 존중받는 평등사회를 앞당길 수 있다. 장기 경기침체와 한반도 위기라는 객관적 제약 속에서 여소야대 국회와 개헌 국면이 맞물리면서 새 정부의 개혁 공약이 언제든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민중·진보진영은 새 정부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접고 주체적 요구와 투쟁 태세를 갖추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정의당의 역사와 이념·노선에 대한 우리의 비판적 평가를 대체할 수는 없다. 심 후보 스스로 “[민주노총과] 서로 오해도 생기고 서로 소원해지기도 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정의당은 그동안 조직된 노동자운동과 의식적으로 거리두기를 해왔다. 이러한 ‘탈 민주노총론’은 기실 선거정치와 집권을 강조하는 수권정당론 위에서 자라난 것이었다.

노동자운동의 쇠퇴라는 조건에 조응해서 대중운동과 괴리된 상층 정치역량들이, 상대적으로 실현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요구들을 제도화해 국민의 지지를 확대한다는 개혁주의 전망은 진보정당의 이념과 노선을 대폭 우경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통합진보당의 창당과 분당, 그에 뒤이은 정의당의 창당과 2012년 심상정 후보 대선 출마 포기, 국민참여계 천호선 대표 선출과 ‘정의로운 복지국가’ 강령·당헌 개정 등 정의당의 역사는 현실 주류 정치에 순응해온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본격적인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입각을 통해서든 개헌을 통해서든 새 정부와의 연정 문제가 당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거론되는 것도 같은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연정 참여는 그 정부의 성패에 대해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실용적인 이유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가령, 더민주당과 손을 잡고 일부 개혁 정책을 관철시킨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재건·개조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진보정당’이라고 한다면 현 정세에 대한 엄중한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변화에 관한 정치이념을 분명히 제시하고 노동자운동과 전략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지난 총선과 이번 대선에서 정의당과 심 후보가 민주노총의 지지 정당 및 후보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 책임감은 더욱 막중하다. 정의당이 정치의 무게중심을 제도와 정당에서 사회와 운동으로 이동하기를 바란다.

이번 대선은 새로운 한국사회를 설계하는 출발점이다. 대선 이후, 한국사회의 재건과 근본적 사회변화를 위해 공통의 인식과 지향을 바탕으로 사회운동의 힘과 지혜를 모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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