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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 제21호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지켜온 원칙의 힘

금속노조 충남지부 갑을오토텍지회 이재헌 지회장 인터뷰

  • 인터뷰 정지영 아산시비정규직지원센터
  • 만난사람 이재헌 갑을오토텍지회 지회장
지난해 10월호 ‘노조할 권리’ 코너를 통해 만났던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끝난 줄만 알았던 노조 파괴 시도가 다시 재개됐다. 작년보다 더 거세다. 불법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깡패들을 고용해 공장 난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조합원들과 함께 굳건하게 공장을 지키며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재헌 지회장을 만났다.
 
 사측이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노조 파괴 공격을 하면서 ‘이 정도면 무너뜨릴 수 있겠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작년과 비교할 때 사측과 노조의 상황이 어떤가요?
 사측이 작년에 시도하고 안 돼서 다시 하는 거라 봤었죠. 근데 지금 보니 결국 이게 한 묶음이었던 거예요. 일부는 들통나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고, 노사가 합의를 했죠. 근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조 파괴를 한 거죠. 저희도 회사가 앞에선 합의하면서도 공격할 거란 생각은 했어요. 본인들이 짰던 시나리오 일부만 확인이 된 건데, 나머지는 그대로 진행한 셈이죠. 

결국 작년보다 상황이 커진 거예요. 저희가 역사상 이렇게 장기간 투쟁을 한 적이 없거든요. 조합원들이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건 자본의 태도가 너무 괘씸하니까 분노를 느끼고,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달아 가는 겁니다.
 
 
 자본이 준비를 많이 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지회는 1년 간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저희 나름대로 준비했으니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7월에 관리자들이 불법 대체 생산을 하니까 그걸 막는 투쟁을 시작했죠. 근데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게 있어요. 투쟁해야 했던 건 분명한데, 대체생산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을지는 몰랐다는 점에서 판단을 잘못한 거죠. 물론 이걸 알았다고 해도 회사가 계획한대로 흘러갔을 공산은 커요. 결국 진검 승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거죠.
 갑을 자본이 사운을 걸고 ‘모 아니면 도’로 가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갑을도 그룹이고, 규모는 차치하더라도 여러 계열사들이 있는데, 그중 한 개 사업장의 금속노조를 깨자고 이렇게 나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간 갑을 자본이 해온 말과 태도, 행동을 볼 때 결국 노동자와 노조를 ‘동반자’가 아니라 자기들이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싶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회사가 청산과 폐업에 대한 계획을 계속 던지다가, 8월 10일에 공식화 시킬 줄 알았어요. 근데 그걸 안 하고 지금까지 온 거예요. 결국 폐업이나 청산 카드는 노조를 흔들기 위한 겁니다. 이건 노조가 잘 방어해왔기 때문에 그 카드를 쓰지 못하는 거겠죠. 결국엔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봅니다. 부도를 낼 수도 있고요.

회사도 계속 버티진 않을 거예요. 둘 중 하나겠죠. 정리를 하든 무리수를 두든 결단의 시점이 분명 오니까요. 그래서 저희도 내부적으로 이런 전망에 대해 소통하면서, 회사가 노조 파괴를 포기하게 만드는 투쟁을 하자고 결의하고, 계획,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갑을 내에 금속노조가 있는 사업장이 오토텍 하나인가요?
 동국실업 아산지회와 경주지회, 코스모링크지회, 그리고 대구에 갑을메탈지회가 있어요. 이곳들은 한국노총 산하였다가 금속노조로 전환한지 오래되지 않았어요. 동국실업은 갑을오토텍 노조 파괴 시나리오와 연관이 있기도 해요. 회사가 시나리오 짜면서 모집했던 용역 깡패들이 1차 투입됐던 곳이거든요. 성공 보수도 받았고요. 금속노조 설립을 막진 못했지만 열흘 가량 투입됐었어요. 실제 용병들이 갑을그룹 법무팀장 명함 달고 교섭도 들어갔더라고요. 현장에도 들어가 있었고. 19명이 1인당 400만 원씩 받았다는 증거도 확보돼 있습니다.

갑을그룹은 M&A 시장에 나온 회사들 중 헐값에 먹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회사를 사서 그걸 통해 이득을 취하면서 성장해왔어요. 그래서 지금 여러 계열사를 갖고 있죠. 오토텍은 만도에서 투기자본에 팔렸다가, 한 번 더 투기자본이 사고, 그 다음에 미국계 자동차부품사 모딘이 사서 저희 기술 다 빼먹고, 그 다음에 갑을이 들어온 거예요.
 
유리창이 깨진 어용노조 사무실 ⓒ충남시사신문
 
 사주가 여러 번 바뀌는 와중에서도 비정규직 없는 공장으로 지켜온 게 대단해요. 현장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비정규직은 없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원칙 말고, 이걸 지키기 위해 만들어온 현장의 원동력은 어떤 것이었나요?
 1998년 이후 만도기계가 흑자 부도낸 시점이 신자유주의 물결이 거세지던 시점이었어요. 그 와중에 사주가 다섯 번이나 바뀌었으니 쉽지 않은 조건이었죠. 근데 그게 오히려 원칙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어요. 같은 회사였다가 분리된 위니아만도가 투기자본에 의해 정리해고가 있었고, 이후 공장이 비정규직화 되는 걸 보면서 현장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봤던 거죠. 
 
 
물론 어려움도 많았어요. 2012년 식당 조합원 정년퇴직자 수만큼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합의를 했었는데, 2013년에는 회사가 정규직 채용 안하겠다고 버텼었어요. 그래서 식당 조합원들이랑 같이 파업을 했었죠. 내부적으로 비정규직 채용을 정규직의 고용안정판으로 보는 정서도 있었는데, 이런 공격이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담보하는 게 아니라, 우리한테 다가올 미래라는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동료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원칙을 지킨 거죠. 파업을 꽤 오래했어요. 식당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체가 같이 투쟁한 거죠.
 
 지난 몇 년간 여러 곳에서 노조 파괴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을 투쟁이 놀라운 점은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흩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렇게 튼튼하게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뭘까요?
 노동자들이 갈라지는 상황이 만들어지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유성기업지회 같은 경우 투쟁도 잘하고 열심히 싸워온 조직인데요. 2011년 5월 직장폐쇄 당시 공장 바깥으로 밀려나가서 그 상황이 오랜 기간 지속됐잖아요. 그렇게 장기화될 땐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워요. 다만 지금까지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회사가 공세를 취하기 전에 지회 내부에서 끊임없이 소통하고 같이 움직여왔기 때문입니다. 선제적 대응으로 저희가 선택한 건, 같이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버틸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 않죠. 근속년수가 오래된 형님들도 많이 있고, 건강상의 문제나 지친 마음도 있고요. 다만 이와 관련해선 각 분임조 단위나 소대에서 소통하면서 서로 이해하면서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조직적인 방향으로 잡고 있어요.
 
 내부에서 소통하고, 문제해결 과정을 갖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갑을오토텍지회 모습에 대한 얘기도 들었어요. 변화나 쟁점에 대해 늘 조합원들과 대화하고 소통하시나요?
 투쟁 시작하고 조합원 간담회를 세 차례 했어요. 변화가 있으면, 같이 알고 소통해야 하거든요. 같은 결정을 해야 하고. 그래서 상황과 조건의 변화나 오해의 여지가 있으면, 그걸 개별적으로 풀지 않고, 열어놓고 이야기하는 편이예요. 저희의 전통입니다. 투쟁이 흘러온 방향이나 전환을 조합원들이 모두 알고 있고, 지금도 변화된 상황에 대해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지역에서 연대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 가장 힘이 되시는지.
 조합원들 스스로 연대의 가치와 소중함을 많이 느낍니다. 저희 지회도 활동가 위주로 연대 다니고, 다른 사업장 투쟁기금 모금도 하고 했는데요. 실제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건 몸으로 함께 해주는 거잖아요. 이번 투쟁하면서 금속이나 지역에서 많은 도움을 받다보니까, 저희 조합원들이 오히려 다른 사업장들의 어려움이나 연대의 의미에 대해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이후에 저희 조합원들이 빚 갚으러 많이 다닐 겁니다.
 
 
 작년 한 해 심리적으로 상처도 받고, 트라우마도 생겼는데요.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셨었잖아요. 그게 어떻게 진행됐고, 그 효과나 결과, 지금 상황은 어떠한지.
 작년에 사측이 용역깡패 고용해서 어용노조 만들고 폭행한 사건 이후 걱정 많이 했어요. 유성지회에 대한 간접 경험도 있고. 그래서 빠르게 대처했죠. 조치가 빠르게 이뤄지니까 심각하게 가는 경우는 줄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투쟁 중이라도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해요. 마음이 아프면 쉽게 해결이 안 되잖아요. 가장 좋은 건 이런 일을 겪지 않는 것이고, 겪었다면 빨리 추스를 수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 우려보다는 심각하지 않았어요. 트라우마 겪는 조합원들은 상담 진행하면서 많이 좋아졌고요. 아직 상담 진행하는 분들도 있어요. 작년에 그런 치유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 잘 싸울 수 있는 거죠.
 
마음 건강은 자존감과도 연결되잖아요. 그러다보니 상담을 거부하는 분들도 많아요. 지역에 두리공감이란 단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걸 따라서 했고, 진단을 위한 검사는 모든 조합원이 했습니다. 상담은 개인상담,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병행했고요.
 
 전국에서 연대가 있지만, 직접 오긴 힘들기도 하잖아요. 《오늘보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지요.
 저희 투쟁에서 실제 어렵고 힘들고, 긴장 상태에서 24시간 보내야하는 상황일 때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어요. 노동자들은 투쟁 기간이 길어질수록 함께 하는 이들에게 받는 힘이 크거든요. 문제 해결을 위해선 사업장의 힘만으론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싸우는 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지금 투쟁하고 있는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함께 투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갑을오토텍 정문앞에 쌓아둔 철제구조물 틈으로 밖을 살피고 있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
ⓒ경향신문 정기훈 기자
 
 다가올 국정감사 증인 채택이 됐잖아요. 전망이나, 관련한 계획은 어떠한지요?
 자본과 행정기관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드러나게 함으로써 제 자리를 찾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국정감사로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문제해결은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거잖아요. 국정감사는 그렇게 가기 위한 보조수단의 하나죠. 근데 지금 갑을 사태가 이슈가 많이 되고 있어서, 현재 상황을 알리는 역할과 갑을 자본의 불법을 통제할 수 있는 조치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틀 후인 9월 23일 아침, 사측은 몇 주 만에 다시 용역깡패 100여 명을 동원해 공장 난입을 시도했다. 몇 배 불어난 경찰은 용역 깡패의 폭력 행위를 비호하며 수수방관했다. 노동자들은 아직 공장을 지키고 있다.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한 연대의 힘이 필요한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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