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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사회운동
  • 2015/10 제9호

에버코스는 왜 구급차를 돌려보냈나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이 노동자의 생명을 살린다

  • 김성영 민주노총 충북본부 비정규사업부장

 

잔인한 조치

기업의 잘못된 사고 대응으로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화장품 제조업체 에버코스 이야기다. 산재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회사는 119 구급차를 돌려보낸 후 지정병원 호송차가 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 했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날수록 공분은 커졌다. 119를 돌려보낸 후에도 15분 거리 종합병원을 두고 굳이 30분이 넘게 걸리는 지정병원을 찾아간 점, 이송 과정에서 다발성 출혈을 일으키는 고인을 들것도 없이 회사차에 태운 점 등 사측의 행동은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사건이 공론화되기까지 한 달정도가 걸렸다. 언론보도 후 시민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이후 대응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던 사고 동영상도 가족의 침착한 대응이 없었다면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사측이 산재사고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사고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묻는 잘못된 제도는 사업주가 산재를 쉽게 은폐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번에도 경찰이 사건을 산재가 아닌 교통사고로 처리하려고 한 정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노동부 역시 언론보도 후에서야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제천에서 산업재해 상담을 진행했을 때를 돌아보면, 소위 ‘공상처리’로 치료해오다 회사가 변심하거나 부상이 심해져 상담을 요청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부상은 대부분 입원을 요할 정도로 심각했지만 산재 신청을 한 환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에버코스의 산재은폐로 노동자가 죽은 이후 이뤄진 노동부 특별근로감독에 따르면 회사는 3년 동안 무려 26건의 산재를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인한 과태료를 제외하고도,과태료만 1억 4000여만 원(300인 미만 사업장 10퍼센트 경감)이었다. 
 

기업 처벌 어려운 제도

에버코스 사망 노동자 유가족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회사를 고소했다.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생명을 경시한 사건이기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이하 제정연대)’도 이 싸움에 함께하고 있다. 제정연대는 충북의 노동·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행위인데도 하지 않음)에 의한 살인죄’로 고발장을 접수했다. 민주노총 충북본부와 비정규직 없는 충북만들기 운동본부는 공장 앞 선전전을 진행하며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산재은폐를 문제 삼아 기업을 형사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다는 점, 그리고 사업장에서 안전에 대한 일상적 감시체계를 갖추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산재은폐는 과태료로 마무리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또한 강력한 처벌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업무상 과실치사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역시 성사되기까지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억울한 죽음을 방조한 기업주를 처벌할 제도가 거의 없는 것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란?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이 1위임에도 재해율은 0.7퍼센트로 평균치인 2.7퍼센트보다 현저히 낮다. 이는 사망 정도의 중대재해가 일어나야만 공식 산재처리가 가능한 현실을 방증한다. 중대재해에 대해 과태료와 벌금을 상회하는 강력한 형사처벌이 필요한 이유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 안전을 경시하는 게 중대한 범죄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노동안전을 비용으로 생각하는 기업들에게 안전의 중요성 만큼이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일상적 감시자, 노동조합

노동조합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에 주목하고 실천을 도모해야 한다. 노동안전의 직접적 당사자이자 주체는 바로 현장에 있는 노동조합이기 때문이다. 

충북의 노동·사회단체들은 에버코스 산재은폐 노동자 사망사건 이후 꾸준히 대응하고 있다. 기소 이후에는 광범위한 탄원서 조직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대응을 통해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이라도 민주노총이 함께하고 있다는 걸 적극적으로 알려나갈 계획이다. 노동조합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안전을 지키는 게 왜 다른 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고, 그로 인해 이번 사건을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하나의 사례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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