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필름X정치
  • 2015/07 제6호

기울어진 운동장의 ‘소수의견’을 지지합니다

영화 <소수의견>의 디테일과 한국 법정의 희비극

  • 조영관 변호사
6월 25일 개봉한 <소수의견>에는 1세대 아이돌 출신 남자주인공 윤계상과 그간 충무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 김옥빈이라는 A급 배우가 등장한다. 씬-스틸러 유해진, 이경영, 권해효이 무게감을 더하고, 범죄스릴러에 잔뼈가 굵은 17년차 중견감독 김성제가 메가폰을 잡았다. 요즘같이 책을 멀리하는 시대에 8쇄를 찍을 정도로 잘 팔렸던 원작의 스토리텔링도 탄탄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배급사이면서 대형 영화체인 CGV를 갖고 있는 CJ가 배급을 맡았으니 흥행은 약속된 것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만들어진 뒤, 무려 2년 동안 개봉이 지연되었었다.
 
무엇 때문에 개봉이 늦어졌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소수의견>의 모티브가 2009년 재개발 철거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철거민과 경찰이 사망한 ‘용산참사’이기 때문인지, 법조계 특히 그 중에서도 검찰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내용 때문인지, 개봉 직전인 2013년 7월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1000억원대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혐의로 이례적으로(!) 구속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년이라는 묵은내를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영화는 괜찮다는 것이다.
 
 

현실의 모순, 스크린으로

이 영화는 용산참사 자체를 담고 있진 않다. 영화는 온 가족이 남일당 골리앗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철거민들의 처절한 목소리는 들려주지 않는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박한 외침, 전 재산과 다름없는 권리금과 시설투자비에 대한 보상 없이 몇 개월 치 보상금만 받고 일방적으로 쫓겨나가야 하는 임차인들의 서러운 이야기도, 철거용역들의 야만적인 폭력도 없다. 영화는 대부분 재판으로 진행되는 법정을 비춘다. 실제 용산참사 철거민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변호인이 국민참여재판(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평결을 내린다. 권고 효력만 있을 뿐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을 신청했었지만 판사는 검찰이 신청한 증인이 많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었다.
 
그러나 <소수의견>은 용산참사에서 밝혀진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단순한 모티브라고 보기엔 디테일이 살아있고, 무엇이 현장의 진실인지 끊임없이 묻는다. 그런 점에서 <소수의견>은 2009년의 용산을 그린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잘 만든 법정영화다. 법을 다루는 일을 밥벌이로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소수의견>은 지금까지 개봉한 국내 법정영화 중 가장 충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법정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는 ‘피고인’ 과 ‘피고’를 명확하게 구분해 사용한다. ‘피고인’은 범죄행위를 저질러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수사 단계에서는 ‘피의자’라고 부른다) 최종적으로 검사의 공소제기를 통해 형사재판을 받는 사람을 말하고, ‘피고’는 형사재판 이외의 민사/행정 재판에서 소송을 당한 상대방을 말하는 용어인데, 지금까지의 법정영화나 드라마에선 혼용해왔다(흥행작 <변호인>도 형사재판 피고인을 ‘피고’라고 부르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물론 암호 같은 법률용어가 문제라는 항간의 지적에 나는 동의하는 편이다. 헌데 <소수의견>은 오히려 법을 잘 모르는 관객이 보기엔 이해하기 어렵거나 그 메시지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원칙에 충실했다(물론 피고인이 재판을 마치고 미결수 옷을 입은 채 변호인과 법원 정문으로 퇴장하는 장면은 현실에서 조현아 부사장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이긴 하다).
 

배경지식 : 재정신청과 변호사 징계

<소수의견>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법정지식이 있다. 영화는 철거현장에서 경찰을 죽인 철거민 박재호(이경영)의 형사재판 말고도 몇 개의 재판을 함께 소개하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이 경찰이라는 철거민의 주장에 따라 진압경찰을 고소한 사건이다.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기소하지 않을 것임을 뻔히 예상할 수 있다.
 
이때 검사의 불기소 처분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판사에게 범죄자에 대한 형사재판을 열어줄 것을 요청하는 제도가 바로 ‘재정신청’ 제도다. ‘하늘같은 검사님’의 처분을 뒤바꾸는 제도라는 점에서 인정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재정신청을 통해 판사가 검사의 판단을 뒤집은 경우는 0.96퍼센트 수준이다. 100건 중 1건이 채 인정받지 못한다. 바늘구멍을 뚫고 인정되더라도 암초가 더 있다. 형사재판이 열리더라도, 현행법에 따라 재판의 진행은 온전히 검사가 담당한다. 재판이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하다. 결국 변호사가 아닌 검사가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황당하고 낯선 광경을 보게 된다. 반공법에 따라 처벌된 피고인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검사를 “품위손상”을 이유로 정직 4개월의 징계를 한 검찰의 모습과 매우 대조적이다.
 
또 하나는 변호사에 대한 징계 대목이다. 영화에서 집회를 강제로 해산하는 경찰에게 일방적으로 폭행당한 변호사에 대해 서부지검 검사장이 ‘품위유지’ 위반으로 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신청한다. 현행 변호사법에 따르면, 지방검찰청검사장은 검찰업무 수행 중 변호사에게 징계사유가 있을 경우 대한변호사협회에게 징계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협회는 의결을 거쳐 최대 영구제명의 징계를 할 수 있다. 올해 5월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보장된 피의자의 권리인 묵비권 행사를 권유했다는 이유로 민변 소속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를 신청했다. 수사기관의 수사도, 검사의 기소도 없는 상태에서의 징계신청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논란이 있었다. 다행히 변협은 권영국 변호사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판단해 검찰의 징계신청을 기각했다.
 
변호사를 폭행하는 경찰에 항의하는 장면에서 권영국 변호사를, 징계심의 장면에서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런 기시감 때문에 개봉 직전 이 장면을 추가로 촬영한 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원작소설에도 해당 장면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 무려 5년을 앞서간 작가의 예지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소수들

<소수의견>은 법을 밥벌이로 하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참 소중한 영화다. 법정에서는 명백하게 폭로되는 경찰, 검찰, 청와대의 모순과 폭력은 현실에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를 지적하는 의견은 여전히 ‘소수의견’이다. 권력에 복종했던 검사는 스스로를 국가에 대한 봉사자로 포장하며 대형로펌의 잘나가는 변호사로 살아가고, ‘짬뽕과 짜장 같은’ 평범한 변호사는 여전히 버거운 하루를 보낸다. 영화 <소수의견>은 전혀 다른 두 소수의견 중 내가 어느 쪽에 서 있어야 하며, 어떠한 소수의견이 진실을 담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들었다. 세월호에서, 갑을오토텍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실을 전하며 분투하고 있는 수많은 소수들을 지지하며 부끄러움 가득하고도 간절한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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