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5/03 제2호

신자유주의 국가는 왜 보육을 지원하나

  • 박상은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빠르게 강화된 보육정책

지난 10여 년간 여성에 대한 지원 중 가장 빠르게 진척되어온 부분이 바로 보육이다. 육아휴직 사용이 가능한 자녀의 연령은 2004년 만1세 미만이었던 것이 현재 만8세 미만으로, 육아휴직 급여수준도 2001년 월 20만원 정액지급에서 현재는 월급의 40퍼센트(최소 50만 원, 최대 100만 원)까지 높아졌다. 2012년에는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이 시작되어 점차 확대되고 있고, 2013년부터 차상위 계층에게만 지원했던 만2세 미만에 대한 양육수당을 소득하위 70퍼센트까지 지원하기 시작했다.
 
보육정책이 이렇게 빠르게 강화된 것은 여성들의 요구뿐 아니라, 자본과 국가의 필요성도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은 현재 심각한 저출산 국가다. 2001년부터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되는 기준인 1.3명 이하로 유지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생산가능 인구는 줄어들고 부양해야 할 인구는 늘어 국가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도출되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출산장려 정책이 실시된다. 여론조사에서 여성들이 출산을 미루는 이유로 양육비 부담을 꼽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러한 조사 결과는 보육 지원의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대응

그런데 초저출산 현상은 재생산 과정이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임금노동자를 양적인 면, 질적인 면에서 재생산해야 한다. 생산가능인구가 적절히 유지될 만큼 출산을 해야 하며, 그 아이가 한 명의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하고, 임금노동자인 남편이 충분히 쉬고 내일도 일할 수 있도록 가사노동도 제대로 해야 한다. 동시에 여성들은 임금노동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받는 남성 노동자들은 항상 일부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들은 임금노동과 재생산노동의 양자를 책임져야 하는 이중부담을 짊어졌다.
 
생산과 재생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일하지 않는다면 단 한 푼의 이윤도 발생할 수 없다. 일하는 노동자가 없다면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도 제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노동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출근을 하려면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고 위생을 위해서 옷을 세탁해야 하며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집안을 청소하는 등의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일할 능력을 지닌 성인 노동자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차세대 노동자를 낳고 길러야 한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일터(생산의 공간)에 나가기 위해 활동력을 재충전하는 일상적인 노력과 다음 세대를 돌보는 일을 노동력의 ‘재생산’이라고 일컫는다.
재생산 과정은 보통 여성의 무급 노동이나 저임금 노동으로 메워지기 때문에 생산 과정에 비해 덜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정상적인 작동(생산 활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여성의 이중부담은 더욱 심해졌다. 남성이 생계를 부양하는 모델은 더더욱 소수의 노동자들에게만 가능해졌고, 대다수 노동자는 고용이 불안정하고 낮은 임금의 일자리에 내몰렸다. 노동조건의 악화는 재생산의 위기를 가져왔다. 가족이 해체되고,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국가는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건강가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고, 다자녀의 우수성이 선전되었다. 한편에서는 협박도 이루어졌다. 낙태를 엄격히 단속하겠다거나, 싱글세를 도입하겠다고 말이다.
 
경제적인 지원이라는 당근도 필요했다. 그러나 기존의 복지국가들에서도 복지 지원이 조정되는 마당에 고전적 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법. 한국은 신자유주의에 맞는 복지국가 모델을 들여온다. 사회복지정책의 투자적 기능을 새롭게 조명한, ‘사회투자국가론’이 그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부터 박근혜 정부의 ‘한국형 복지국가’까지 역대 정권의 복지모델은 이를 기반으로 한다.
 
사회투자국가론의 관점에서 보육, 간호 등의 돌봄은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돌봄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회권(시민권)의 관점에서 지원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권의 관점에서 돌봄이 필요한 아동, 노인, 장애인은 보살핌을 받을 권리라는 측면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사회투자국가론에서는 다르다. 노인과 장애인보다 아동이 투자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아이를 기르는 것은 그 아이와 부모가 얻는 이득을 초과하는 사회 전체의 이득을 낳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있다. 유아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연구는 이를 뒷받침 한다. 또한 보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어머니인 여성의 인적자본 마모를 최소화하면서 경력을 유지하게 해 경제에도 기여한다. 한국에서도 보육 지원의 확대는 이러한 사회투자국가론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사회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대응인 것이다.

 

보육지원과 여성인력 활용

보육정책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한 조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저출산(노동력 부족)에 대한 대응은 출산장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은퇴연령을 늦추거나 노인 일자리를 창출해 노년층을 활용할 수도 있고, 이주노동자 유입 정책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인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한국은 이주노동자를 대거 유입하기보다 고령층, 여성 등 유휴인력을 노동시장으로 진입시키는 방식을 선호하며 특히 여성인력 활용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재생산 노동이 여전히 여성 책임인 상황에서, 정부는 시간제로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임금노동과 재생산 노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육아휴직과 가족돌봄휴가 등이 확대되고 일부 금전적인 지원도 이루어지는 한편, 노동시장에서는 유연근무를 확대하고 시간제 일자리 만들기에 주력한다. 이는 여성들이 거대한 시간제 노동자의 풀로 기능하도록 한다. 여성은 이제 자신이 스스로 저임금 시간제 노동자로 활용되는 한편, 노동유연화의 첨병이 된다. 최근 새로운 제도로 선전되고 있는 ‘시간제 보육’은 이를 위한 정책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전업주부 보육시설 이용 제한 발언은 한정된 자원으로 보육지원을 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이는(여성인력으로 활용되는) 여성들에게만 지원을 하고 싶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여성의 권리 없는 여성정책

보육정책을 펼치는 국가의 의도는 여성권의 관점에서 문제가 많다. 일단 여성의 출산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출산의 횟수와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인 여성의 권리인데, 출산장려책은 국가경쟁력을 위해 여성의 출산을 의무화한다. 
 
또한 사회투자국가론을 기반으로 한 보육정책에서는 시민의 권리는 사라지고 경제논리만 남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보육에 국가가 개입하더라도 서비스의 제공방식은 시장 메커니즘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공공어린이집이 전체의 5퍼센트도 되지 않고 민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또한 여성을 저임금, 시간제 노동자로 활용하고자 하는 여성인력 활용정책은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자율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성은 여전히 생계보조자로서 가족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일부 보육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간신히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지원뿐이다. 전일제 노동자든 시간제 노동자든 이중부담은 강화된다.
 
박근혜 정부의 여러 공약 중 여성관련 공약의 이행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빠르게 확대된 보육지원정책도 공약이행률을 높이는 데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를 환영하기 힘들다. 여성의 노동권과 모성권의 확보, 성별분업의 완화, 시민권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정책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거대한 사회변화의 물결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이를 위해 여성운동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한 길이 가장 유력하다. ●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정기구독
태그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섬유산업 영원무역 의류산업 유니클로 베네통 자라 아디다스 나이키 노스페이스 동남아 노동자 동남아 하청 하청공장 치타공
관련글
시장화된 보육, 지원만 늘리면 장땡?
여성혐오의 먹잇감이 된 페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