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5/03 제2호
시장화된 보육, 지원만 늘리면 장땡?
비용만 제공한 시장화 전략. 한국 보육정책의 큰 방향이다. 1991년 영유아보육법이 시행되면서 시작된 보육정책은 20여 년이 넘게 민간시장과의 연계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조금 진전된 것이 ‘재정’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식이었다.
무상보육도 마찬가지다. 상품화 된 사회서비스를 파트너로 채택한 데에서 비극은 출발한다. ‘무상’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쟁할 것이 아니라 보육서비스 공급을 민간시장에만 맡긴 채 사건이 발생하면 CCTV 업체만 배불리고마는 악순환을 멈춰야 한다. 그 사이 부모는 불안해지고, 보육교사는 지쳐가고, 아이들은 방치된다.
한국 보육 시설의 현주소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보육시설은 크게 가정 어린이집, 민간 어린이집, 국공립 어린이집, 직장 어린이집 등이 있다. 여기에 공동육아와 같은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 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법인 어린이집이라는 방식도 더해진다.
가장 보편적인 앞의 네 가지 유형 중에서 보육교사의 노동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학부모의 만족도도 높은 것은 ‘국공립 어린이집’과 ‘직장 어린이집’이다. 그러나 그 비율은 5퍼센트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95퍼센트 정도는 모두 가정 어린이집, 민간 어린이집이 차지하는데,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나 불량 급식 사건 등이 일어나는 곳도 대부분은 이런 형태의 어린이집이다.
일본의 경우 국공립 시설이 전체 보육시설의 60퍼센트를 넘어서고, 프랑스의 경우 98.5퍼센트, 복지가 잘 돼있다는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도 75퍼센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국공립 어린이집이 만능은 아니겠지만 보육을 시스템화하면 사회구성원이 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많아지고, 보육교사들의 안정된 근무환경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보육으로 이어진다. 보육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급선무가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이라는 데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지는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이다.
직장 어린이집의 경우 수시로 부모가 아이와 접촉할 수 있다는 장점과 재정이 튼튼해 민간 어린이집보다 환경이 양호하다는 점 때문에 많이 선호된다. 직장 어린이집은 한국 특유의 노동시장구조가 반영된 결과이다. 국가 차원의 복지가 보장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복지의 영역을 직장 내 복리후생으로 메꿔왔다. 좋은 직장의 지표는 임금을 많이 주는 곳이기도 했지만 복리후생이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사내 복지 차원에서 직장 내 보육시설을 운영하기도 하고,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는 단체협약의 여성조항으로 직장 보육시설 설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단협의 요구안으로 주장하려면 엄마가 있는 여성사업장 뿐 아니라 아빠가 있는 남성사업장에서도 설치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영유아보육법에는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 여성근로자가 300명 이상인 사업장은 어린이집을 설치하거나 위탁 보육 또는 보육수당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73개 늘어난 692개이지만 직장 어린이집은 전체 보육시설에서 비율이 1.5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공공기관이나 대규모 사업장이 아닌 중소사업장에는 설치하기 어려운 점과 복리후생에 있어 소외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해당되기 어렵다는 한계는 있지만 고려되고 있는 시설형태이다.
그 외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의 경우도 의미가 있다. 다만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도 시간과 재정에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열악한 가계소득을 위해 쉴 새 없이 일해야 하는 서민 가정의 입장에서는 다소 접근이 어려운 현실이다.
보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과제
보육의 공공성이 어느 때보다 좋아졌다고 평가하는 시각도 많다. 보육에 들어가는 예산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0~5세 영유아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경우에는 보육료 지원, 가정양육에 대해서는 양육비 지원이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2013년부터 실시된 이른바 ‘무상보육’ 정책이다.
그러나 보육의 공공성을 말하려면 사회의 책임이 시설, 관리, 비용 등 모든 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비용에만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다. 보육예산의 85퍼센트는 영유아보육료 지원과 가정양육수당 지원 사업을 집행하는 경비로 소요된다. 보육이라는 사회서비스 영역을 시장화시킨 채 재정만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을 기본 구조로 하다 보니 보육을 받는 사람도, 보육을 담당하는 사람도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내하는 보육노동자의 입장과 질 좋은 보육서비스를 요구하는 부모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그렇다면 이런 충돌을 막고 보육의 공공성 확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우선 ‘시설’의 경우 국공립어린이집 확충이 필요한데, 시민사회단체나 전문가들은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율을 30퍼센트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어린이집 이용 아동이 전체 아동의 절반 정도에 이르게 되어, 보육 환경과 보육료 수준을 결정하는 데 균형을 잡을 수 있어 시장화 된 보육상황을 견제하고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의 문제로 들어가면 단순히 평가인증제 시행만이 아니라 해당 업무를 담당할 공무원 확보와 보육교사의 자격취득부터 고용체계까지 고려되어야 한다. 보육교사 자격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된 데에는 무분별하게 일자리를 만들기만 급급한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 또한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보육교사를 고용하는 시스템, 임금 가이드라인 적용이 필요하다.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과 법인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는 정해진 호봉표에 의해 임금을 받지만, 민간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는 원장과의 개별 계약에 의해 임금을 받다보니 임금수준도 상대적으로 낮고 노동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들의 참여를 통한 관리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CCTV 설치와 같은 감시체계가 아닌 초등학교에 있는 학교운영위원회와 같은 어린이집 운영위원회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어린이집 국공립화가 선행되어야하고 민간 어린이집이라도 운영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되도록 해야 한다.
‘비용’ 문제에서는 보육예산 재정확보와 지급방식의 문제가 논란이다. 보육예산 재정확보를 위해 다양한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별도의 복지세를 고민해 볼 수도 있고, 특히 전 계층의 세금부담이 담보되어야 하는 가운데 아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관점이 확산돼야 한다. 지급방식은 오래전부터 논란거리인 시설지원이냐 개별가정 지원이냐의 문제가 있는데, 아직 논란중이다. 아동복지가 잘 돼 있는 북유럽 국가의 경우에도 부모가 선택권을 갖도록 하고 있는데 장단점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여성의 권리에서 시작하자!
보육이은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언젠가 일선의 보육교사들이 토로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의 부모와 대립하고 싶지 않은데 사용자처럼 되어 버릴 때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사회서비스 노동은 늘 이런 딜레마 속에 놓여 있다. 보살핌노동을 담당하는 보육노동자와 소비자로 명명된 부모가 있는 한 갑과 을로 대립하는 이상한 핑퐁게임이 계속된다. 이 핑퐁게임을 멈추려면 ‘노동권’과 ‘여성권’이라는 관점에서 사태를 살펴야 한다.
보살핌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노동시간, 임금, 사회적 대우 등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또한 여성은 육아나 일 어느 한쪽을 포기하거나 끊임없이 자책감에 내몰리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권리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입장에 선 사람이라면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용자로서의 부모가 될 것인가, 함께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시민권을 가진 구성원으로서 부모가 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개별 부모로 감시하는 것이 아닌 함께 나은 보육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집단적인 참여 시스템이 마련해 나가야 한다. 또한 국공립 어린이집과 같은 공적인 시스템의 마련과 함께 보육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권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야 엄마인 여성노동자도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으며, 보육노동자인 여성도 좋은 보육환경을 만들며 당당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