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사회운동
- 2015/03 제2호
여성혐오의 먹잇감이 된 페미니즘
우리에겐 더 많은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을 두고 떠들썩하다. 열여덟 살 김모 군이 ‘페미니스트가 싫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겠다’며 한국을 떠난 뒤로 갑작스레 페미니즘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한 칼럼니스트가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며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먹고살기 힘들수록 애꿎은 여자들을 미워하는 행태는 중세 마녀사냥 때부터 있어왔으니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다. 정치에 대한 지독한 불신과 페미니즘 운동의 침체가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킨 게 아닐까 싶어서다.
황폐한 정치의 토양
무슨 권리만 주장해도 이기주의가 아니냐는 눈초리는 비단 여성들에게만 날아오는 것은 아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위해 싸우면 진정성 있는 요구지만, 비정규직이 권리를 요구하면 노력도 안 하고 능력도 없으면서 무임승차하려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학벌 사회를 비판하려면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퇴하면서 해야지, 지방대 학생이 학벌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공부 못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팽배하다.
자격을 갖춘 자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부조리한 사회에 문제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 밖에 남지 않는다. 이런 시각은 특정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할 자격이 있는 누군가가 개인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만 인정하고,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집단적 행동은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최근에는 사회운동 자체를 노력 없이 무임승차하려는 이기적인 떼쓰기 정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사회문제의 집단적 해결이라는 ‘넓은 의미의 정치’가 지독한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의 침체
정치의 토양이 황폐해진 상황에서 동반 침체되어 버린 페미니즘 운동은 페미니즘이 여성혐오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도 속수무책이다. 소리 높여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페미니즘 운동이 실종된 상태가 문제인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싫다는 말은 생존경쟁이 치열한 판국에 여자들이 약자 행세하며 권리를 요구하니 이기적이라는 의미다. 대중적으로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는 ‘힘든 일은 남자들 시키고, 밥값 안 내려는 여자들’인 것 같다. 페미니스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여성가족부는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하이힐 신기 불편한 보도블록을 교체하고 여성 전용 지하철 칸이나 만드는 ‘한심한’ 정부 부처로 낙인찍혀 있다. 가뜩이나 권리 주장하는 이들을 떼쓰는 사람들이라며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데, 여성들이 요구한다는 게 얄밉게도 자기네 편익만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비난의 도마 위에 오른 것 중에 다수 여성들이 시급히 바라는 요구라고 볼만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불만이 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변은 대부분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에서 파생된 불만이다. 구조를 바꾸기 위해 집단적으로 문제제기하고 행동하는 여성들이 없다보니 오히려 막연한 여성혐오만 난무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정작 중요하게 다뤄져야하는 여성들의 현실과 요구는 가려진 채 말이다.
지금 여기에 필요한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이념과 실천이다. 물론 이렇게 페미니즘을 정의하면 곧바로 이런 질문에 부딪치게 된다. 대통령도 여성인 여성상위 시대에 권리침해라니 가당키나 하냐고. 하지만 신분제가 사라지고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도 할 수 있다고 해서 지금이 충분히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공적 영역 진출이 활발해지고 과거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지위에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
가정을 돌보는 일차적 책임이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그리고 남성은 성적으로 자유로운 주체로 인정받는 반면 여성은 성적 대상으로 여겨지고 정숙할 것을 요구받는 게 현실이다. 여성노동은 부차적이거나 그 가치가 낮은 것으로 여겨진다. 성 상품화가 만연하고 여성들은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반찬값으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여성노동자, 직장상사와 고객의 성폭력에 고통받는 여성노동자,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시스템에 반대하는 여성노동자,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공 어린이집 확대를 요구하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중요하고 소중하다.
게다가 오늘날 우리는 경제위기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사회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구조가 흔들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아이를 기르고, 환자·장애인·노인을 돌보는 역할이 필요한데, 이는 주로 여성들이 가정에서 맡아왔던 일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한편 사회서비스는 공공부문이 아닌 민간부문을 중심으로 확대되다보니 이러한 역할에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가정과 직장에서 여성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개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돌봄의 책임이 방기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의 문제다. 여성의 부담을 덜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할 수 있도록 여성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성폭력에 주목한 여성운동이 빠진 딜레마
한국 사회에서 대중적으로 여성운동이 각인된 계기는 1990년대 성폭력특별법 제정과 대학가에 확산된 반(反)성폭력 운동이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성이 처한 현실을 드러내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성적인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폭력을 가하면 처벌을 하겠다’는 형식의 운동은 여러 한계에 부딪혔다. 위험과 피해를 부각하는 방식은 여성을 남성의 폭력적인 성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지위에 놓기 때문에 여성이 성욕의 권리를 가진 주체라는 주장을 어렵게 했다. 공동체 내부에서도 반성폭력운동은 규약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는 개인들 간의 갈등으로 인식되고 있다. 운동사회는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던 관례를 드러내고 자성을 촉구하기 위해 성폭력 개념을 신체적 폭력에 국한되지 않는 여성 차별적 문화 전반으로 확대했지만, 다양한 실천의 확대가 아니라 ‘처벌 범위의 확대’가 되고 말았다.
결국 구성원들 다수는 금지목록이 더 까다로워지고 넓어졌으며, 그 기준조차 모호해졌다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은 다양한 반여성적 문화와 언행에 대한 여성들의 문제제기 방식을 ‘그것은 성폭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단일화시키는 효과를 초래했다. 여성들의 문제제기가 성폭력 사건화와 처벌로 수렴되면서, 여성이 처한 조건은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의 권력화라는 착시효과로 인해 사회적 반발 심리가 생겼다.
여성의 권리를 인식하지 못한 노동운동
한편 노동운동 역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노동운동은 외환위기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자행되었을 때 여성 우선 해고에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노동조합 내부의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시선은 시혜적인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성별분업으로 인해 여성노동자가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노조활동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생계부양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저임금의 고용불안을 감내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지 않은 실정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노동조합이 여성의 요구가 제대로 대변될 수 있는 곳인지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청소노동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보육교사, 마트노동자 등과 같은 여성노동자들이 반찬값 수준의 임금 가지고는 안 되겠다고, 여자나 하는 하찮은 일 취급하지 말라고 투쟁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노동운동이 여성의 권리를 증진한다는 상징성을 갖지는 못하고 있다. 워킹맘들이 직장과 가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으로 모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으로 떠들썩할 수 있기를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본 이유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딘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비록 집단적 요구로 사회 구조를 바꾸는 정치가 싹틀 공간이 대단히 좁아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가 필요하고,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피해자가 아닌 능동적 주체로서 여성이 다양한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운동, 여성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을 대변하고 현실을 바꿀 힘을 모아나가는 혁신된 노동운동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떠들썩해지도록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