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생계전선에 뛰어들었을 때다. 임신을 확인한 후 근처 어린이집 네댓 군데에 미리 예약을 해뒀건만, 어디서도 입소 순서가 됐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복귀를 한 달 앞두고 부랴부랴 베이비시터를 구하기 시작했다. 달랑 주소밖에 모르는 생판 남에게 아이를 맡기고 처음 나오던 날의 불안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일거리를 손에 들었지만 글자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귀가해보니 아이와 베이비시터 모두 홀연히 사라지고 없다거나, 그래서 주소지로 찾아가보니 받은 주소가 가짜라거나 하는 망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불길한 생각을 억지로 달래며 초조한 마음으로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고백컨대, 그날 이후 나는 영혼의 반쪽을 집에 남겨둔 채 일을 하게 됐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알게 된 타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왔다는 데서 온 불안은 징후일 뿐이었다. 온몸이 불덩어리가 된 아이를 두고 나올 때, 옷자락을 부여잡고 말 그대로 ‘울부짖는’ 아이를 떨쳐내고 나올 때, 그냥 아이를 두고 나와야만 하는 매일 매순간. 죄책감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라는 의문을 품은 채 매일 아침 집을 나섰다.

 

아이가 걸음마가 늦거나 말문이 늦게 트여도 사람들은 ‘일하는 엄마’를 돌아봤다. 영유아기 엄마와의 안정적 애착 형성이 ‘정상적인’ 정서발달에 필수라는 말 역시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머릿속 한구석엔가 들러붙어 결정적인 순간마다 내게 호통을 쳐댔다. 의학, 심리학, 아동학, 교육학 등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똘똘 뭉쳐 몰아세우는데 알량한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존심만으론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죄책감은 어느 순간 의문으로 변했다. 도대체 엄마들은 양립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일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온 것일까? 엄마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일터와 집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남편들은, 이웃들은, 사회는 무엇을 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 엄마들을 향해 ‘아이가 엄마 손이 덜 가서’라고 혀를 끌끌 차며 질책할 권리를 누가 그들에게 부여했나?

 

 

이상적 어머니의 환상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엄마라면 누구나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사랑의 존재라는, 혹은 당연히 그러해야만 한다는 믿음. 이것이 이상적 어머니라는 환상의 핵심 내용이다.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엄마의 이미지도 대부분 그렇다. 얼마 전 K팝스타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한 참가자가 엄마의 사랑을 노래한 자작곡을 선보인 적이 있는데, 그 곡을 들려주고 평가하는 방송의 분위기도 그랬다. 노래가 좋기도 했겠지만, 엄마의 사랑이라고 하니 자동반사적으로 숙연한 분위기가 오디션 장을 감쌌다. “이런 노래를 들고 나오면 반칙이다”라는 한 심사위원의 말은 엄마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잘 드러내준다. 엄마의 사랑이란 측정, 평가, 심사의 대상이 아닌 거다. 무한하고 위대한 것이기 때문에. 혹은 그래야만하기 때문에.

 

그래서 헌신과 자기희생이 조금이라도 모자라는 엄마들은 쉽게 ‘악녀’로 비난을 받는다. 드라마에서 흔히 반복되는 ‘악녀 어머니’ 스토리가 있다. 한 여인이 가난을 참지 못하고 아이와 가정을 버린다. 그리고는 성공해서 돌아온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이다. 우선, 여주인공이 아이와 가정을 버리게 되는 상황과 맥락의 불가피성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버렸다는 행위 자체의 악함만이 강조된다는 것. 다음으로, 아이를 버리는 악행을 저지르는 엄마는 원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성공에 눈이 먼 악한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

 

‘이상적 어머니’와 모성이 결여된 ‘악녀 어머니’라는 이분법적 인식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엄마는 무조건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존재라는 생각은 현실과 맞지 않고 현실화될 수도 없다. 현실의 엄마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엄마와 악녀 사이 어디쯤엔가 있다. 엄마도 욕구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상적 어머니상은 현실의 엄마들에겐 닿을 수 없는 이상적 규범을 강제하는 억압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상적 어머니상은 여성을 희생과 사랑의 존재로 규정한다. 여성이 날 때부터 엄마인 것은 아니다. 날 때부터 희생과 사랑의 존재인 것은 더욱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재현과 인식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사랑과 희생의 모성을 본성으로 갖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일이 끝나고 간단한 술자리가 이어졌는데, 내가 맥주를 마시는 것을 보던 한 동료가 질문을 던졌다. “애 안 보고 싶어?” “보고 싶지.” 내 대답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넌 왜 집에 가지 않고 여기 있어?” 그날의 술자리는 이른바 모성 본질주의적 사고를 처음 대면한 자리로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이의 엄마라면 온 시간과 에너지를 다 들여 아이와 함께 있어주고 싶어 하는 것만이 정상이라는 인식, 그리고 그에 기초한 압력. 하지만 현실의 나에겐 아이가 보고 싶은 욕구와, 회식에 참여해 일과 관련된 남은 이야기도 하고 담소도 나누고픈 생각이 공존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말이다.

 

‘이상적 어머니’와 ‘악녀 어머니’ 이분법에 기반을 둔 ‘어머니 비난’은 사회에서 모성 이데올로기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는 양쪽 날개이다. 이러한 담론들은 이상적 어머니를 예찬함으로써 이에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의 많은 엄마들을 나쁜 엄마들로 낙인찍고 비난한다. 생계를 위해서든 자기실현을 위해서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엄마들에게 ‘엄마 손이 덜 간 아이들은 어떻게든 티가 난다’고 속삭이고, 돌봄 책임을 전담한 채 가정에서 아등바등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여성에게 ‘좀 더 잘할 수 없어?’라고 질책하고, 어머니들에게 사랑과 희생의 화신으로 거듭날 것을 주문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어머니 찬양과 어머니 비난을 통해, 여성들은 어머니로서 구성되고, 규율되고, 통제된다. 이를 통해 자녀 양육은 어머니의 몫으로 지속되고, 성별분업과 가부장적 사회구조는 견고히 유지되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엄마들의 죄책감은 더욱 커졌다. 일하는 엄마들의 딜레마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헤이즈(Hays, S)가 지적했듯, 성공과 성취, 이윤과 같은 노동시장의 논리는 자녀에게 집중하여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어머니노릇의 논리와는 애당초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적 노동자는 출산이나 양육과 같은 가정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풀타임 노동자이다. 이윤과 성장을 위해선 생산을 제1과업으로 여기며 작업에 전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노동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이 이상적 노동자의 전형이 되었으며, 여성은 노동세계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 되었다. 가정이 여성의 본래의 자리로 여겨졌으며, 출산과 양육 등의 재생산 노동이 여성의 역할로 주어졌다. 이러한 공사분리를 토대로 남성 생계부양자와 여성 전업주부라는 근대의 가족모델이 탄생하기도 했다.

 

문제가 복잡해진 것은 남성 생계부양자 가족모델이 위기를 맞으면서부터였다. 서구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기혼여성의 취업이 급증하면서 일-가족 문제가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중산층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일-가족 문제가 사회문제화 되었다. 물론 노동계급의 여성들은 이전부터 경제활동을 했지만, 여성 경제활동 참여가 중산층으로 확장되고 나서야 비로소 일-가족 문제가 전체 여성의 문제가 되면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보다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점은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대되었다고 해서 ‘남성은 일, 여성은 가족’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사회에는 여성의 위치는 가정이라는 통념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이러한 통념은 모성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어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 여성의 취업 확대는 자연스러운 사회변화로 수용하면서도 어머니노릇의 비롯한 재생산 책임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어머니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여성은 양립 불가능한 두 개의 압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생물학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출산 및 양육이라는 가족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어머니 노동자들은 이상적 노동자 규범을 충족시킬 수 없다. 언제든 아이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풀타임 어머니를 전제하는 어머니노릇 규범과 언제든 기업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풀타임 노동자를 전제하는 노동 규범을 동시에 충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Footnotes

1. ^ * 마미 트랙(mommy track) : 오직 일과 성공을 추구하는 남성의 빠른 길(fast track)과 달리, 자녀양육과 일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여성이 걷는 길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육아를 위해 출퇴근 시간을 조절해 고용을 유지하되 승진의 기회는 적은 형태가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