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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 2015/01 창간준비3호

전자산업에서 노조할 방법

  • 박준도 노동자운동연구소 기획실장

삼성에서 시작해 삼성으로 끝나는 전자산업

초등학교 친구 중 하나가 조그만 휴대폰 부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창모임에서 가끔 만나 술 한잔 할 때 그 친구와 나는 꼭 한판 논쟁을 벌이곤 한다. 친구 사이인 ‘노동운동가’와 ‘자본가’가 계급을 대표해 치고받는 것이었다. 

물량에 따라 20~30인 정도가 일한다는 그 친구의 공장은 생산한 제품이 4개 이상의 기업을 거쳐야 삼성에 가니, 삼성전자의 5차 하청 정도 된다. 원·하청 관계의 말단에 위치한 기업으로 사장 연수입이 많아야 5000만 원, 적으면 3000만 원도 안 될 때도 있다. 친구의 술자리 하소연은 나름 사업을 5년 정도 했는데도 반지하 신세를 못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장 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관련해서 욕을 퍼붓다가도 그 친구의 등을 두르려 줄 수밖에 없었다. 공단에 위치한 중소사업장들, 특히 전자부품 사업장들은 노조가 있다한들 뭘 더 바꿀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엉망인 곳들이 많다.

그 친구는 얼마 전 베트남으로 이주했다. 삼성이 휴대폰 생산 물량을 대대적으로 베트남 공장으로 이전해서 한국에서는 더 이상 사업 가망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국 사업을 정리하며 부채를 상환하고 나니 5년 간 순수입이 결국 마이너스였다고 한다. 나는 베트남 간다고 원·하청 관계가 변하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사업을 때려 치고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도 조언 했지만, 결국 그 친구는 한국을 떠났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 중 하나다. 2013년 연매출이 229조 원이었고, 순익이 30조 원이었다. 10년 전에 비해 매출과 이익 모두 다섯 배가 커졌다. 전자산업은 자동차나 조선에 비해 산업적 경계가 불명확하다. 전 산업에 사용되는 반도체 같은 소재부터 휴대폰까지 포괄범위가 넓다. 또한 선풍기와 같은 전기 가전제품도 포괄적으로 묶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ICT(정보통신산업)라는 개념으로 전자산업 중 컴퓨터, 휴대폰 등과 소프트웨어 서비스산업을 묶기도 한다. 본 글에서 전자산업과 관련된 통계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국민계정에서 제조업 중 전자, 전기산업으로 포괄되는 부분이다. 

 기업들의 이익 중에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50퍼센트 정도였으나, 이제 삼성전자 이익이 전자산업 전체 이익보다 크다. 다시 말해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적자라는 이야기다.

이 글은 전자산업의 노동운동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자본가 이야기부터 꺼낸 것은 이 빈곤한 사업주의 이야기가 동시에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한국 전자산업의 모든 문제는 삼성에서 출발해 삼성으로 끝난다. 삼성전자의 총애를 받는 일부 중견기업을 제외하면 지불능력이 그렇게 크지도 않고, 무노조를 가훈으로 삼고 있는 삼성의 가훈을 지키지 않으면 삼성으로부터 물량을 받을 수도 없다. 노조를 만들었다 삼성에서 발주를 끊어 결국 노조를 포기한 사례들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부품 대체가 쉬운 전자산업에서 공급처를 바꾸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전자산업에서 삼성의 산업지배 전략, 무노조 전략에 대한 대책 없이는 노동운동에 당장 뚜렷한 답이 있기 힘들다.
 

전자산업의 노조들, 수미다에서 KEC까지

현대차, 대우차에 노조가 없었더라면 자동차산업 역시 전자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완성차와 주요 자동차부품사 공장에 민주노조가 뿌리를 내리도록 만들었다. 1987년 가을에는 정주영 현대 회장도 이병철 삼성 회장처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안 된다”고 떠들어 댔다. 민주노조의 투쟁에 그의 신념이 꺾인 것이지 노조에 대해 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가 이렇게까지 막나갈 수 있는 것은 1980년대 이래 전자산업에서 노동운동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탓이 크다.
 
1987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켜낸 마산 한국수미다 노동자들
1987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켜낸 마산 한국수미다 노동자들
전자산업 노동운동의 시작은 다른 민주노조 운동과 마찬가지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다. 일본계 전자업체들이 밀집해 있던 마산수출자유지역이 중심이었다. 1988년 마산수출자유지역 3만 2000 노동자 중에 65퍼센트가 조합원이었다. 생산직 노동자, 특히 전자기업의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이 민주노조로 조직되었다. 한국수미다, 웨스트전기 등의 노조들은 직장폐쇄와 용역깡패를 뚫고 노조를 지켜내 마창노련 내에서도 유명했었다. 마산 전자산업의 여성노동자들과 창원 기계산업의 남성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10km가 넘는 거리를 왔다 갔다 하며 여러 커플이 맺어졌다는 식의 그 시대 활동가들의 무용담도 많다.

하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1989년 말 일본계 한국수미다가 폐업했고, 1990년에는 미국계 한국TC전자가 자본철수를 단행했다. 폐업위협 속에 한국중천, 동경전자 노조 등은 마창노련을 탈퇴했으나, 결국 자본철수를 막지는 못했다. 1989년 창립 당시 조합원 수가 2200명에 달했던 일본계 한국시티즌이 2002년 폐업하면서 대부분의 노조가 마산에서 문을 닫았다. 전자산업 노동운동은 외국계 자본의 자본철수로 인해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를 온전히 보전할 수 없었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수출자유지역의 외국계 전자업체들의 자본철수가 있었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는 한국계 전자업체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또 한번 노동운동에 큰 타격을 가했다. 금속연맹 경기지역의 삼화콘덴서나 삼남전자 같은 사업장은 아예 통째로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했고, 이런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노조 있는 사업장 대부분이 신규투자를 중국에 집중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일부 대기업들의 부도는 그나마 취약한 전자산업 노동운동의 뿌리를 뽑아버렸다. 대표적인 것이 대우전자 계열사였던 구미 오리온전기의 부도다. 조합원이 3400명에 달했던 오리온전기노조는 대우전자가 부도나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었고, 이후 회사를 인수한 외국계 펀드가 회사 알짜 사업부만 가져가고 자본철수를 단행해 결국 공장 전체가 폐업해 버렸다. 현대전자 부도로 중국 기업에 매각된 하이디스(현대전자 LCD사업부) 역시 비슷했다. 중국 기업은 하이디스 기술로 중국에 공장을 세운 후 자본을 철수했고, 법정관리 후에 대만 기업에 재인수되었으나 종사자 대부분을 구조조정 해 현재 소수 조합원만 남게 되었다. 아남그룹의 파산과 공장 분할 매각 속에 산산조각 난 아남전자노조도 현재 광주와 서울에 소수 조합원만 남았다.
 
기업청산에 반대하는 오리온전기 노동조합
민주노총 소속 전자기업 중 최근까지 유일하게 규모를 유지했던 금속노조 KEC지회는 사업주의 자본유출과 노조 파괴 책동에 이어 공단 리모델링 사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 1호인 KEC는 2009년경부터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지주회사로 세우고 핵심 계열사를 해외로 빼돌렸고, 최근에는 반도체 사업보다도 공단 리모델링(구조고도화)정책에 편승해 부동산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탄압도 병행돼 현재 5년 전에 비해 조합원이 30퍼센트로 줄어든 상태다. 

전자산업에서 노동운동이 처하는 가장 큰 곤란은 자본의 유연성이다. 공장 이동도, 아웃소싱도, 인수합병도 다른 제조업에 비해 쉽다. 이런 유연성은 생산과정 특성 때문인데, 제품이 작아 물류가 용이하고 대부분의 제품이 표준화되어 부품 일부를 모아 모듈로 조립하는(레고 식 제작) 방식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여기에 제품이 매우 다양하고 신제품 주기도 짧아 눈 깜짝 할 사이에 기업이 망하는 경우도 많다. 전자산업에서 부도와 인수합병은 일상에 가깝고, 이 과정에서 주식과 부동산 투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동성과 불안정에 대한 대처가 자본만큼 유연할 수 없는 노동자에게 이런 조건은 노동조합 만들기에는 최악의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근 30년의 전자산업 노동운동 역사만 봐도 그렇다. 
 

전통적 노동조합으론 안 된다

전자산업은 1980년대 이래 한국의 대표적 제조업 중 하나였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전자산업의 규모는 민주노조 운동의 중심이었던 조선과 자동차산업을 합친 것보다 2.3배가 컸다. 현재도 전자산업은 총산출이나 부가가치에서 자동차, 조선 산업을 합한 것보다 1.5배가 크다. 

하지만 이런 산업적 지위에 비해 노동운동 규모는 매우 작다. 한국노총 소속 LG전자 노조를 제외하면 대공장 노조는 찾아볼 수가 없고,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있는 사업장도 십여 개에 불과할 정도다. 노조 조직률은 한국노총을 합하면 3퍼센트 내외고 민주노총만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한 여러 이유 때문이다. 

최근에는 휴대폰(스마트폰) 중심으로 전자산업이 재편되다보니 예전보다도 더 노동운동에 불리해진 점도 있다. 스마트폰은 제품주기가 반년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보니 휴대폰 부품 공장들은 과로사가 나올 정도로 공장이 한 달 내내 가동되다가도 갑자기 아이템이 끊기면 휴업에 돌입한다. 이런 물량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간접고용도 그 어느 제조업보다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런 짧은 제품주기와 심한 물량변화는 노동조합 설립과 유지에 더욱 불리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노조 할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초기업적 노조여야만 한다. 이 정도 자본의 이동성에 기업별 노조는 의미가 없다. 산별노조가 되었건, 지역노조가 되었건, 기업별 울타리를 벗어나 기업 논리와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노조를 꾸릴 수 있어야만 투쟁이든 교섭이든 할 수 있다.

둘째, 사회적 교섭력이 있어야만 한다. 아웃소싱과 인수합병, 극단적 물량변동이 상시적인 전자산업에서 노동시장에서의 교섭력만으로 기업을 맞상대한다는 것은 힘의 열세가 너무 크다. 노동시장 외에서의 힘이 필요하고, 소비자들의 힘, 정치적 힘 등 다양한 사회적 교섭력이 필수적이다. 

셋째, 삼성에 대한 사회적 운동이 동반되어야 한다. 삼성 중심의 수직적 산업구조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삼성이 노조 포용적인 노무관리를 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삼성을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견제하지 못하면 한국 전자산업에서 노조를 하는 건, 끝나지 않는 전쟁일 수밖에 없다.

넷째, 생산직만이 아니라 운송 등의 간접지원 부분 노동자들과 기술 개발, 영업 등 화이트칼라 노동자들까지 포괄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전자산업은 자동화로 인해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가 많고, 빠른 생산주기로 인해 물류 부분의 역할이 크다. 개발-생산-물류-판매로 이어지는 전 부분을 포괄하지 못한 채 생산직만의 노조가 될 경우 당연히 교섭력이 더욱 취약해 진다.

마지막으로, 고용관계를 넘어선 지역공동체 운동이 노조의 중요한 기능일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기능이 고용과 임금 관계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당장의 변화가 쉽지 않은 전자산업에서 이 기반은 극도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노조는 전자기업 밀집 지역에서 다수 노동자를 상대로 한 노동상담소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조합원들은 전통적 노조 패턴(교섭-투쟁)보다는 지역 노동시장 전반과 각종 사회의제를 다루는 것에 더 능숙해질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기존의 관념상 노조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전통적 방식의 노조가 전자산업에서 뿌리내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삼성전자 임금을 제외하면 자동차산업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근속도 3~4년에 불과하다. 백혈병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각종 산재를 비롯해 노동인권 유린은 노조가 없기에 덜 알려져서 그렇지 참담한 수준이다.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어야 하나, 예전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노동과 자본의 이 비대칭적인 관계를 역전시켜 내기 위해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노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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