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5/01 창간준비3호

갤럭시를 만드는 19세기 노동자들

  • 장안석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사업부장

빠르다, 많다, 불안정하다 

스마트폰 부품 업체를 볼 때 드는 생각이다. 애플, 삼성 등 업체별 주력 제품은 2~5가지이고, 각 제품마다 4개월~1년의 기간마다 업그레이드 된 새 모델이 나온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경우 더 심하다. 주요 경쟁사인 애플에 비해 약 30배 정도로 모델 수가 많다. 애플과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을 경쟁하고 중국의 4대 중저가 스마트폰 업체(화웨이, ZTE, 샤오미, 레노버)와 경쟁하는 삼성전자는 굉장히 많은 제품들을 쏟아냈다. 

제품수만 많은게 아니다. 모델 교체 주기도 빠르다.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놓치면 판매량이 낮아진다. 한편으론 스마트폰 시장이 대중화되고 중저가 제품의 비중(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약 15~20퍼센트)이 높아지면서 원가 비중을 낮춰야하는 부담도 강해졌다. 이 모든 요인들이 아주 급박하게 변하는 만큼 시장은 매우 불안정하다. 

이런 시장에서 스마트폰 부품업체들은 원청의 모델 교체 주기마다 새롭게 물량 수주를 받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나마 수주를 받아도, 원청사가 제시하는 원가나 기술적 측면의 요구를 받아들여야한다. 그리고 이런 부품업체의 불안정한 조건을 감당하는 것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몫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여기 아님 다른 데 가죠 뭐”

물량 수주의 주기가 4개월~1년 미만으로 짧은 탓에 스마트폰 부품 업체들은 정규직 고용 비중이 매우 낮다. 파견계약이나 직고용 계약직으로 3~6개월씩 계약하고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갱신하거나 물량이 없으면 해고(계약 만료)한다. 

인천의 12시간 맞교대로 일하는 A업체는 한 부서의 1개 교대조 23명 중에 조·반장 등 근속이 3년이 넘는 사람은 6명에 불과하다. 9명은 6개월 미만의 파견직, 8명은 파견근무 6~8개월이 지난 후 정규직이 되어 전체 근속년수가 1년 미만인 노동자다. B업체는 1개 부서 80여 명 중 정규직은 4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파견직이다. 두 곳 모두, 1주에 3~4회 파견업체 직원이 데리고 온 노동자들을 면접보고 바로 일을 시킨다. 하루 일하고 그만두는 이도 많다. 그런 까닭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도 아무도 환대하지 않는다. 

C업체는 파견 노동자를 쓰진 않는다. 다만, 파견업체가 데리고 온 노동자들을 직고용 계약직으로 사용한다. 6개월씩 3번 갱신 한 후 2년째 되는 때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물론 그 사이 물량이 없으면 갱신하지 않고 해고(계약 만료)한다. 

이런 업체들의 정규직 평균 근속년수는 3년 미만이다. 근속기간도 짧고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동료애는 없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는커녕, 인간적인 관계조차 차단되는 것이다.

물량이 적은 때엔 노동자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스마트폰 업체는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고 교대제가 아니더라도 물량이 많을 경우 하루에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시급은 최저시급이라도 노동시간이 많아서 급여자체는 다른 곳에 비해서 많은 편이다. 노동자들은 물량이 많을 때 받았던 급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업체에 물량이 줄어들면 물량이 많은 곳으로 이동한다.

설사 해고돼도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냥 물량이 많은 다른 업체를 가면 된다. 그것이 이미 일상화됐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평생직장, 평생고용, ‘좋은 고용조건’의 개념 자체가 없다. 이동한 곳에서도 해고되면, 처음 해고됐던 업체를 알아보고, 물량이 있다고 하면 다시 입사하는 식이다. 이렇게 해고와 재입사가 무한 반복된다. 

최근 한 가지 문제가 더 생겼다. 삼성이 정말 어려운건지 주가를 다운시켜 경영세습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스마트폰 부품 업체 대부분은 요즘 힘들다고 한다. 물량 많은 곳으로 이동하던 노동자들은 이제 마땅히 갈 곳이 없어졌다. 인천 남동공단에는 휴대폰전자부품업체들이 대거 베트남 등 해외공장으로 뜨고 있다는 이야기, 이미 상당수가 떠나버려서 장사가 안 된다는 식당 주인들의 이야기도 들린다. 
 

“이렇게 일 시켜주는 데가 어딨어?” … “낼부터 나오지 마!”

삼성전자 원청은 24시간 돌아간다. 부품업체 역시 물량을 맞추기 위해 24시간 가동하거나 일일 13~14시간 일한다. A업체, C업체는 12시간 맞교대 근무 사업장으로, 격주마다 주간과 야간조가 교대한다. 교대가 바뀌는 주 토요일 야간근무자는 밤8시에 출근해서 일요일 아침 8시에 퇴근한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근무를 나온다. 주간근무자는 일요일 밤 8시에 퇴근해서 월요일 밤 8시에 출근한다. 정확하게 24시간의 시차다. 그러나 이것은 휴식이 아니다. 보통 근무자가 아침8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해 다음날을 쉴 때, 정확하게 39시간(근무일 15시간, 휴무일 24시간)의 시차가 생기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 12시간 맞교대 노동자들은 단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다.

1주에 하루도 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노동시간이 12시간이여서 하루 중 잠자는 시간 외엔 쉬거나 여가를 즐길 수 없는 노동자에게 회사는 당당하다. ‘니가 어디가도 이렇게 일할 수 있겠냐? 여기처럼 일 많이 주는데 없다’는 게 그들이 뻔뻔해지는 이유다. 

그렇게 1일 12시간 주야 맞교대를 하는 삼성전자 부품업체(C업체)에서, 지난 2013년 3월 2명의 노동자가 과로사로 죽었다. 고 임승현님은 과로사하기 직전 97일 동안 1주당 약 80시간씩 1116시간을 일했다. OECD 가입국의 연 평균 노동시간 1700여 시간임을 고려하면, 한국의 휴대폰전자 노동자는 OECD 가입국의 노동자가 평균적으로 1년 동안 일하는 양을 4~5개월 만에 해치우는 셈이다. 

단순히 노동시간이 많은 것이 아니라, ‘쉴 욕구’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문제다. 노동자들에게 ‘쉼’은 곧 ‘급여 삭감’과 같은 말이다. 과로사 문제로 C업체의 근무시간을 주당 60시간으로 제한(주 1회 휴무, 주 1회 연장근무 금지)할 때, 노동자들의 반대도 많았다. 급여 50만 원이 없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급여를 올리고(기본급 12.3퍼센트 인상) 주당 60시간으로 제한하여 1주일에 15시간의 여가시간을 경험하고 나서야, 노동자들은 ‘쉬는게 좋구나’를 느꼈다. 이제 C업체 노동자들은 주 1일이 아니라 주 2일 쉬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주 1일의 휴무와 수요일 하루 가족과 함께 보내는 여가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고 권태영님은 품질을 맡았던 관리직으로, 매일 아침 9시 회의와 ‘긴급긴급’을 외치며 불량률과 싸웠던 노동자다. 휴대폰전자업종은 실제 생산량은 많지만 불량이 많아서 납품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불량률을 잡으면 고스란히 수익이 된다. 고 권태영님 역시 장시간 노동을 했다. 9시 출근이지만 7시 30~40분부터 출근해서 저녁 8시를 넘겨 퇴근하는 때도 많았다. 그러다가 새벽 출근시간에 깨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잠들었다. 급성심장사였다. 

한국사회에서 과로사가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경우는 10명 중에 2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급성심장사는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로 인정받았다. 그만큼 C업체의 쉼 없는 장시간 노동이 과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A업체는 24시간 동안 철야를 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일하다가도 물량만 없어지면 ‘무급 휴업’을 실시한다. ‘월평균 급여’수준을 맞춰야 하는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퇴사하고 공장을 옮긴다. 휴업 기간이 좀 길어지면, 어김없이 해고(계약만료, 파견종료)한다. 물량이 많을 때는 12시간 맞교대로 토일도 없이 일하거나 1일 13~14시간도 일하지만, 물량이 없으면 바로 해고되는 것이 갤럭시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몸 전체를 사용하지 않고 잔 근육만 사용한다

자동차나 기계공장 같은 경우, 생산하는 제품의 기본 부피가 어느 정도 있다. 제품을 들거나 취급하는 데에 팔과 어깨 전체 근육을 사용한다. 하지만, 휴대폰전자 쪽은 기본적으로 제품의 부피가 작다. 사람의 몸은 근육을 적절히 사용하고 적정한 움직임이 있어야, 피도 잘 돌고 근육 등에 노폐물이 쌓이지 않는다. 하지만, 휴대폰 전자 업종은 생산하는 제품이 작기 때문에 잔 근육만 사용한다. 

목과 눈만을 이용해서 검사하는 공정, 손가락만 이용해서 제품을 취급하는 공정 등 다른 모든 신체 부위는 고정한 채 눈, 목, 손가락만 사용해서 작업하는 공정이 많다. 더구나 먼지 등으로 인한 불량 문제로 창문도 없이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다. 클린룸(제품의 품질을 위해 먼지나 세균이 전혀 없도록 유지하는 방)이 아니어도 그렇다. 불량과 관계있다며 작업 현장에서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우유와 달걀, 고기를 제공하는 동물들은 눕지도 못하는 비좁은 우리에서 사육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만을 빠른 기간 내에 생산하기 위해 그 어떤 움직임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신체를 고정한 채, 작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밝은 불빛 앞에서 목, 눈, 손가락만을 이용해서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조건은 좁은 우리의 동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정해진 자리에서, 동료와 대화도 하지 못하고, 반장조장 몰래 입에 넣은 사탕하나가 큰 위안이며 전체 몸은 고정 한 채 목과 눈, 손가락만을 써서 제품을 생산하는 이들이 100만 원에 가까운 갤럭시 스마트폰을 만드는 노동자들이다. 이제는 이 야만의 행렬을 멈추어야 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정기구독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