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세계
- 2014/12 창간준비2호
섬유산업과 글로벌 착취구조①
우리가 입는 옷은 안녕하십니까?
올해 1월과 8월 각각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에 다녀왔다. 캄보디아 프놈펜 소재 ‘약진통상’이라는 한국 업체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시위를 진압하는데 공수부대가 동원된 사건과 방글라데시 치타공 소재 ‘영원무역’의 한 계열사에서 최저임금 인상 후 편법적인 수당 삭감에 항의하여 노동자 5천 명이 시위를 벌이던 도중 한 명이 경찰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계기였다. 두 차례의 현지조사를 통해 글로벌 패션산업의 맨 끝에 높인 저임금 봉제 산업이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 나라 노동자들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동시에 노동자 국제주의의 실천은 무엇을 방향으로 삼아야 하는지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된 기회기도 했다.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투쟁과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시위는 올해 유독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올해 초 요구안 160달러, 그 뒤 177달러)를 지지하는 연대행동이 몇 차례 조직되었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투쟁을 지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투쟁은 어떻게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되었을까?
한국 공장 앞 공수부대 투입, 뒤이은 유혈사태
올해 1월 3일,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국제적 연대와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 침탈에 대한 국제적 항의행동을 조직하고 있을 때였다. 홍콩의 한 활동가가 캄보디아에서 유혈진압으로 노동자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듣기에 한국 이름이 분명한 약진통상 공장 앞에 공수부대가 투입되었다고도 했다. 곧바로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 약진통상은 한국기업이었고, 시위 진압에 투입된 공수부대(911특수여단)가 바로 약진통상과 이웃해 있었다. 여기 저기 연락을 돌려 곧바로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조직했다. 항의시위에는 민주노총 가맹 조직, 국내 단체들 뿐 아니라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도 참여했다. 한국의 많은 언론들이 유혈 사태를 앞다투어 보도했고, 현지 한국기업들이 파업을 주도한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는 소식도 보도되었다.
뒤이어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게시물은 충격을 더했다. 대사관이 앞장서서 대태러위원장, 경찰, 군인,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신속한 진압을 요구했고, 그 결과 수도방위사령부가 ‘특별히’ 한국 기업을 보호하게 되었다는 자랑이었다. 유혈 사태 촉발에 한국 업체뿐 아니라 대사관도 연루되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과 함께 대중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이제 항의시위의 참가자들은 캄보디아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를 향해 피켓을 들었다.
한국이라서 부끄럽습니다?
1월 2일 약진통상 앞 공수부대가 투입되고 1월 3일 카나디아공단에서의 유혈진압으로 5명이 사망하고 25명이 구속되어 2명만 보석으로 풀려났다. 사태 후 국제노총(ITUC)과 국제산별노조, 특히 봉제산업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국제통합제조산별(IndustriALL)은 폭력진압 중단, 성실교섭, 구속자 석방을 내걸고 국제연대행동을 조직했다. 아시아 노동조합 및 인권단체들을 주축으로 국제 진상조사단이 꾸려졌고 민주노총은 한국에서 캄보디아와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항의행동을 수차례 조직하는 한편 국제 진상조사단에 합류하였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국내 여러 단체들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라며 한국 업체들의 비정상적인 행위를 부각하고자 했다. 캄보디아 현지 조사에서도 “한국업체들이 유독 임금을 적게 주는 등 더 많이 착취하는지?” “한국업체들만 유독 군부대와 결탁하여 노무관리를 하는지?”에 초점을 두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항의행동과 국제 진상조사단 파견을 아주 짧은 기간 내에 즉각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던 이유, 국내 언론이 높은 관심을 보였던 이유 모두 ‘한국’이 연루되었기 때문이었다. 진상조사 기간 동안 한국 참가자들은 주로 약진통상과 911특수여단의 관계, 그리고 한국 대사관이 유혈진압에 얼마나 관여되어 있는지, 한국 기업들이 노조를 대상으로 하는 손배소를 주도했는지 등을 캐는 일을 맡겠다고 자처했다.
노동자 착취엔 국적 불문 한목소리
그런데 놀랍게도 현지에서 만난 시위 참여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조합 간부들은 약진통상이 한국 업체인지, 소송을 주도한 게 한국 기업인지에 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911공수여단이 약진통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경비업무를 대행하고 노무관리에도 자주 투입이 된다는 증언, (약진통상 노동자들은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공수부대 투입이 약진통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약진통상 노동자들도 공장안에서 기계를 멈추고 최저임금 160달러 인상을 요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었다는 증언을 해 주었다. 또한 파업 기간에 일하면 수당과 쌀 한 봉지를 주겠다며 노동자들을 회유했고, 평소에도 노조 간부들을 감시하고 차별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업체가 유별나게 '노조 혐오' 감정을 드러나긴 해도유독 임금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니고 군부대가 경비 업무를 대행하는 것도 한국 기업에만 두드러진 현상은 아니라고 했다.
캄보디아에 진출한 생산 업체들은 90퍼센트 이상이 해외 자본이고 싱가포르, 중국, 홍콩, 대만, 한국 등 동아시아 출신이다. 캄보디아 진출 한국 기업에서 나타나는 노동권 탄압은 한국 기업이 유독 악랄해서라기보다는, 가장 구매력이 높은 곳에 매장을 세우고 가장 임금이 낮은 곳에 공장을 세워 싼값에 다량의 옷을 공급하는 글로벌 공급사슬망의 착취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일이었다. 캄보디아 활동가들은 왜 한국의 활동가들은 한국 기업에 대해서만 많은 질문을 던지는지 오히려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국제주의 실천 어디서 출발할 것인가?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저지른 인권, 노동권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 왔다. 마스터스포츠라는 미얀마 소재 신발공장의 한국인 사장이 3개월 치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야반도주한 사건 등 알려지지 않은 사건도 많다. 주로 인권단체나 공익변호사 단체들이 사건을 접수해 국내에 알리고 법률적, 외교적 압박을 통해 피해자들의 요구를 실현하는 방식의 활동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내에서 최대한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고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한국 기업들의 악랄하고 몰상식한 모습들을 ‘나라 망신’으로 부각시키는 전략을 이용했다.
그런데 군부대를 동원한 업체의 국적이 ‘한국’이라는 사실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캄보디아 활동가들의 반응을 보고, 왜 조사단의 목표를 ‘한국기업의 착취와 탄압’을 밝혀내는 것으로 잡았는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왜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80달러에서 160달러로 올리자고 요구했는지, 노동조합 지도부가 파업을 선언하지 않았는데도 전국적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는지, 한국 기업을 비롯한 현지 생산 업체들의 “임금 오르면 기업하기 힘들다. 다른 나라로 나가겠다”는 하소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는 것인지, “캄보디아 정부는 유혈진압을 중단하라”고 입장을 발표하는 유명 브랜드들은 유혈 사태에 책임이 없는 것인지, 더 많은 물음들이 이어졌다. 국제주의 실천은 우리가 악랄한 기업과 같은 국적을 지닌 국민이라서가 아니라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탄압하는 구조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국제노총에서 날아온 공문을 메일함에서 발견했다. 방글라데시 영원무역 앞에서 한 노동자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