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5/01 창간준비3호

엄마라는 이름표

  • 이꽃맘 사회진보연대 회원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요. 막무가내 답답함 때문에 최근에 엄마라는 이름표를 단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정현이 엄마, 시윤이 도윤이 엄마, 해든이 엄마, 호윤이 호수 엄마 그리고 유하 엄마. 어색한 이름표를 달고 줄줄이 짐을 들고 모였습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언니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전날 잠을 설치기까지 했습니다.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단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이 이름표를 받아들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이차저차 결혼을 한 후 나를 닮은 아이를 배 속에 담고 낳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 아이와 함께 사는 세상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달게 된 엄마라는 이름표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확 바뀐 삶에 나는 비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아무것도 못하는 것 아닐까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동안 나에게 생산적인 일이란 썩어빠진 세상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힘을 키우는 것,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를 전임 활동가로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아도 당연히 그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그만둔 뒤 아기를 낳기 직전까지 조합원용 교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만치 않더군요. 

14개월 동안 젖으로 아이를 먹여 키웠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자연스레 될 줄 알았던 많은 일들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젖을 먹이는 것, 기저귀를 갈며 소대변을 받아내는 것, 목도 못 가누는 아이를 목욕 시키는 것, 낮밤 구별 못하는 아기와 함께 잠을 자는 것. 모든 것이 엄마라는 이름표에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입니다. 심지어 모성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어느 날 새벽 내 옆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고 “이건 뭐지?”하기도 했습니다. 아기는 점점 커가고 시간은 휙휙 지나가고 답답하고 조급했습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많은 것들도 문제였습니다. 겨울이면 곰팡이가 피는 다세대 주택 작은 집도 문제였고, 아이를 먹이고 입히기에 부족한 돈도 문제였습니다. 아기를 키우면 자연스레 간다는 문화센터에 쫓아다닐 자신도,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다른 엄마들과 어울릴 자신도 없었습니다. 삭막한 도시와 자본주의 속에서 아이를 키울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책 한 장도 맘대로 볼 수 없는 내 모습이 낯설었습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살아야 하는 전임 활동가로 살수 없고, 아이를 키울 만큼의 돈은 벌어야 한다는 것. 나보다는 아기를 먼저 생각하는 엄마라는 이름표가 가져다 준 무거운 고민이었습니다. 이런 고민의 결과 선택한 것이 포천행이었습니다. 포천으로 왔다고 이런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하여튼 이런 고민을 했던 많은 언니들이 있을 텐데 찾아보려니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여성활동가들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열손가락으로 꼽지 못할 정도로 많은 아기들입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여성활동가들이 11월 초 모였습니다. 이들이 모이는 데는 조건이 많습니다. 아직 수유 중인 아기들에게 맘 편히 젖을 먹이고, 기고 뛰는 아이들이 엄마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포천에서 모였습니다. 움직이기 아직 어린 아기들은 조금 더 큰 후 따뜻한 봄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정기회원교육을 핑계삼긴 했지만 그냥 만나서 맘껏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엄마들이 모이자 지금 하고 있는 육아 고민부터 여성활동가로 살아가는 문제, 공교육에 대한 고민까지 수만 가지 고민이 쏟아졌습니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달라진 그녀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저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평가하고 비판하던 시선이 이제 내 아이의 시선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더 신중하고 현실적인 비판과 고민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변했습니다. 여전히 변한 우리의 모습이 낯섭니다. 아직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기도 합니다. 나의 이런 고민을 다른 사람이 알아줄까, 나를 바라보는 다른 여성활동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번 모임의 결론은 만나자,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길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가다보면 생긴다고 했나요. 낯설지만 함께 가보는 수밖에요. 이 자리에서 나는 아기들과 함께 하는 숲놀이터를 제안했습니다. 엄마들도, 아기들도 함께 놀고 커가는 숲속놀이터 말입니다. 따뜻한 봄이 되면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을 쓴다고 참 오랜만에 책을 폈습니다. 그 책 속에 “아이로부터 여성을 해방하는 일은 아이들 자신을 해방하는 일이기도 하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학교의 변혁, 사회관계의 변혁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여성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해방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여성활동가들을 주저앉히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변혁의 과제를 고민하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낯설어진 단어들을 나열하게 되네요. 하여튼 이제 새로운 고민과 활동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 아이들과 나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며칠 전에 호윤이 동생 호수가 태어났습니다. 엄마를 꼭 닮은 아기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이제 막 뜬 까만 눈동자를 보며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주저앉지 말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엄마들 화이팅! 우리 따뜻한 봄에 또 만나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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