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대통령’이 아니라 여성‘운동’이 필요하다 [%=사진1%] 지난 11월 18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대선 슬로건으로 제시하면서, “가정을 지켜온 어머니의 마음 같은 섬세함과 강인함으로 (나라를)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슬로건은 선거전략적인 측면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진입장벽에 부딪히고 부당한 차별을 받아온 많은 여성들이 소위 금녀의 영역인 고위직에 여성이 진출하는 것 자체에 긍정성을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보인다. 이 때문에 이번 슬로건이 특히 수도권 중산층 고학력 여성으로부터의 득표를 목표로 한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여성의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인 기존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효과도 가진다. 어쨌든 슬로건 발표 직후 박근혜 후보에 대한 여성층 지지율은 소폭 상승했다. 박근혜 후보의 일가정 양립 정책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의 여성정책은 과연 여성에게 긍정적일까? 박근혜 후보의 6대 여성정책을 살펴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출산을 장려하고 이를 지원하는 내용이 그 핵심을 차지한다. 1번부터 4번까지 정책은 모두 일가정 양립 및 출산장려·지원 정책이다. 이는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기 추진된 정책을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진2%]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한 것은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 남성 가장이 받을 수 있는 임금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워 맞벌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대부분 낮은 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일할 수밖에 없고 또 이로 인한 가정 내 공백을 채울 공적 사회서비스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출산 현상도 동시에 나타났다. 문제의 원인이 경제위기, 여성노동자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그리고 부족한 공공서비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가 제시한 정책은 핵심을 벗어나 있다. 고학력 여성의 정부 요직 진출, 저소득층 가구의 출산 부담 완화 같은 정책들은 여러 계층의 여성들이 겪는 고충을 개별적으로 지원하여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둘 뿐이다. 문제의 원인은 그대로 둔 채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생색내기식 정책인 것이다. 또한 박근혜 후보는 여성의 경제활동 복귀를 위한 지원으로 직업훈련과 알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먼저 여성의 경력단절이 왜 발생하는지 그 원인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여성노동자에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출산휴가, 육아휴직은 여전히 소수 정규직을 제외하면 사용하기 어렵다. 임신을 하면 암묵적으로 퇴사를 종용받는 경우도 많다. 박 후보의 정책에는 그 동안 정부가 방관해온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빠져있다. 경력단절 이후 여성이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역시 직업훈련과 알선이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IMF 이후 전체 노동자의 고용률이 하락하고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났다. 그 중에서도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상대적으로 더욱 열악하다. 가령 여성노동자의 59.4%가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약40%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와 기업이 여성은 일도 하고 가정도 보살펴야 한다는 이유로 단시간 비정규직 여성 일자리를 늘려왔기 때문이다. 또한 맞벌이가 필수가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 가장이 생계를 부양한다는 편견으로 여성의 노동은 보충적인 것,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며 낮은 임금을 강요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증가한 보육, 간병 등 기혼 여성이 주로 일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들이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였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조건에서는 직업훈련과 알선을 해봤자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에 다시 고용될 뿐이다. 연령별 여성 고용현황을 살펴보면 40세 이전까지는 정규직이 비정규직 보다 많지만, 40세 이후로는 비정규직이 더 많고 특히 50세 이상부터는 취업할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 자체가 급격히 줄어든다. 이처럼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감내하도록 구조화된 여성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직업훈련과 알선이 아무리 확대되더라도 그 정책은 일부 고학력 여성의 경력단절을 완화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박근혜 후보의 정책은 여성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낮은 노동조건, 공공서비스의 부족 등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여성에게 값싼 노동력이자 무급의 가사노동력으로서 이중의 부담을 지우면서 경제위기와 재생산의 위기를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어려움이 있어도 어쨌든 가사와 양육은 여성이 모두 책임져야하고 경제성장을 위해 출산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효과를 가진다. 박근혜 후보의 아동 성범죄 강경대응 정책 박근혜 후보는 줄곧 아동 및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대한 강경대응을 강조해왔는데, 최근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이 확정됨에 따라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지난 11월 20일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돈 크라이 마미> 시사회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는 아동 및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대해 “사형까지 포함해서 아주 강력한 엄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2005년 한나라당 당대표 시절 전자발찌법을 통과시켰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외에도 박근혜 후보는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 척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와 같은 정책들은 사회안전과 관련된 정책들이지만, 동시에 (특히 자녀를 둔) 여성들과의 공감폭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마련된 여성정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범죄를 몇몇 ‘비정상적 개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전자발찌,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 등 이들에 대해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성범죄를 예방하는 데 한계적이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은 개인들 간의 갈등이나, 이상이 있는 사람의 일탈적 행동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은 술을 마시고 행한 실수, 좋아하는 마음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한 일, 변태와 같이 비정상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범행 등으로 풀이되곤 한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성범죄에 대한 반응에서도 이러한 접근방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범죄자들이 아동포르노를 즐겨봤다거나, 게임에 중독되었다거나, 대인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등 그들의 비정상적인 특징을 범행의 원인으로 연결 짓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식이 성폭력과 성범죄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성폭력은 여성을 성욕 충족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가 양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남성의 성문화 일반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취급한다. 대중매체나 인터넷에서 여성의 노출 사진과 영상이 쏟아져 나오고, 섹시함을 강조한 광고를 통해 소비를 부추기는 행태가 일상화 되어있다. 또한 술시중을 드는 서비스부터, 노래방 도우미, 성매매까지 다양한 형태의 성산업이 대규모로 존재한다. 이처럼 여성을 쾌락의 수단으로 삼는 성문화에 익숙해진 남성들이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욕을 표출하면서 다양한 성폭력이 발생한다. 성범죄는 그러한 성폭력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그런 점에서 성범죄에 대한 분노여론을 자신에 대한 지지여론으로 전환시키려는 박근혜 후보의 전략은 성범죄를 실질적으로 예방하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실질적인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여성억압적인 사회구조와 성차별적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중들이 사회적 문제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나서 자신의 지역과 공동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을 전개할 때 실질적인 변화는 가능하다. 특히 여성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이 형성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안타까운 여성대통령 논쟁 안타깝게도 박근혜의 여성대통령 슬로건을 계기로 촉발된 논쟁 속에서도 역대 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한 반성, 진정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성찰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박근혜 후보의 슬로건에 대해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 측은 “출산과 보육에 대해 고민하는 삶을 살지 않은 박근혜 후보에게 여성성은 없다”, “박 후보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일 뿐”이라고 논평했다. 황상민 교수는 ‘결혼하고 애를 낳고 키워보지 않은 박 후보는 생식기만 여성이지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한 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으면 여성에 미달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또한 박근혜가 분만대 위에서 박정희를 출산한 그림 <골든타임>은 더 큰 논란을 만들었다. 박근혜 처녀 논란 및 박근혜 출산설에 착안해 딸이 아버지를 낳는 장면을 그려넣은 이 그림은 정치적 풍자라기보다는 여성성에 대한 공격과 조롱이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 측에 대해 “미혼여성에 대한 집단모독”이라고 반격했고, 나아가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박후보의 인생을 “국가와 결혼한 삶”이라고 주장하며 기묘한(?) 방법으로 박근혜 후보를 방어했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논쟁 구도이다. 사실 박근혜 후보의 슬로건에 진정성이 있는지, 그의 정책이 여성의 권리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그의 과거 정치행적과 현 정책을 두고 논쟁하면 될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의 결혼 및 출산 여부가 논란의 중심에 자리 잡은 현실은 여성과 여성정치인을 바라보는 기성 정치권의 시각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결혼과 출산은 여성의 선택의 문제이고, 또 결혼, 출산, 보육의 경험 여부 자체가 여성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라는 상식이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번에 박근혜 후보가 여성대통령 슬로건을 내세우게 된 데에는 지난 10여 년 간 민주당과 주류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면서, 여성=부드러움, 여성=반부패, 여성의 정치진출=진보라는 등식을 강화해온 것도 일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명숙 의원이 2006년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로 임명되자 여성단체들은 뜨겁게 환호했고 여성으로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깨끗한 소통의 새로운 정치를 열 것이라 기대했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통합당 여성 의원들은 이번 박근혜 여성대통령 슬로건과 관련 “박 후보는 여성 대통령의 덕목인 평등, 평화지향성, 반부패, 탈권위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등식은 현실과 맞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여성의 기존 성역할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박근혜 후보는 “국민이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택한다는 것, 그 자체가 변화와 쇄신”이고,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민생을 챙기는 리더십”이 필요하며, 가정주부가 가계부를 쓰듯 “나라살림 가계부”를 공개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부당한 등식을 차용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여성대통령 슬로건은 민주당과 주류 여성운동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빈곤과 차별을 확대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대다수 여성노동자의 대중운동을 바탕으로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포괄적 운동전략 보다는 여성의 정치권 진입에 급급했던 여성운동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한편, 박근혜 후보와는 정반대로 문재인 후보는 대선 기간 내내 특전사 경력을 강조해왔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11월 1일 강원 지역을 찾아 “군대도 안 간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이 수두룩한 정당이 어떻게 안보를 말할 수 있나”며 “나는 6.25전쟁 때 북한 체제가 싫어 피란 온 피란민의 아들이고 특전사 군복무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안보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후보가 바로나 문재인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한 바 있다. 4.11 총선 당시 새누리당이 싹쓸이한 강원지역 그리고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자신의 남성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여성성을 강조하는 박근혜 후보와 남성성을 강조하는 문재인 후보는 과거 지배 양당 간 논쟁구도를 뒤바꿔놓은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후보의 행보는 기존 지지층으로부터 일정한 반발을 무릅쓰고 진행되는 것이다. 보수주의 세력 내에서는 여성의 정치참여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고, 자유주의 세력 내에는 문재인 후보의 행보를 씁쓸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두 후보가 이런 전략을 선택한 것은 양자 구도에서 어차피 자신에게 투표할 고정 지지층의 반발을 일정부분 무릅쓰더라도 상대방의 지지층을 흔들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여성대통령론을 계기로 여성에 대한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여성의 삶의 개선과 권리의 확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빠져있다. 여성의 정치권 진입에 급급했던 기존 여성운동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여성의 빈곤과 차별을 확대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포괄적인 운동전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그 과정에서 여성노동자가 직접 나서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지역사회를 바꿔나가면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성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라
여성 억압적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 집에서 자고 있던 초등학생을 이불 째 들고나가 성폭행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몇 년 간 언론에서 성범죄 사건을 연이어 보도해왔던 만큼 불안과 분노의 정서는 더욱 깊고 넓어진 듯하다. 화학적 거세보다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고, 최근에는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도 열린 바 있다. 이처럼 저항할 능력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극단적 범죄에 대해 분노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꾸준히 강화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성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처벌을 중심에 놓는 접근방식은 성범죄의 원인이 ‘비정상적인 개인’에 있다고 전제하여, 성범죄의 사회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상대화한다. 특히 아동성범죄 사건의 경우 대부분 부도덕하거나 정신질환을 앓는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추방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런 대응책들은 개인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해도 왜 제2, 제3의 범죄자가 계속 발생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사진1%] 화학적거세로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고, 물리적 거세까지도 실행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화학적 거세는 무자비한 범행을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단죄의 성격도 있지만, 성충동을 줄이고 성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범죄 발생률을 낮추자는 의도도 있다. 즉, 화학적 거세 주장의 전제는 성범죄의 원인을 성충동으로 보고, 성충동을 조절못하는 비정상적 개인의 성욕을 줄여 범행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폭력의 원인을 성충동으로 보고 약물주사로 성욕을 억제하자는 주장은 성폭력이 사회적 산물임을 간과하고,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남성의 성충동을 해소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과 공명할 가능성이 높다. 성충동이라는 본능을 억누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해소할 숨통을 틔어줘야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범죄가 성매매방지법 때문에 늘어났다고 대답한 남성이 56%에 달한다.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남성의 성욕을 해소할 공간으로서 성매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결혼을 권장해서 성범죄를 막자고 발언했다. 성범죄를 막기 위해 남성이 성욕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주장은 오히려 일상적인 성폭력과 성차별적 문화를 합리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성매매나 결혼을 통해 성욕을 해결하자는 것은 여성을 성욕해결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전제하고, 그러한 시각은 여성에 대한 인격적 존중을 침해하는 성폭력으로 이어진다. 또한 남성의 성욕이 표현되는 방식은 사회적인 현상임을 간과하여, 남성중심적 성문화의 성찰과 변화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감시와 처벌의 강화는 대안이 아니다 화학적 거세뿐만 아니라 전자발찌 제도, 성범죄자 신상공개 등 ‘비정상적 개인’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성폭력을 예방하는 데 한계적이다. 그것은 성폭력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드러난 가장 극단적 결과에 대한 대증요법이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은 개인들 간의 갈등이나, 이상이 있는 사람의 일탈적 행동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은 술을 마시고 행한 실수, 좋아하는 마음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한 일, 변태와 같이 비정상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범행 등으로 풀이된다. 최근 발생한 성범죄에 대해서도 동일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성범죄자들이 아동포르노를 즐겨봤다거나, 게임에 중독되었다거나, 대인관계가 단절되었다는 등의 비정상적인 특징을 범행의 원인으로 연결 짓는 방식이다. 그러나 성폭력은 여성을 성욕 충족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가 양산한 결과다. 남성의 성문화 일반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취급한다. 대중매체나 인터넷에서 여성의 노출 사진과 영상이 쏟아져 나오고, 섹시함을 강조한 광고를 통해 소비를 부추기는 행태가 일상화 되어있다. 또한 술시중을 드는 서비스부터, 노래방 도우미, 성매매까지 다양한 형태의 성산업이 대규모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처럼 여성을 쾌락의 수단으로 삼는 성문화에 익숙해진 남성들이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욕을 표출하면서 성폭력이 발생한다. 여성억압적인 사회구조와 성차별적 인식을 바꿔나가야 진정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선진국을 예로 들어 성범죄 회피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가령 상대방이 몸을 만졌을 때 싫다고 표현하는 방법 등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성폭력이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교육으로 성폭력을 예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살해당하지 않기 위한 교육, 도둑맞지 않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남의 것을 훔쳐서는 안 된다’고 교육하는 것처럼, 성폭력을 잘 피하기 위한 교육보다는 누구에게도 성폭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이 기본이다. 게다가 여성의 의사표시나 항거 여부에 초점을 맞출 경우, 피해자의 항거 여부에 따라 성폭력을 판단하려는 법적 논리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성범죄 피해는 이를 회피하지 못한 여성의 탓이 아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정부에게 실효성있는 범죄예방 대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범죄예방 대책에 의존하는 것 역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범죄예방은 이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각종 정보 해석과 평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이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재범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은 물론, 이들과 사회경제적 조건이 비슷한 다른 개인들 역시도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기존 범죄자와 비슷한 성장배경, 주거형태, 외모, 나아가 범죄자의 국적, 인종까지 기피해야 할 대상의 조건이 된다. 가령, 중국인 남성이 범인이었던 수원성폭력 사건의 영향으로 이번 나주 성폭력 사건 용의자로 30대 중국인 남성이 지목, 체포되었다가 곧 무혐의로 풀려난 일이 있었다. 정부 예방대책의 강화는 여성억압적 제도나 성차별적 문화에 대해 성찰하고 이를 바꿔나가기 위한 실천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사회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낙인찍기의 확산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실질적인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여성억압적인 사회구조와 성차별적 인식을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민중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발적인 주체로 나서 자신의 지역과 공동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을 전개할 때 가능하다. 여기서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이 형성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화학적 거세로 성범죄 근절 불가
경제위기의 비용이 여성에게 전가되면서 이중부담으로 인한 여성들의 고통이 가중되는 시기다. 그러나 현재 노동자운동은 이와 같은 여성의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사회진보연대는 노동조합에서 진행되는 여성사업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도출하기 위한 워크숍을 6월 29일에 개최했다. 이경옥 서비스연맹 사무처장, 장혜경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 정유림 금속노조 여성부장, 송민영 민주노총 충북본부 총무차장, 김정은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부장, 김진랑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차장과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이 참석했다. 여성사업 진단과 과제 여성사업 진단과 필요성 사회진보연대 방민희 조직국장의 발표로 워크숍을 시작했다. 노동조합의 여성사업 진행 현황을 진단하고, 여성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례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재 노동조합의 여성사업은 대체로 여성의 날 행사를 치르고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처리하는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진행되는 행사와 반성폭력 교육만으로는 여성노동자들이 여성이자 노동자로서 억압받는 현실을 인식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주체로 거듭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노동자가 자본의 착취를 인식하고 그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주체로 거듭나듯, 여성노동자 역시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사업은 여성노동자가 노동운동의 주체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으로 인식되어야 하고, 지금과 같은 수준을 넘어 일상적인 교육, 연대와 투쟁, 정치실천의 기획 등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노동조합에서 여성사업이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여성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안정적으로 사업을 담당할 주체도 부족하고, 여성조합원을 활동가나 간부로 육성하기 위한 기획도 부재한 실정이다. 다음으로는 여성사업이 왜 중요한지 설명했다. 첫째, 여성에 대한 자본의 위기전가에 대항하는 데에 그 정세적 중요성이 있다. 구조적 위기에 빠진 자본은 여성노동자를 활용하면서 위기를 지연시키려고 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여성을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고,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인구의 부족을 여성노동을 통해 보충한다. 또한 가족의 기능에 발생한 공백을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통해 메우려고 시도한다. 이는 가족을 돌보는 것이 여성의 의무라는 이유로 여성을 노동시장에서는 저임금 노동력으로 활용하고, 가족 내에서 가사와 양육을 여성이 책임지게 하는 이중부담의 강화로 드러난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이중부담의 강화는 ‘일-가정 양립’이라는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포장되어 관철되고 있다. 노동자운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더욱 심각해질 여성에 대한 위기전가에 맞서기 위해 여성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성별에 따라 노동자를 분할하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기 위해 여성사업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아래서 고용불안, 저임금, 빈곤 문제가 발생하는 양태는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여성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인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여성은 남성보다 더욱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 자본이 가족을 부양하는 1차적 책임은 남성에게 있고 여성은 부차적이라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활용해 저임금과 비정규직을 여성에게 할당한 결과다. 성별에 따른 임금과 고용 격차를 정당화하면서 노동자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만약 노동자운동이 이러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본의 분열전략을 넘어 설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를 타겟으로 시작된 자본의 공격은 전체 노동자에게 확대된다.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 수용한다면, 이는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하향평준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사업의 강화는 노동자의 단결을 위한 사활적 과제이다. 셋째, 여성사업은 더 많은 여성노동자들을 노동운동의 주체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 많은 여성들이 직장을 다니며 동시에 양육과 가사를 책임져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성조합원들도 비슷한 사정으로 조합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개인적인 문제로 여겨 알아서 극복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여성들은 본래 조직하기 어렵다거나, 여성들은 가정을 우선시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다거나, 여성들은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식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된다. 따라서 여성조합원들이 적극적인 노동운동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양육과 가사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여성노동자의 권리로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들의 구체적 경험을 기반으로 한 요구를 쟁취하는 투쟁을 통해서, 여성노동자 조직화 확대와 여성조합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여성사업이 필요하다. 여성사업의 과제와 사례 노동자운동이 여성권의 쟁취를 적극적인 자기과제로 삼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요구를 집단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업방식은 성폭력 사건 예방과 처리에 중심을 두고 있어 여성노동자를 결집시키고 그녀들의 요구를 모으는데엔 한계가 있었다. 성폭력이 여성 억압의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여성 억압의 현실을 모두 드러내는 것은 아니며, 여성의 피해감을 강조하는 방식은 여성의 적극적인 권리주장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따라서 여성사업이 남성들의 행동규제에 초점을 둔 성폭력 예방사업에 국한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요구를 위한 여성들의 집단적 실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들 역시 여성사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여성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나갈 초동주체 형성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여성조합원들 간의 교류의 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단위 사업장을 넘어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서로 이해하고 연대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여성 조합원들은 노동시장 및 노조에서 여성으로서의 지위와 상태를 인식하게 되고 자신들의 요구를 구체화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몇몇 노조의 사례를 참고해볼 수 있다. 사무금융노조는 여성조합원 및 상근간부가 참여하는 여성위원회를 안정적으로 진행하여, 노동조합 내에서 여성의 경험과 고민을 제기할 수 있는 의미있는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공공노조 광주전남지부의 경우 여성 간부 활동가의 연대의식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여성부장단 회의를 진행했다. 여성간부 및 조합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사업에서부터 선배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경험을 강연으로 듣고, 선동교육을 통해 역량강화를 시도 하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여성간부 육성을 위한 기획이 필요하다. 현재 전체 조합원 가운데 여성의 비중 자체가 낮고, 할당제를 적용하고 있어도 선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조합원들이 가사와 양육문제로 간부활동을 부담스러워 하거나, 대표는 으레 남성이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인식이 가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들이 의지가 없어 별수 없다는 결론이 아니라, 여성을 간부로 육성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의 활동은 여성활동가 발굴을 위한 의미 있는 사례다. 고령의 여성노동자가 교육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여 3년 째 꾸준히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조합원들의 호응이 좋을 뿐만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조합 활동을 보다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성과도 낳고 있다. 이처럼 여성간부 육성을 위한 맞춤형 사업을 기획하여 여성활동가 발굴에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투쟁 과정에서도 여성노동권의 문제의식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노동자 투쟁을 어머니 같은 고령의 여성들의 안타까운 투쟁으로 바라보곤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각은 여성노동자들이 저임금 고용불안에 처하게 되는 구조적 원인을 은폐하는 효과를 가진다. 왜냐하면 남편이 생계를 부양하여 여성은 가정에 머무르는 것이 가장 이상적임에도 불구하고 돈 벌러 나와서 고생한다는 전제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별분업과 가족임금, 여성노동의 저평가 등이 여성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단위별 현황과 문제의식 민주노총서울본부의 경우 여성위원회가 없는데, 서울이라는 특성상 산별연맹 여성위원회와 중복되어 구성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사업으로는 여성조합원대회를 2년 연속 개최하고 있다. 다양한 연령과 직종의 여성들이 모여 서로의 조건을 이해하고 연대하면서,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자리가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여성조합원대회를 통해서 여성사업에 의욕을 가진 활동가들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성폭력 사건 처리나 여성의 날 행사에 국한된 사업이 아닌 또다른 형태로 여성사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여성사업의 필요성과 의의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여성사업에 의지가 있는 활동가들을 모아내고, 이들을 중심으로 보다 확대된 활동을 모색하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민주노총충북본부의 경우 여성위원회가 없고 여성사업을 활발히 하기도 어려운 조건이다. 지역본부의 특성상 독자적인 사업을 하기 어려워 산별 조합원들과 함께해야 하는데 산별지역본부/지부와의 공조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장 투쟁이 벌어지지 않을 때에 조합원을 일상적으로 만나기는 쉽지 않다. 산별지역본부/지부의 경우 소수의 상근자가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지역본부가 제안하는 사업은커녕 단위사업장 관리와 지침수행도 버거워 여성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충북본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지역본부와 산별지역 단위의 문제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위상을 강화하고, 산별 지역본부/지부와 통합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여성사업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져줬다. 여성사업으로는 지역 여성간부를 비롯한 조합원들과 함께 두 달에 한 번 강연회, 야유회, 영화제 등의 ‘릴레이 여성사업’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릴레이 여성사업에서 YH 여성 선배노동자를 초청한 강연회를 개최해 여성노동권에 대해 토론하고 투쟁의 의지를 높였다. 또 야유회에서 투쟁사업장 노동자와 친목을 다짐으로써 이후 연대투쟁의 힘이 강화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한편, 간병노동자 해고투쟁에 여성노동자들이 정기적으로 연대하는 ‘파이팅 여성노동자’ 사업도 소개했다. 여성노동자들이 직접 여성노동자들과 연대했다는 점과 더불어, 저임금 비정규직을 강요받는 돌봄노동자의 현실을 폭로하면서 여성노동권의 문제의식을 확대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금속경기지부의 경우 여성위원들과 월례회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금속노조가 연맹에서 산별로 전환하던 시기에 할당제를 도입하면서 각 사업장별 여성담당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컸다고 한다. 그 성과로 경기지역에서는 조합원수가 적은 사업장에서도 여성사업 담당자를 세우고 있다. 여성위원들은 조합원들과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각종 문화 사업에서부터 노동자로서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내용에 대한 교육이나 문화강좌를 꾸준히 배치하고 있다. 정기대의원 대회에서는 성평등 교육을 기획하고, 경기지역 여성조합원을 대상으로 수련회도 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 같은 교육 및 기획사업 뿐만 아니라 교섭요구안에서도 여성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금속 중앙에서 여성요구를 담은 통일요구안을 내더라도, 결국 사업장 지불능력에 따라 선택적으로 요구안이 달성되는 경우가 많지만, 경기지부는 최대한 맞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직장보육시설 같은 경우도 지역보육시설로 확대해서 지역 미조직 노동자들도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한 지 4년째이다. 금속노조의 경우 모든 지부에 여성위원장을 두도록 하고 있지만 현재 19개 지부 가운데 9개 지부에만 여성위원장이 있는 실정이다. 다수의 지부에서 여성위원장 없이 담당자 한명이 교육, 선전, 여성 등 사업 전반을 모두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여성사업이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기업지부와 지역지부의 상이한 여건에 따라 여성사업도 달리 진행된다고 한다. 기업지부의 경우 사업주의 지불능력도 있고, 교섭대상도 단일하기 때문에 노조가 힘이 있으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반면 지역지부는 여러 사업장에서 사람을 뽑아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경기지역지부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여성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금속 중앙에서는 지역 사정이 어렵고 열악하다보니 적극적으로 사업 제안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중앙 차원에서 수련회 등을 개최하여 성희롱문제를 단위별로 해결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고 한다. 여성위원회가 성희롱 문제로 특화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사건이 발생할 경우 피해자의 상처가 커 조속한 해결을 위해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건이 중앙으로 올라와서 해결이 된다 하더라도, 결국 현장에서 가해자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므로, 현장에서 이런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 육성하기 위해 강사단 훈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할당제로 선출된 여성대의원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선동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서비스연맹의 경우 여성위원회가 지금까지 없었고, 사무처 내에 여성국장이 있는데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직책은 여성국장이지만 조직국장 역할까지 해야하다보니 업무가 과중하다고 한다. 연맹이 전반적으로 여성사업에 관심이 없고 사무처도 거의 남성이다 보니 3.8 여성사업 정도를 하고 있고, 그나마 최근에는 여성조합원대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고 한다. 조합원의 상당수가 여성들인데도 여성 임원은 적은 실정이고, 여성사업 역시 활발하지 못하다. 최근 서비스연맹은 유통업체 영업시간제한 캠페인에 주력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여성의 권리를 제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과 가정 모두를 책임져야하는 상황에 놓인 여성들에게 장시간 노동까지 강요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한다. 또한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의 특성으로 발생하는 감정적 소모와 스트레스를 감정노동으로 인정하고, 그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산업재해로 보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백화점 화장품 매장, 면세점 등에 종사하는 조합원 규모가 상당한데, 아직까지 능동적으로 조합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고, 또한 자기 조합을 넘어 지역 활동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어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가령 민주노총 지역본부 활동가들이 서비스연맹 조합원들과 함께 캠페인이나 사업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도 조합원들이 좀처럼 나서지 않고 있다. 연장영업 때문에 조합원들이 지역사업에 결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노동조합의 분위기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 꺼리는 점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해 감정노동 캠페인을 플래시몹 형태로 했는데, 조합원들이 예상외로 매우 즐거워하며 발랄하게 참여했다고 한다.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기 보다는 조합원들의 특성에 맞춘 사업기획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공운수 서경지부의 경우 조합원 맞춤교육 진행 상황에 대해서 소개했다. 고령의 여성이라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교육을 받은 조합원들이 지부에서 핵심활동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새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여성의 눈으로 보는 노동운동사가 그 주제다. 그 동안 여성을 대상으로 교육하기는 했지만, 여성의 권리가 무엇이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를 바탕으로 기획하게 되었다고 했다. 한편 성희롱은 현장관리자에 의해서 발생하거나 조합원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아직까지 반성폭력 교육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어 향후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합활동 전반에서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강조하고, 분회장 역시 여성들이 대다수다보니, 경비나 시설관리 일을 하는 남성조합원들이 불만을 갖는다고도 했다. 단지 나이가 많은 남성들이라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여기곤 했었는데, 이런 점 역시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여성사업의 초동주체 형성을 위한 방안 모색 각 단위의 문제의식을 공유한 후 토론을 진행했고, 당면 과제로 제기된 초동주체 형성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서울본부 김정은 조직부장은 특별히 여성간부를 양성하는 묘책이 있다기보다는 투쟁 속에서 주체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최근 파업투쟁을 하는 사업장인 새마을금고분회나 골든브릿지증권지부 등에서 관리자에 의한 성희롱이 문제로 제기되었다고 한다. 투쟁에 나서기 전에는 관리자에 대항하지 못하고 불만을 속으로 삭이다가, 노동자들의 요구가 분출되는 파업투쟁이 전개되자 여성들 역시 자신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성희롱에 대해서 발언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여성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쟁취하는 과정이 투쟁 속에서 만들어지듯 여성간부 역시 그러한 투쟁 속에서 발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속 경기지부 장혜경 부지부장은 기본적으로 여성들이 따로 모이는 자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여성들은 서로 이야기하면서 고민을 나누다가 해결책을 찾기도 하는데, 이런 성향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속 경기지부의 경우 과거 활동했던 동지들까지 포함해서 여성들의 모임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모이다 보면 여성사업의 중요성,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높아지고 하다못해 어떤 사업이 있을 때 '우리가 나서보자'는 분위기도 생겨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여성들 간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비스연맹 이경옥 사무처장 역시 여성들끼리 편하게 토론하면서 다 털어놓고 이야기하면서 논의를 정리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너무 틀에 박힌 방식으로 교육, 워크숍을 기획하기보다 조합원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 여성들 간의 대화를 통해 해답을 찾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작정 모이고 보자는 것이 아니라, 모임 속에서 요구를 찾아 사업으로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현대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은 여성노동자들 서로가 각자의 상황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지역과 산별을 뛰어넘어 만나야 여성노동자들이 서로의 조건을 고려하고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노동자라고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큰데, 교류가 적으면 서로의 조건을 고려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교조처럼 이미 육아휴직 등이 가능한 상황에 있는 노동자의 경우, 여성요구에 대해서 기타 다른 문제만 조금 개선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육아휴직 등을 쟁취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는 상황을 고려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노동자들이 각자가 처한 상이한 조건을 이해하고, 그러한 인식 위에서 공동투쟁의 과제를 모색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워크숍은 산별중앙, 산별지역, 총연맹 지역본부 등 서로 다른 조건에 놓인 활동가들이 모인 만큼, 아쉽게도 각자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공유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큰 의미일 것이다. 또한 여성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해나갈 초동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는 앞으로 더욱 진전된 논의와 실천을 함께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본부와 산별 지역본부/지부의 공조 부진, 모든 노동조합이 겪고있는 활동가 발굴·양성의 어려움, 일상적 정치활동의 침체 등 노동운동의 위기를 고려하면서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운동의 혁신은 여성사업의 혁신의 계기여야하고, 또 반대로 여성사업의 혁신이 노동운동의 혁신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워크숍을 마무리했다.
가깝고도 먼 당신, 유통서비스 노동자 지난 6월 19일, 상암 월드컵경기장 옆 공터에서는 홈플러스노조 월드컵 지부의 다섯 번째 생일이 열렸다. 지난 2007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이랜드노조 파업 이후 5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처음으로 외박을 하며 동지애를 느끼고 노동자로서의 해방감을 느꼈던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에게 해방구를 만들어줬던 상암동 마트는 여전히 물건을 사러오는 손님들로 붐비고 있고, 여전히 많은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우리는 2007년 투쟁 이후 유통서비스 부문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2007년 투쟁에서는 ‘비정규직법에 의한 해고’ 문제가 가장 시급했으므로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어떤 고충을 가지고 노동하고 투쟁하고 있는지 부각되지는 않았고, 우리도 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는 지하철역 한 정거장 간격으로 대형할인마트가 있고, 터미널과 주요 철도역에는 백화점이 있으며, 길거리에서는 발에 차이는 돌맹이만큼 자주 편의점을 만나고, 집에 가서 TV만 틀면 한 채널 건너 홈쇼핑이 펼쳐진다. 이렇게 유통서비스 노동자는 우리 주변 가까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그들을 잘 알지는 못한다. 우리가 투쟁을 통해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의 존재를 인식한지 5년이 지난 지금, 유통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쟁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후 활동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유통서비스 노동의 최근 쟁점 최근 유통서비스업의 쟁점은 ‘감정노동’의 문제와 ‘영업시간제한’의 문제이다. 유통서비스업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백화점’과 마트라고 불리는 ‘대형(소매)할인점’이다. 백화점의 가장 큰 문제는 장시간노동이며, 대형할인점의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의 기간(基幹)노동력화이다. 하지만, 두 영역 모두 공통점으로 서비스노동이라는 점에서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쉴 권리 없이 일한다는 점에서 건강권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감정노동자가 진짜 웃을 수 있는 일터 만들기 ① 감정노동의 문제 살펴보기 6월 19일 홈플러스노조 월드컵 지부 출범 5주년 문화제에서 가장 많이 나온 구호는 “감정노동수당 쟁취하자”였다. 감정노동수당 월 10만원 쟁취가 올해 노조 임단협에서도 주요 요구로 다뤄지고 있는데, 물론 한계도 있지만 의미도 있다. 현재 감정노동수당은 서비스업계에서 비행기 승무원부터 시작하여 백화점 화장품 판매직원에게까지 보편화되어 있다. 비슷하게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대형할인마트 직원들도 감정노동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통서비스노동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감정노동이라는 직무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데 있다. 서비스직종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은 노동자들의 심리적 탈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통서비스업 노동자들의 주된 업무가 상품판매와 고객 상담이기 때문에 일의 성격상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스트레스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유통서비스업 노동자들에게 부과되는 월별 판매 목표에 따른 실적부담 역시 감정노동을 가중시키고 스트레스를 높인다. 판매량에 대한 실적 이외에도 감정노동을 끊임없이 체크하는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라 불리는 일상적 감시체계가 존재하므로 감정노동은 끝나지 않는다. 일상의 감시는 노동자들의 피를 말린다.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또 그 감정노동을 평가받는다. 소위 고객평가단이라는 감시원들이 언제 어디서 평가하고 감시할지 몰라서 항상 긴장해야 한다. 게다가 이 평가의 기준이라는 것이 애매하다. 친절이라는 다소 주관적인 감정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고작 기준이 있는 것은 인사 여부 정도이다. 대형할인점의 경우 어느 매장이나 ‘맞이인사, 전송인사’가 기본 평가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인사 여부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주관적이다. 대형할인마트의 경우 한 달에 한 번씩 전국에 있는 모든 매장의 CS평가(고객서비스 평가) 순위를 매겨놓는다. 순위가 하위권인 매장은 직원교육이 강화되거나 다소 엄격한 규율이 생긴다. 전국의 모든 매장뿐 아니라 각 파트별, 개별 직원별 고객평가 내용이 게시되고 언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의 내용은 모두 고객평가단이라는 사람들에 의한 주관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유통서비스업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사업장내 성희롱 문제에 그대로 노출되는 심각한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유통서비스업에서 성희롱은 직장 동료나 상사로부터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고객으로부터 발생한다. 대부분이 언어적 성폭력인데, 현재 유통서비스업 대부분 이에 대한 조처가 거의 전무하다. 관련 법률을 재정비하거나 사용자의 적극적인 대응지침 마련이 필요하나 친절을 강조하는 사업장 분위기상 이러한 대책을 마련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② 감정노동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감정노동의 문제는 유통서비스 노동자라면 대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대부분 개별적인 방법에 머무른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가장 많이 하는 방법은 음주와 흡연이다. 2010년 서비스여맹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노동자 삶의 질’ 조사에서도 여성응답자의 흡연율은 한국 여성 평균인 7.1% 보다 5배 높은 35.2%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는 어렵다. 최근 이러한 문제를 개인적인 방법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고민들이 나오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대형할인점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이 ‘감정노동수당 10만원’ 쟁취를 임단협 요구로 내건 것이다. 이는 감정노동의 문제를 사회화시키는데 있어 분명 의미있는 활동이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사실 하루 종일 손님의 비위를 맞추고, 때로는 ‘진상고객’을 상대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이는 단지 월 10만원의 수당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의 문제가 아니다. 간 쓸개 다 내놓고 인격을 내다파는 것 같은 노동에 시달리는 유통서비스노동자의 현실을 폭로하는 출발점으로서 감정노동 수당 10만원 쟁취는 의미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한 지속적인 개선이다. 영업시간 제한을 둘러싼 쟁점 ① ‘영업시간 제한’은 노동자의 건강권(쉴 권리) 문제 최근 일요일 의무휴업의 문제로 유통업계가 시끌벅적하다. 급기야는 일요일 의무휴업으로 매출이 줄었다며 소송을 낸 대형마트 측에 행정법원이 손을 들어준 일이 발생했다. 서울행정법원이 대형마트, SSM의 영업시간 제한을 규정한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미 유통서비스 시장을 독식한 재벌기업들의 집착으로 아마도 이러한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일요일 의무휴업이 시행된 배경에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있다. 유통산업 발전법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과 노동자 건강권, 대규모 점포와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지자체장이 대규모 점포에 대해 영업시간을 제한(오전 0시~오전 8시)하거나 의무휴업일(매월 1일 이상 2일 이내)을 지정해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다. 또한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입법발의 된 유통산업근로자보호와대규모점포등주변생활환경보호등에관한특별법에서는 대형유통매장은 공휴일과 일요일엔 휴업해야 하고 백화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대형마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사이에만 영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업시간 제한은 대부분 중소영세상인,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전개가 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고 짚어봐야 할 문제는 유통노동자의 건강권의 문제다. 세계 최대의 장시간노동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모든 노동자가 엄청난 노동시간에 허덕이고 있다. 2010년 OECD국가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평균 1,749시간인데, 한국의 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2,109시간 일하는 그리스와 함께 유일하게 2,000시간이 넘는 나라로 악명이 높았다. 유통서비스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② 유통서비스 노동자는 외계인?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싶은 유통노동자 유통서비스업에서 영업시간 제한은 크게 세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일요일 의무휴업 문제로 대두된 주말 영업시간 제한 문제와 둘째로는 연말 명절 세일 기간 등 특정일의 영업시간 제한 문제, 셋째 평일의 야간 영업시간 제한 문제이다.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정리한다면 ‘휴일노동, 장시간 노동, 심야노동’ 이라 명명할 수 있다. 첫 번째, 일요일 의무휴업의 문제를 보자. 많은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이 공감하는 문제 중의 하나는 인간관계의 축소다. 일요일에도 노동을 해야 하는 유통서비스 노동의 특성상 유통노동자로 일하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가던 등산도 갈 수 없고,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종교 활동을 하기 힘들며, 여러 경조사가 대부분 주말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지인이나 친인척의 결혼식조차 참석하기 힘든 것이 유통노동자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축소된다.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놀 때 놀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존재로 느끼기도 한다. 일례로 메이데이에 근무를 하지 않거나 선거일에 근무하지 않는 일반적인 노동자들과 달리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려야할 시간에도 일을 해야 한다. 둘째로는 연말명절세일 기간 등 특정일의 영업시간 제한 문제이다. 이 장시간 노동의 문제는 아주 고질적이다. 백화점의 경우 세일기간이 되면 이미 일상적이었던 장시간 노동이 더욱 늘어난다. 유통업체간의 과당경쟁으로 인해 백화점과 할인점의 영업시간 연장이 거의 관행화되고 있어, 입점업체 판매사원들은 장시간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상적으로 백화점 화장품 판매사원들은 대부분 아침 8시30분에서 9시 사이에 출근하여, 저녁 8시 정도에 퇴근하지만, 백화점 세일기간이나 주말(금, 토, 일)은 영업시간 연장으로 인해 퇴근이 1시간 이상 연장된다. 게다가 근래에는 백화점의 주 1회 정기휴무마저 거의 사라지고 매장의 인력부족과 맞물려서 백화점 판매사원들은 자신의 휴무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백화점 판매직의 75.7%가 주당 52시간 이상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할인마트의 경우 명절 바로 전날 늦은 밤까지 일하고 나면 녹초가 되는데, 대부분 40-50대 기혼여성이 많아, 근무하고 바로 다음날 명절 가사노동까지 겹쳐 그야말로 2중의 고통 속에 놓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명절 당일에도 휴업하지 않는 백화점과 대형할인마트가 있어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고달프다. 세 번째는 평일의 야간 영업시간 문제이다. 이제는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한 때 24시간 영업이나 12시까지 영업하는 매장이 꽤 많았다. 이 심야노동은 그 자체로 노동자의 건강을 갉아먹고, 또 야간까지 일하느라 차가 끊기게 되더라도 그 비용 역시 고스란히 노동자의 부담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심야노동은 노동자의 단결권마저 보장해주지 않는다. 퇴근 후의 회식이나 모임 등 노동자들의 단체 활동 등에도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이러한 문제점을 알리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형할인마트의 경우 ‘연장영업반대’, 백화점의 경우 ‘주 1회 정기휴점제’로 그 요구안이 제출되고 있다. 유통서비스업의 시장구조와 노동자 현황 유통시장에서 감정노동의 문제나 영업시간 규제의 문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통 산업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노동시장 역시 급속한 변화를 겪어왔다. 유통서비스 산업 역시 초민족 자본의 유입과 확장, 인수합병 등의 과정 속에서 고용 불안이 일반화되고 심화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국내 유통서비스 산업에서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전개되었으며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유통산업 구조조정과 재벌 독식 1990년대 중후반부터 확대된 한국의 유통시장은 1996년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된 이후 세계 1-2위의 다국적 유통그룹인 월마트와 까르푸가 들어오면서부터 두 차례의 큰 변화를 맞는다. 첫 번째는 1998년 경제위기 전후 유통업체의 도산 등으로 인한 국내 유통업체 간 1차 재편이고, 두 번째는 2000년대 중반에 외국 업체들(월마트와 까르푸)이 철수한 이후 국내 업체들 간의 인수합병(M&A)이다. 이 과정에서 유통업은 재벌그룹이 장악한 지금의 형태로 재편된다. 국내 주요 유통업의 시장 점유율 현황을 보면, 백화점 Big 3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시장 점유율은 2001년 61%, 2003년 74%, 2005년 78%, 2007년 78%, 2009년 81%로 계속 증가하고 있고, 면세점 Big 2 (롯데, 신라 면세점)의 2012년 4월 현재 시장 점유율은 85% 이상이다. 대형할인마트 Big 3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시장점유율은 2001년 52%, 2003년 62%, 2005년 67%, 2007년 76%, 2009년 80%로 나타났다. 결국 현재 유통업의 대부분은 몇몇 소수 재벌에 의해 독과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재벌 대기업에서 골목 상권을 겨냥한 기업형 수퍼마켓(SSM) 형태의 확장과 창고형 할인매장(도매 할인점)까지 등장하여 유통서비스업의 재벌 독식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유통서비스 노동자 현황 ① 왜 여성노동자의 문제인가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유통서비스업에는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일부를 제외하면 주로 비정규직의 일자리다. 단순히 일하는 여성노동자들 수가 많다는 것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여성화를 이루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하고 있다. 특히 대형 할인점의 경우 ‘소수의 관리자와 기간노동력화한 다수의 비정규직’ 패턴으로 굴러가고 있는데, 이 다수의 비정규직이 여성노동자이다. 여성 노동자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형할인마트의 고용형태를 보면 계산과 판매판촉 부분에서 성별 직무분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계산, 판매, 식품, 안내 및 고객서비스 등은 여성들이 대부분 담당하고 있고, 유통업 정규직 남성은 매장관리나 구매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유통업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별반 차이가 없는 노동(8시간 근무)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불안정하다. 1998년 경제위기 이후 기혼여성노동력의 급속한 유입으로 노동력이 남아도는 가운데, 기업은 굳이 높은 임금을 주지 않고,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아도 일하려는 의사를 지닌 이 기혼여성들을 비정규직군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형 할인점의 경우 대다수가 기혼 여성인데, 가사노동이나 육아와 병행하기 위해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적합한 것처럼 포장된다. 이에 점점 유통 서비스업 자체가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구성되고 있다. 또한, 유통업이라는 산업적 성격은 특정 기술을 요구하지 않으며 노동력의 대체가능성이 높은 직종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노동시장 밖에 머물도록 구조화된 기혼여성의 고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② 불안한 고용은 이제 그만!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 대다수의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은 용역업체를 통해 채용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 그들이 일하고 있는 해당 유통업체(백화점, 대형할인점)의 노동자라고 생각하며, 또 이들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도 이러한 바탕 위에서 생산되고 평가된다는 점에서 용역업체와 원청 간의 관계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백화점, 대형할인점에 가면 진열대에서 상품을 선전하고 홍보하면서 구매를 권유하는 여성노동자들을 보게 된다. 이들 대부분은 상품 제조업체에서 판매를 위해 매장에 파견한 사원들로 유통업체의 직원들은 아니다. 백화점의 경우 직영매장, 수수료 매장, 임대 매장이라는 형태로 구분되어 근무하고 있고, 대형할인점의 경우 해당 상품의 판매대에 배치되어 근무하고 있다. 이런 노동자를 판촉노동자라고 하는데 판촉노동자는 유통업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비정규직 형태이다. 판촉노동자는 입점업체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유통회사의 요구에 의해 생겨났다. 상품 판매업무를 입점업체에 맡겨서 판매 관련 인건비를 입점업체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유통회사 판매직은 대부분 판촉노동자로 구성된다. 판촉노동자는 근무는 유통업체에서 하고, 임금은 상품제조업체에서 받기 때문에 소속업체와 사용업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파견노동자와 유사하다. 그러나 소속업체가 인력파견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가 아니고, 상품을 제조하거나 중개하는 업체라는 점에서 근로자파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법논리상으로 파견노동자와 다르나 판촉노동자는 파견노동자가 겪는 이중의 고통을 똑같이 겪고 있다. 노동시간, 휴일 휴가 사용, 근로감독 등에 있어 대형 할인점의 영향력이 더 크지만, 소속은 상품제조업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외 근로 산정 같은 급여 문제나 승급, 투입매장 선정 같은 인사문제는 상품제조업체에서 관리한다. 이러다 보니 고용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형 할인점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유통업은 산업구조변화와 노동유연화에 의해 비정규직 고용이 증가하고 있는 업종 중 하나이다. 고용현황을 보면 정규직보다 직접고용 비정규직(계약직, 파트타임)과 간접고용 비정규직(파견 및 촉탁 형태) 노동자들이 더 많다. 1998년 경제위기 이후 기존의 정규직 업무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했으며, 유통업 핵심 업무 중 하나인 계산, 판매판촉 업무를 기간제 및 파트타임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유통업체에서도 파견업이 허용된 직종의 경우 대부분의 직무는 간접고용으로 전환되었다. 청소, 경비, 주차안내 등의 업무는 거의 간접고용이다. 최근 건강권(감정노동), 노동시간(영업시간규제) 문제를 중심으로 유통서비스노동의 문제점을 폭로해 왔다면 고용불안(간접고용화)에 대한 쟁점 또한 이후에 이슈화시켜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또한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아우르고 작업장 내에서 서로의 조건을 이해하고 연대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 또한 남아 있는 문제이다. ③ 건강하게 일할 권리 ▶ ‘서서 일하는 서비스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 앞서 언급한 ‘감정노동’의 문제와 ‘영업시간제한’의 문제 말고도 유통업에는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 애초에 의자 놓기 캠페인이 나온 이유도 유통노동자의 건강권 때문이었다. 유통노동자는 제대로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내내 서서 일을 하는데, 장시간 서서 일할 경우 하지정맥류나 관절염 등 질병을 유발할 수 있어서 건강에 상당히 좋지 않다. 2008년부터 진행되어 온 의자놓기 캠페인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가 제공되는 비율은 30%로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실제 근무하면서 의자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거나 또는 보이지 않는 회사의 압력 또는 눈치로 거의 의자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변한 경우가 많아 여전히 풀어야할 문제로 남겨져 있다. 이에 대해 2011년 ‘서비스 노동자 건강권 실현을 위한 캠페인단’은 대형 유통업체가 여성 노동자에게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의자를 제공하는지 감시하고 고발하는 ‘의자 감시단’을 발족하여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또한 서울시가 올해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의 삶을 바꾸는 서울 비전’을 통해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여성 근로자들이 2시간이상 서서 일하지 않고,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제시하기도 했다. ▶ 휴게 공간, 휴게 시간 부족 쉴 공간은 물론 쉴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통 점심시간 외에 하루에 한 번 30분의 휴게시간이 주어지는데,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이는 무척 짧은 시간이다.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쉬려고 작업하던 것 정리하고 휴게공간까지 가서 물이라도 마시고 담배라도 피려고 하면 금방 30분이 가버린다. 고작 의자에 앉아 쉬는 시간은 5분 남짓도 안 된다. 대부분의 사업장 휴게실은 왜 그리 멀리 있는지 잠깐 쉬고 다시 일하러 작업장에 돌아가려면 잠깐 쉬고 나올 수밖에 없다. 휴게 공간도 부족하여, 유통서비스 노동자가 가장 많고 가장 피로한 주말의 경우 휴게실에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부족한 휴게시간과 휴게공간으로 탈의실이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계단 등에서 쉬는 경우도 많다.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건강권 쟁취를 위해 기본적으로 적정한 규모와 거리 등이 모두 보장된 제대로 된 휴게공간과 휴게시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④ 저임금 노동 유통업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2007년 8월 기준으로 93만 원(남성비정규직 120만 원, 여성정규직 145만 원, 남성정규직 216만 원)으로 소매업 전체 평균 임금 117만원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유통서비스 노동자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앞서 살펴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통서비스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은 미진하지만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가 많이 진행되어야 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유통서비스 노동자를 가깝고도 먼 당신이 아닌 가까운 존재로 만들어가기 위한 방안 역시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유통서비스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고민들 ① 조직화의 계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은 일상적인 현장 투쟁을 벌이기가 쉽지 않은데, 유통서비스 부문도 마찬가지이다. 갑작스런 해고가 아니면 일상적인 어려움으로 투쟁이 조작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부분 노동조건의 어려움을 감내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고용문제가 아닌 근무조건의 불합리나 임금체불 같은 문제에 있어서 투쟁을 조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정규직 노조가 있는 경우 이러한 일상의 투쟁을 만들기가 다소 용이하지만, 노조가 아예 없는 경우는 쉽지 않다. 2000년 이랜드노조의 경우 단기계약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간접고용 노동자도 조합가입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규약을 개정하여 함께 파업에 동참하고 약 20여명의 조합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냈다. 일단 노조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이러한 투쟁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고, 정규직노조는 있으나 규약에 비정규직노동자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공동의 투쟁을 만들어갈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② 지역조직화의 가능성 지역운동의 가능성도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유통서비스노동자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의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지역 구성원으로서 투쟁을 만들어 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도시의 경우) 지역별로 존재하는 대형 할인점의 경우 지역 운동 단위들이 지역의 성원으로써 결합하고 지역의 이슈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2001년 까르푸 일산점 여성노동자들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로 활동이 미진한 기존 노조를 재조직화하여 노조를 정비했고 지역의 운동 단체와 함께 활동을 펼쳤다. 2007년 비정규직법으로 파업에 들어간 홈플러스 노조(구 홈에버 상암점) 월드컵지부의 경우도 마포 서대문 등의 지역의 운동단체와 주민들의 지지와 연대로 투쟁을 만들어 갔다. 또한, 기존의 정규직 노조가 없는 경우 지역일반노조의 형태로 조직되기도 한다. 2005년 투쟁했던 이마트 수지점 계산원의 경우 경기일반노조로 조직된 사례이다. 물론 무노조를 자랑하는 삼성 계열 회사인 까닭에 사측의 노조 탄압은 심각했다. 2004년 12월 21일 계산원 22명이 경기일반노조에 가입하고 분회 창립총회를 했지만, 사측의 회유 협박 등 극심한 노조탄압으로 창립총회 3일 만에 18명이 탈퇴서를 제출했고 남은 4명이 힘겹게 싸웠다. ③ 업체별 조직화의 사례 현재 할인점 판촉노동자를 노조로 조직한 사례로는 동원F&B 노동조합이 있다. 백화점 입점 업체로는 화장품 업체가 대부분인데, 로레알코리아 노동조합, 샤넬 노동조합, 엘카코리아 노동조합, 클라란스코리아 노동조합 등이 있다. 대형할인점에 유일하게 노조가 결성된 곳은 동원F&B 노조이다. 동원F&B 노조는 상품제조업체에서 결성된 기업별 노조이다. 그래서 유통업체에 노조가 결성되어도 다수를 형성하는 판촉노동자는 다른 회사 소속이기 때문에 조직대상에서 제외된다. 동원F&B 노조처럼 소속업체 노조를 결성한 경우 가장 큰 어려움은 조합원이나 조직 대상자들이 전국 곳곳의 유통업체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대형할인점에서 한 상품제조업체당 판촉노동자들은 1~3명씩 각 매장별로 흩어져 있다. 이런 상태에서 조합원을 조직하고 조합활동을 하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단 유통업체 매장에 배치되면 상품제조업체보다는 유통업체의 지휘 감독 하에 있기 때문에 판촉 노동자의 소속감이 확실하지 않은 것도 소속업체 노조로 조직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된다. 또한 이직이 잦고, 판촉 노동자의 대다수가 40-50대 기혼여성이어서 노조 활동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낮은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백화점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입점업체 종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서비스유통노조’를 만들었지만 아직 가입률이 높지는 않다고 한다. 백화점 노동자들의 경우 입점업체로 구성된 노조로 더 많이 조직되고 있다. 로레알코리아 노동조합, 샤넬 노동조합 등과 같은 백화점 화장품 입점 업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노조가 두드러지고 있다. 백화점 입점업체 중에서도 유독 화장품 업체의 노조 설립이 활발한 이유는, ‘숍마스터’라는 소사장이 매장 직원 1~2명을 고용하고 규모도 영세하며 직원들이 회사에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의류업체와 달리, 업체의 규모가 크고 직원들도 수백에서 수천 명에 이르러 상대적으로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2004년 샤넬 노동조합 처음 생겨난 이후, 로레알클라란스시세이도 등 유명 업체들에서 해마다 1곳 정도 노조가 결성되어 현재 노조가 결성된 화장품 업체는 8곳에 이른다. 한편, 백화점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대형할인점 판매직 보다는 다소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백화점 입점업체로 구성된 이러한 노조들은 조합원 교육과 각종 집회 참여 등의 집단활동으로 노조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손님은 왕! 그럼 노동자는? - 사회적 시선 바꾸기 소비자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비판하더라도, 유통서비스 분야에 있어서는 소비자의 역할이라는 부분 역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 등의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인식전환이다. 서비스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노동자가 생산한 물건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서비스상품을 바로 판매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노동자는 사용자만이 아니라 소비자와의 제3의 관계가 생긴다는 점에서 제조업 노동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 감정노동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 때문인데, 감정노동에 대한 법제화, 감정노동에 대한 사용자들의 각성, 개선책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건전한 소비 의식도 필요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벗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지역사회 시민의 정체성으로 유통서비스 노동자를 대해야 한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의식이 자리 잡아야 감정노동의 쇠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고 감정노동을 끊임없이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의 관행, 그리고 이윤을 위해 이를 더욱 부추기는 자본의 각성이 필요하다. 이제는 ‘손님은 왕’이라는 허위의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가령, 단협에 노사공동 캠페인을 반영하고 소비자 인식전환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가 유통서비스노동자에게 고객응대 매뉴얼을 통한 서비스 교육만 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이용 매뉴얼을 만들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하고 삐뚤어진 욕망을 부추기는 방식의 서비스 산업이 확대되지 않도록 지역사회 운동이나 언론 등을 통한 사회 전반의 건전한 문화 형성을 위한 다양한 움직임 또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조합에서도 서비스노동에 대한 인식 전환 교육을 하거나 이러한 현실을 알려내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