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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 제40호

위기의 총리: 아베 신조

이제는 폭주를 멈춰야 할 때

  • 이준혁
위기가 끊이질 않는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얘기다. 사학 비리 문제로 불거진 정권의 위기는 도처로 확장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냉담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4월 22일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30퍼센트로 떨어졌다. 지지하지 않는 비율은 49퍼센트다. 아베 2기 정부 이후 지지율이 40퍼센트 밑으로 떨어진 적은 단 3번뿐이다. 2015년 전쟁법안 강행 통과 때와 2017년 공모죄 법안 통과 때, 그리고 지금이다.
 
이번에는 반등의 기미도 찾기 힘들다. 아베는 위기 때마다 각종 ‘북풍(北風)’과 정상회담 등으로 모면해왔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북한이 군사적 행동에 나설 것이라 예측하기는 어려우며, 얼마 전 미일 정상회담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절대 강자’ 아베는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
 

수습조차 되지 않는 사학 비리 문제

모리토모森友 학원 문제가 불거진 것은 1년 전이었다. 사립교육재단 모리토모 학원은 국유지를 정부 감정가 9억 5600만 엔의 14퍼센트에 불과한 1억 3400만 엔에 사들였다. 모리토모 학원은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여기서 운영하는 한 유치원에서는 원생들에게 “아베 수상 힘내라! 안보법제 국회통과 잘했다!” 따위의 구호를 외치게 하기도 했다.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가케加計 학원 문제도 비슷한 사건이었다. 2016년 가케 학원이 운영하는 오카야마岡山 이과대학의 수의학부(獸醫學部) 신설이 허가되었다. 일본 정부는 1984년부터 사회적으로 특별한 수요가 생기지 않는 한 기존 16개 대학 이외에 새로운 수의학부 설치를 억제해왔다. ‘수요 증가’에 대한 명백한 검증 없이 가케 학원에 특혜가 제공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가케 학원의 이사장은 아베 총리의 가까운 지인이었다.

지난 1~2년 간 야당과 언론, 시민들은 비리 문제를 집중 추궁해왔다. 그럴 때마다 아베는 관련 없는 일이라 잡아뗐다. 2017년 2월에는 국회에서 모리토모 학원 문제에 대해 “나와 아내가 관여되어 있다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특혜 의혹을 밝힐 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어졌다. 이대로 눙치고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태는 올해 3월 다시 급진전되었다. 아베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아사히신문의 보도였다. 재무성이 3월 2일 모리토모 학원과 부당거래가 없었다며 증거자료로 제출한 공문서가 조작되었다는 폭로였다. 보도에 따르면 조작된 문서에는 토지가격 특혜만이 아니라 모리토모 학원 이사장인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가 아베도 가담한 극우 정치단체 ‘일본회의’ 회원이라는 사실도 삭제되어 있었다. 아베와의 관계, 극우 교육 논란도 없던 일로 하려 했던 것이다. 한 재무성 공무원은 위에서 문서를 조작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메모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결국 재무성은 3월 12일 공문서 조작을 인정했다.

의혹만 가득했던 가케 학원 문제도 아베의 전 비서관이 문부과학성과 만나 수의학부 신설이 ‘총리의 의향’임을 전한 메일을 공개하는 등 결정적 증거가 쏟아졌다. 아베는 4월만 되면 관련 문제는 사그라질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그러나 계속된 정부의 허위 답변이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
 

또 다른 공문서 은폐: 자위대 파병 일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베가 은폐하고자 했던 공문서는 또 있었다. 지난 2004년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자위대 문제였다. 아베 정권은 이라크에서의 ‘평화유지활동’을 근거로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합법화하고자 했다. 일본의 국력에 걸맞게 해외에서 자위대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전권 부인’ ‘전력 비보유’를 규정한 헌법 9조를 위반한 것이라는 논란이 일자 자위대는 오직 비전투분야에서만 활동할 것이라 못 박았다. 이런 논리로 2015년 관련 내용을 담은 전쟁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이라크 파병 당시 전투 행위가 없었는지 추궁했다. 방위성은 파병 기록이 유실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해 3월 27일 없어졌다던 파병 기록이 ‘나타났다.’ 심지어 방위성이 올해 2월 시점에서 기록의 존재를 인지했음에도 의도적으로 보고하지 않거나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까지 제기되었다.

435일 치, 1만 4000여 쪽에 달하는 기록에는 수차례에 걸쳐 ‘전투’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당시 무장 세력과 영국군의 총격전에 자위대가 휘말렸다는 기록도 남아있었다. 해외 파병 자위대가 평화유지활동만 했다는 아베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심지어 적극적인 교전 활동이 있었다면, 아베가 강행한 전쟁법안의 근거 자체가 거짓이었다는 주장도 가능해진다.

일본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표적인 보수언론인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을 통해 파병 자위대가 ‘가혹한 환경에서 어렵게 활동’한 것이 드러났다며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 군부의 강력한 입김으로 전쟁을 일으킨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만큼 군에 대한 ‘문민통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군대가 국회를 속이면서까지 문서를 은폐하고 전투 활동에 가담했을 수 있다는 보도는 예삿일이 아니다. 
 

성희롱 문제까지 도마에 올라

최근에는 재무성 관료의 성희롱 문제까지 떠올랐다. 재무성 사무차관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가 한 여성 기자에게 성적 폭언을 한 것이다. 해당 기자는 신상의 위협을 느끼고 녹음한 대화를 언론에 공개했다.

재무성의 사건 대응은 더 큰 분노를 키웠다. 재무성은 피해를 당한 다른 여성기자들이 있다면 재무성과 고문계약을 맺은 변호사 사무소에 신고하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제3자도 아닌 가해자, 가해단체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곳에 신고해서 문제가 해결될 리 없었다. 게다가 실명으로 신고하라는 단서까지 달았다. 2차 가해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반발이 일자 후쿠다 사무차관은 스스로 사임했으나 성희롱 의혹은 끝까지 부정했다. 뻔뻔한 가해자와 재무성의 태도에 야당과 시민사회는 또다시 분노했다. 재무성 사건 대응에 반대하는 변호사들이 조직한 서명이 단 이틀 만에 3만 6000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서명은 실명 신고 지침 철회와 사건의 철저한 재조사를 요구사항으로 걸었다. 해당 사건은 일본판 ‘미투 운동’으로 불리며 일본 사회 전반의 반성을 촉구하는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4월 20일 야당 의원들이 미투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모습
(출처 아사히신문)
 

아베의 폭주, 이제는 멈춰야 한다

2012년 집권한 이후 아베 정권은 줄곧 ‘1강(强)’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그 사이 아베의 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묵혀놓은 갈등이 폭발할 조짐이다. 재무성이 모리토모 학원 문서 조작을 시인한 3월 12일, 국회 앞에서는 아베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당일에 급하게 준비되었지만 50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4월 14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3만 5000여 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가 성사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이제 관여가 확인되었으니 (작년 2월의) 약속대로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둬라!”고 외치고 있다.

시민들은 박근혜를 퇴진시켰던 한국의 촛불처럼 아베를 몰아내자고 외치고 있다. 심지어 엘이디(LED) 촛불도 등장했다. 상황이 비슷한 측면도 있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사건, 백남기 농민의 사망 등 여러 사건들이 불만을 키웠으며 최순실 게이트라는 비리사건을 계기로 촛불이 점화되었다. 이후 촛불에서는 ‘적폐’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 안전, 재벌, 불평등 문제가 부각되었다. 일본 역시 원전 재가동, 전쟁법안, 잇따른 과로사와 노동개혁 등의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이 국면을 계기로 지도자의 폭주를 저지하고 대안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은 양국 사회운동 모두에게 요구되는 과제다. 일본의 경우, 아베 퇴진이 가장 첫 번째 과제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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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정치 일본 민주주의 자위대 아베 사학비리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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