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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 제36호
리슨투더시티의 <끝나지 않은 편지>
"무릎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옥바라지-끝나지 않은 편지’를 제작한 리슨투더시티는 도시의 정체성과 자본주의의 관계, 보이는 도시 이면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 행동하는 문화 운동 그룹이다. 이들은 옥바라지 골목 보존 투쟁을 겪으며 연대의 의미를 봤고, 민주화운동가 김근태와 아내 인재근의 편지글에서 발견한 연대의 정신을 현재의 맥락으로 끌어와 고민하고 싶었다고 한다. 영상 속에서 카메라는 김근태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전경과 현재 진행 중인 투쟁의 현장을 오가며 비추고, 그 위로는 김근태·인재근의 편지를 읽는 나레이션이 흐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부당해고와 노조파괴에 맞선 투쟁을 10년 넘게 지켜오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 회사에 합의사항 승계를 요구하며 75m 높이의 굴뚝에서 농성 중인 파인텍 노동자들, 젠트리피케이션의 도끼날로부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점거를 시작한 서촌궁중족발 사장, 그리고 이 투쟁들에 연대하는 시민들이다. 리슨투더시티의 표현에 따르면 이 투쟁의 현장에 있는 자들은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러나 이들이 담담히 읽어내려가는 편지글 속에서 연대는 시간과 장소의 쇠창살을 넘어서는 대화의 일종이 된다.
부제로 달린 “무릎 끓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라는 문장은 본격적인 민중가요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가장 많이 불렸다는 일명 ‘훌라송’의 가사 한 구절이기도 하다. 영상의 말미에서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이 모여 서서 환하게 웃으며 훌라송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개사해 부르는 장면은, 이 비장하고 결의 어린 다짐의 실천도 결국 함께하는 소소한 시간들 위에서 가능하리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서촌궁중족발에서 1월 14일까지 열리는 제5회 도시영화제에 가면 ‘끝나지 않는 편지’를 비롯해 도시의 투쟁에 관해 만들어진 여러 영상들을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