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8/01 제36호

노동조합은? '자기표현'이다

  • 한샘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비정규직지회가 설립된 게 지난해 2월 12일이다. 8개월의 지난한 투쟁 끝에 금속노조와 기업노조로 나뉜 것이 10월 11일. 그리고 금속조합원이 정규직으로 현장복귀를 완료한 것이 11월 15일이었다. 나와 우리 조합원들은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어설프고도 혹독한 성장통을 겪었고, ‘어른’이 되는 문에 한 발짝 다가섰다. 고통스런 성장통을 거부한 무리들은 아쉽게도 그 문에 다다르지 못한 채 허세와 아집으로 똘똘 뭉친 ‘중2병’에 스스로를 가두고 말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별로 지나지 않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고 정말 얼마 안 되었을 무렵 한 동지가 내게 물었었다. “본인에게 노동조합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 동지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내내 생각했었다. 결국 얻은 결론은 “자기표현”.

《오늘보다》 7월호 단결툰에도 실린 얘기지만, 나에게 투쟁의 모습은 그리 생소한 광경이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당시 부평 대우자동차 얘기는 항상 화제가 됐었고, 얼마 안 있어 그곳에서는 대규모 행진과 집회가 열렸다. 그날 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 대신 끝도 없는 행진 무리에 친구와 같이 합류했다. 나눠준 피켓을 들고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구호를 모인 사람들과 함께 외치고 또 외쳤다. 그래서 얼마 전 지엠 부평공장 앞 집회는 참으로 신기하고도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거의 20여년 만에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모습이라니!
 

사실 처음 노동조합을 결성하자는 말이 나오고, 결성 후 활동하는 와중에도 나는 항상 바깥의 세계를 꿈꿨고, 그 일원이 된 나를 꿈꿨다. 어쩌면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투쟁을 해야 한다, 이전의 노예와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 누가 시키는 대로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등의 단편적 사고에 갇혀, 만도헬라 비정규직지회는 체계도 소통도 없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했다. 마치 잘 익은 감이 나무에서 똑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배고픈 어린아이마냥 말이다. 시작을 창대하게 했으니 끝도 당연히 그러리라는 아주 막연한 믿음이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맹신으로 바뀔 때까지의 시간은 지나치게 짧았다. 스스로 움직이기를 거부한 지회는 내리막길을 향해 멈추지 못하는 돌처럼 굴러갔고, 나 역시 지회에서 눈을 돌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생각한 “자기표현”을 하는 것에만 열중했다.

10월 11일 지회가 둘로 나뉘던 그날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내부에 힘을 쏟지 못한 결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했고, 나는 또 다시 기회를 놓친 것만 같았다. 금속노조 조끼를 벗어야 다 같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전 지회장의 거짓선동, ‘우리는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지금껏 투쟁해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규직만을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며 조합원들에게 금속노조 탈퇴서 작성을 강요하던 간부들의 모습에서 난 좌절했다. 진심으로 아팠다. 분위기에 휩쓸려 순식간에 250여장의 탈퇴서가 모이던 그 순간까지 나는 끝내 그 상황을 온전하게 마주볼 수 없었다.

모든 노동조합이 그렇듯, 아니 세상의 순리가 그러하듯 가장 기본적인 단계를 거치지 못하고 클 대로 커버린 생각의 덩어리들은 그렇게 공중에서 떠돌다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어느 순간 그 존재를 감췄다.

“앞으로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한 번의 암전이 지나간 뒤 지회의 임원과 간부들이 조합원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자,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이다. 내가 속한 지회 내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어떤 일을 처리했는지, 어떤 말을 누구에게 들어야하는지 모르는 채로 단지 인원수만 채우는 조합원은 스스로도 자존감을 가질 수 없다.

현장에 복귀한지 한 달이 지나가는 지금, 나는 여전히 자기표현에 힘쓰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시켜 가고 있는 중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조합원 한 명 한 명이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 나아갔으면 한다. 앞으로도 한동안 우리는 소수노조인 채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감정의 주먹에 끊임없이 난타당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움츠러들어 여기까지가 끝이라고 믿어버리는 조합원들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란다. 

기업노조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자신의 신념에 반해도 언젠가 받게 될지 모를 불이익이 두려워 소수보다는 다수 편에 서는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침묵하려는 이들 또한 가까운 시일 내에 스스로 판단하는 때가 오리라 생각한다. 다수라는 허울에 속아 자신의 목소리를 억압당하는 가짜 노동조합 속에서 분명 자기표현을 꿈꾸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나를 주장하고 표현하되, 독단적으로 ‘우물 안 개구리’는 되지 않아야겠다. 글 서두에 ‘어른이 되는 문에 한 발짝 다가섰다’고 표현한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나와 조합원, 조합원과 지회, 지회와 나는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

분명히 균형을 맞추지 못한 채 때늦은 사춘기가 다시 올수도 있고 동면하고 싶은 시기가 올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것은 충만한 기대감이 불안감과 초조함을 앞섰다는 것이다. 올 테면 와봐라. 우리는 온전한 자기표현을 꿈꾸며 완전한 만도헬라지회로 거듭나려는 빛나는 만도헬라지회 조합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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