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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 제36호

노동자의 ‘트레바리’는 어떨까

  • 홍명교
요즘 스타트업 ‘트레바리’가 꽤 잘 나간다고 한다.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라는 모토의 이 기업은 회원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이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주선한다. 강연·시음회·음악살롱토크·파티·수제맥주 만들기·체형교정 레슨 등 다양하다. 

출발은 2년 전 가을, 4개 북클럽의 80명이었다. 두 번째 시즌엔 9개 클럽 175명, 그 다음엔 18개 클럽에 340명을 조직했다. 계절마다 회원을 2배씩 키웠고, 지난 9월 시작한 일곱 번째 시즌엔 111개 클럽에 1700여 명이 등록했다. 

이는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이들에겐 익숙한 형태의 사업이다. 학생운동 활동가들은 학술동아리나 책읽기모임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신입 회원을 조직한 후 이 거점을 통해 활동을 펼친다. 책만 읽기보다는 강연회를 기획해 사람들을 초대하고, 노동절이나 여성의 날, 이주노동자의 날 등에는 도심 집회에도 참가한다.

트레바리는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이다. 1700여 명이 내는 회비가 주 수입원이고, 사회 명사를 클럽장으로 둔 클럽은 분기별 29만 원, 그렇지 않은 클럽은 19만 원을 낸다. 최소한의 시간적·금전적 여유가 있어야 참여 가능하다. 클럽장은 해당 분야별에서 저명한 인사가 초빙되어 맡는다. 운동권 학회로 치면 일종의 ‘간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회원들로선 꽤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독서모임을 사업 컨텐츠로 삼는 스타트업이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독서모임 기반 커뮤니티 운영 사업이 이처럼 큰 호응을 얻는 이유는 뭘까? 지식에 대한 시민의 욕구가 그만큼 크다고 가정할 수 있다. 제도권 교육에서 우리는 경쟁에 허덕이느라 만족스런 수준의 지식을 획득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혹은 ‘공동체’에 대한 열망일 수도 있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다양한 취향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건 보편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터와 삶터에서도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어쨌건 중요한 건 이 사업이 ‘먹힌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저 책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떤 책을 읽느냐다. 우리 사회의 가장 대중적인 이데올로기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듯, 널리 회자되는 지식 역시 모순을 덮고 변혁적 지향을 구부리는 지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상상을 해봤다. ‘책 읽는 노동자 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책 읽는 서비스 기사 모임, 책 읽는 청소노동자 모임, 책 읽는 강원 노동자 모임 등 지역과 현장별 모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의 책읽기 캠페인, 혹은 2천만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민주노총 주도의 지식 운동도 참신할 것 같다. 대중들에게 지식의 권리를 돌려주고, 지식의 차이를 축소할 수 있어야 변혁의 지평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지식은 소수의 전문가들에게만 주어진 권리가 아니다. 대중들의 것이 되어야 하고, 대중운동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 얼마 전 한 노동자 독자가 직장 내 노조 게시판에 《오늘보다》를 걸어두고, 조합원들이 오며가며 읽을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이런 작은 실천부터 출발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회운동이 제기하고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책읽기 모임, 대안 지식 운동을 상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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