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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 제34호

목숨 걸고 편지 전하는 집배 노동자들

고 이길연 집배원 유가족 이동하 씨 인터뷰

  • 한건희
세상 사람들이 가장 반가워하는 사람은 누굴까. 모르긴 몰라도 ‘택배 기사’가 순위권에서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체국 택배는 빠른 배송으로 인기가 높다. 중고 거래를 할 때면 우체국 택배로 보내겠다는 문구가 거래자의 성의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쓰일 정도다. 하지만 그 우체국 택배를 배달하는 집배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21명의 우정사업본부 노동자들이 사고·과로사·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 또한 아는 이가 드물다.

지난 9월 5일. 광주에서 또 한 명의 집배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5년차 집배 노동자였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두렵다. 이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라네. 사람 취급 안하네. 가족들 미안해”라는 마지막 말이 남아 있었다. 그는 업무 중에 사고를 당해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체국에서 고인에게 억지로 출근을 종용했던 정황이 하나둘씩 발견됐다. 고 이길연 집배원의 아들인 이동하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씨는 고인의 순직 인정과 진실 규명·명예 회복·집배원 처우 개선을 위해 싸우고 있는 ‘고 이길연 집배원 사망사고 명예회복을 위한 광주지역대책위원회’에 유가족을 대표해 참여하고 있다.
 
 
 

아파도 하소연 할 수 없었던 현실

고 이길연 집배원이 속해 있던 팀은 서광주우체국 안에서도 가장 많은 집배량과 세대수를 맡고 있는 팀이었다. 자연히 정시퇴근은 바랄 수도 없었고, 아침 7시쯤 출근해서 밤 8~9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나마 이건 평상시 얘기다. 명절 등 집배 물량이 많은 기간에는 훨씬 더 긴 노동이 부과됐다. 노동 강도도 어마어마했다. 대부분의 집배원들은 중간에 식사시간도 확보하지 못한 채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 일을 많이 도와드렸었어요. 그때 점심을 드실 시간이 없어서 아버지랑 같이 아파트 정자에 앉아서 빵 하나 먹고 다시 일하곤 했던 기억이 있어요. 평소에도 점심 드실 시간이 없는데 퇴근을 늦게 하시니까 저녁도 늦게 드시고. 그래서 많이 힘들어하셨었어요. 한번은 제가 일을 도와드리니까 시간이 좀 나서 식당에서 밥을 먹을 일이 있었는데 먼저 가서 밥을 시켜놓으라고 그러시더니, 밥을 5분 만에 후다닥 드시고 다시 나오시더라고요.”

불규칙한 생활 패턴과 장시간의 노동은 자연스레 건강 문제로 이어졌다. 이미 2013년 노동자운동연구소의 연구에서는 집배원들이 심각한 탈진, 근골격계 질환 등의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음이 드러난 바 있다. 고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잦은 몸살에 시달렸고, 지방종이 자주 생겨 고생했다고 한다. 일을 하다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으면 20분 정도 병원에 들러 링거를 맞고 다시 일을 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유일하게 업무의 고통을 달래 주는 것은 동료들과의 술자리뿐이었다.

고인이 사고를 당한 건 업무 도중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나오던 차가 중앙선을 침범해 고인을 들이받은 것이다. 고인은 허벅지를 크게 다치고 팔꿈치에도 부상을 입었다. 이외에도 복통과 두통도 호소했다. 하지만 우체국에서는 고인에게 산업재해보험은 커녕 공상 처리도 해주지 않았다. 사고가 났을 때 일단 병가 처리를 한 후 병가 기간이 끝나면 그 뒤에 진단서를 가져와야 공상 처리한다는 내부 규정이 그 이유였다. 오히려 우체국은 사고로 고통스러워하는 고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출근을 종용했다.

“의사가 보기엔 3주 후에도 출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의사가 2주짜리 소견서를 추가로 끊어줬는데, 우체국에선 ‘소견서는 인정을 못해주니 출근해야 된다’고 한 거죠. 그런데 지금 와서 서광주우체국은 이길연 집배원이 소견서 얘기를 꺼낸 적이 없대요. 통화 기록이 남아있는데도 말이죠. 직접적인 출근 종용도 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우체국에서는 그것도 잡아떼고 있어요.”

 

무엇이 집배원을 죽음으로 내모나

우체국의 ‘겸배’ 제도도 고인을 압박했다. 겸배 제도란 집배 인원에 결원이 생겼을 때 추가로 인원을 확충하지 않고, 집배원들이 배달 몫을 나눠 맡는 제도를 말한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노동자가 병가나 휴가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게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휴식이 그대로 동료들의 업무량 증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아버지가 쉬시는 동안 저한테 본인이 나쁜놈이 됐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고인이 느끼던 압박감을 설명했다.

이러한 우체국의 압박 속에서 고 이길연 집배원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건 후 우체국의 대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성의했다. “우체국 직원들이 조문을 오긴 왔는데, 가장 책임을 져야 할 서광주우체국장은 발인예정일 전까지 조문을 안 왔어요. 해외여행을 가있었대요. 심지어 유서가 발견되기 전에는 우체국 쪽에서, ‘여기 집배원 한 명이 목숨을 끊었는데 자기들 선에서 잘 처리를 할 테니까 편히 즐기다 오시라’는 식으로 우체국장한테 보고를 했나 보더라고요. 어이가 없지요. 그런데 우체국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유서가 발견이 되니까. 우체국장님이 빨리 오셔야 될 것 같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안 왔어요. 단체 패키지로 간 거라고 핑계를 대면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하면, 상식적으로 우체국 측은 유가족들을 진정성 있게 위로하고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보상을 약속하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우체국 측은 장례식장에서조차 어설프게 유가족들을 회유하려고 시도할 뿐이었다. “우편물류과장이 조문와서 사촌누나한테 따로 이야기를 좀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자녀 중 하나를 비정규직 집배원으로 우체국에 넣어 주겠다고 했대요. 집배원으로 일하던 사람을 죽여 놓고 자녀를 다시 집배원으로 넣어 주겠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고 이길연 집배원이 속해 있던 한국노총 산하 우정노동조합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진실을 밝히려는 유가족들과 대책위를 훼방 놓았다. “아버지가 우정노조에 회비도 성실하게 내시던 조합원이셨거든요. 그런데 우정노조에서는 말로만 어떻게 해주겠다 그러곤 연락이 안와요. 지난번에는 제가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었는데, 우정노조 사람이 와서 괜히 말 걸면서 피켓을 가리는 거예요. 밥 먹었냐고. 식사나 하시러 가자고. 필요 없으니까 피켓 가리지 말고 가시라고 말했죠. 나중에 또 연락을 하길래 무시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가서 하는 말이 유족을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유족이 연락을 받지 않았다는 거죠. 정말 이번 일 겪으면서 우정노조에 치가 떨리게 됐어요.”
 
 
 

은폐하기 급급한 우정사업본부

우체국도, 우정노조도, 상위기관인 전남지방우정청이나 우정사업본부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사건을 조용히 덮으려고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족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공공운수노조 산하 집배노조와 우체국노조였다. 고인의 직장 동료 중에서 우체국노조나 집배노조에 속해 있던 조합원들이 조문을 와서 유가족들에게 연락을 준 것이다. 이씨는 집배노조와 우체국노조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이만큼 사회적 이슈가 되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명예 회복은 생각하지도 못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후 유가족들과 집배노조, 우체국노조,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했다. 발인을 미루고 고 이길연 집배원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명예회복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고, 서광주우체국 및 전남지방우정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사건이 매스컴을 타기 시작하자 겉으로라도 유가족을 위하는 척 하던 서광주우체국의 태도는 180도 돌변했다.

“전남우정청도 그렇지만, 특히 서광주우체국 쪽에선 자신들이 뭘 잘못했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너희들 때문에 망하게 생겼으니까 신경 쓰지 않겠다는 식인 거죠. 서광주우체국장은 저희가 면담 신청하러 갔을 때 막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더라고요. 거기까지야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경찰을 부를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지금 해결된 일이 하나도 없는 건데. 업무수행 방해라고 경찰을 불러서 저희를 쫓아내려는 거예요. 한번은 고모가 물류과장을 찾아가서 왜 매스컴에 앞뒤가 다른 말을 하냐고 따져도, 그냥 모르쇠로만 일관하더라고요. 말하는 사람 앞에서 한숨 푹푹 쉬고. 차 마시면서 컴퓨터하고…”

우체국의 무성의한 대응이 이어지자 유가족과 대책위는 서광주우체국 후문에 분향소를 차리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이씨가 직접 상경해 광화문 등지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서광주우체국이나 터미널 근처에서는 우체국을 규탄하는 집회, 고 이길연 집배원을 추모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진상 규명과 순직처리를 청원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사건이 점점 더 공론화되자 상위 기관인 우정사업본부나 전남우정청의 태도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순조롭지 않은 승리

결국 지난 9월 27일, 우정사업본부와 유가족들은 합의안을 도출했다. 여기에는 △공무원 재해 은폐 및 출근종용 금지 등을 담은 담화문 발표 △고인이 사망에 이르게 된 책임을 인정하는 서광주우체국장·우편물류과장·집배실장·물류실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 △산재은폐 출근종용 책임자 처벌 △유가족·대책위가 요구한 진상 규명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순직처리 노력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과 관련한 추진기구 구성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우정사업본부에서 나온 담화문은 내용이 미진해 몇 차례 다시 수정 요청을 해야 했다. 순조롭지 않은 과정이었다. “제가 수정요청을 해도 받아주지를 않았어요. 합의문 찢어버리고 청와대 앞으로 가겠다고까지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그제서야 부랴부랴 담화문을 고치더라고요.”

서광주우체국장·우편물류과장·집배실장·물류실장 등 소위 ‘4인방’의 사과문에도 문제가 많았다. “집배실장 같은 경우에는 공상 처리를 제때 해주지 못한 부분에 대한 사과를 꼭 넣으라고 했는데 그 부분은 쏙 뺐더라고요. 물류과장이나 서광주우체국장 같은 경우 수정 명령을 아예 무시하고 있어요. 제가 어제 전남우정청에 가서 이런 점들을 지적하면서 사과문을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청장은 그걸 자기가 강요할 수는 없다고 눙치더라고요. 그렇게 하면 공무원으로서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다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둘러댈까요. 자기 일이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네요.” 

전남지방우정청과 우정사업본부와의 지난한 교섭도 계속되고 있다. “전남우정청이나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조건을 자꾸 내세워요. 매스컴에 소란스럽지 않게 해달라. 순직 처리 먼저 하는 게 급선무 아니겠느냐. 분명 처음에는 순직 처리는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처리를 해야 하는 문제라 자기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조용히만 해주면 자기들이 다 해결해줄 것처럼 말해요. 청와대에서 압박이 들어가서 그런 건지, 국정감사 기간이라 설설 기는 건지 몰라도 이렇게 태도가 바뀐 게 웃긴 거죠.”
 

악성 유언비어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유가족들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악성 유언비어였다. “우체국에 항의방문을 갔다가 그 앞 편의점에 들렀는데 그런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사실 이번에 돌아가신 분은 자식들이 버린 부모였는데 죽고 나니까 자식들이 이제 와서 콩고물을 얻어먹으려고 이렇게 한다더라. 또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직장이 멀어서 따로 살고 계셨었는데, 그걸 가지고도 헛소문을 내고. 거기다가 평소에서 직장에서도 태도가 안좋았다느니, 업무처리가 미숙했다느니 하는 식의 글을 우체국에서 공식 보도자료로 올려 버렸어요. 정말 어이가 없는 거죠.”

울분을 토하는 이씨에게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 물었다. “일단 당면한 과제는 아버지의 순직 인정을 받아내는 거예요. 그 담엔 사과문 문제를 처리해야죠. 저는 우체국 측에서 아버지한테 출근을 종용했다는 사실을 인정만 하면 책임자 처벌은 원치 않는다고까지 말했거든요. 그런데도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말을 한 장본인도 나오지 않고 있어요.”

이씨는 아버지가 공상 처리를 받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었던 ‘사고 처리에 대한 우체국 내규’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 내규는 모순된 내용도 많고, 사고로 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에 무리가 가지 않을 때까지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를 전혀 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내규를 몇 군데 고쳐서는 답도 없을 것 같으니 아예 새롭게 만드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모든 집배원을 위한 싸움

이동하 씨는 생업과 투쟁을 병행하고 있다. 지쳐 보였지만, 목소리와 눈빛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우정사업본부와의 합의문에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개선기구 설립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이미 고 이길연 집배원의 사망을 둘러싼 투쟁은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진실 공방을 넘어 전체 집배원의 노동조건에 관한 투쟁이 됐다. 집배노조와 우체국노조 등 노동조합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이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말해 준다.

집배노조에서는 이번 투쟁을 계기로 서광주우체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실하게 밝혀야 하고, 우체국에 만연한 산업재해 은폐 관행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부디 이번 투쟁이 승리로 끝나 우체국 내부의 산재처리 규정이 바뀌고 더 나아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집배원 충원 등 산적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를, 그래서 다시는 우체국에서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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