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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 제33호

알뜨르비행장과 전쟁

  • 편집실장 홍명교
지난여름 제주도에서 ‘탐라순담’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다. 모슬포에 위치한 알뜨르비행장을 돌며 이곳과 얽힌 역사를 돌아보는 매우 뜻깊은 행사였다. 딱 한 번 지나친 적이 있을 뿐 이곳 역사를 되새기고 생각하기 위한 목적으론 처음이었다.

평화로운 농지였던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일본 해군이 임시 활주로를 조성하면서 비행장으로 만들어졌다. 6만 여 평의 평야에 폭 70미터, 길이 1400미터의 활주로가 깔렸다. 37년엔 주위 15만 여 평으로 확장했고, 폭 20미터, 높이 4미터 규모의 격납고 스무 개가 세워졌다. 작은 언덕처럼 생긴 이 격납고들은 여전히 들판 곳곳에 잔해처럼 남아있다.
 
ⓒ오마이뉴스

알뜨르비행장은 1937년 발발한 중일 전쟁의 전초 기지였다. 당시 중국 난징에선 20~30만 명의 민중들이 일본군의 폭격과 도륙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되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제주도로부터의 난징 공습은 36회·연 600기에 이르고, 투하된 폭탄 무게만 300톤에 달했다고 한다. 수십만 학살의 무기들이 이곳에서 기름을 채워 날아간 것이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육군 25연대의 훈련장으로 이용됐고, 한때는 중공군 포로 수만 명이 수용되기도 했었다. 이곳에서 상당수가 자살했고, 꽤 많은 이들은 고향이 아닌 제3국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 후로도 이곳은 미군 기지나 해군 기지로의 전용이 수차례 검토됐다. 불과 11년 전인 2006년 11월엔 격납고 등이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는데, 활주로만은 군의 반대로 제외되어 논란이 일었다. 알뜨르비행장은 여전히 몇 년마다 군사적 활용이 검토되는 논란의 장소로 남아있다. 난징 학살의 전초기지였다는 걸 기억한다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모든 전쟁에는 승전국과 패전국이 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승패와 무관하게 파괴된다. 2차 대전을 전후로 한 20세기 동아시아의 전쟁은 너무나도 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알뜨르비행장이 지닌 뼈아픈 역사는 가까운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뿐만 아니라,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운동, 그리고 최근의 사드 배치 반대운동의 역사까지 떠올리게 한다. 이는 모두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전개하고 있는 군사 패권 전략과 맞닿아 있다.

한반도의 위태로운 전쟁 위기 정세가 지속되고 있다. 북한과는 가장 멀리 떨어진 우리 땅 최남단 알뜨르에서, 나는 한반도 민중들이 직면한 전쟁 위기의 공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소설가 한강이 뉴욕타임즈 지면을 통해 말했듯, 우리는 “국경 너머에서 핵무기를 실험하고 있는 북한의 직접적 위협”과 “점점 고조되어 가고 있는 말들의 전쟁이 현실의 전쟁이 될까 봐 두려워 하”고 있다. 미치광이 트럼프가 “전쟁을 이야기하는 동안, 남한은 몸서리 친”다. 요컨대 남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승리로 끝나는 전쟁 시나리오 따위는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정부의 좌충우돌 오락가락 행보, 미치광이들의 난투 앞에서 전쟁 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다. 오직 평화를 지키기 위한 직접 행동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란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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