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름X정치
- 2017/09 제32호
드라마 여성 캐릭터의 진화
<비밀의 숲> <귓속말> <시그널>의 세 여성 경찰
경찰인데 눈에 힘주지 않는다. 다소 느릿하고 일상적으로 내뱉는 대사가 처음엔 익숙지 않았다. 드라마 〈비밀의 숲〉의 여자 경찰 한여진(배두나 역)에 대한 얘기다. 그런데 한여진을 보면 볼수록 얼마 전 봤던 드라마 〈귓속말〉의 여자 경찰 신영주(이보영 역)가 떠올랐다.
신영주는 힘이 들어간 캐릭터다. 눈에 힘도 들어가고 미간을 찌푸리며 잔뜩 인상도 쓴다. 이 캐릭터는 소위 말해 걸크러쉬 넘치는 언니다. 조폭을 힘으로 제압하며 여기저기를 종횡무진 움직이는 그녀에게 그간 민폐 캐릭터로 일관한 드라마 속 여성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뒤이어 작년에 봤던 드라마 〈시그널〉의 여자 경찰 차수현(김혜수 역)이 떠올랐다. 매사에 이성적이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차수현은 심지어 20년이 넘는 시공간을 넘어서 활약한다.
위 드라마 세 편의 여주인공은 공교롭게도 모두 직업이 경찰이며 ‘경위’라는 직급도 같다. 남성이 다수인 경찰사회에서 세 명의 여성 경찰이 그려낸 모습은 꽤 강렬했다. 여성 경찰이라면 으레 보조적인 여순경으로 그려지던 그간의 드라마와 달리 직급도 비중도 달랐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는 민폐 여주인공이 아닌 당당한 해결의 주체, 그것도 남성 지배적인 공간에서 정의를 위해 달리는 그녀들이 등장한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했고 현실은 조금 나아졌다고 믿고 싶었다. 사회 비판 드라마의 비중 있는 여주인공은, 이 사회의 정의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지를 말하고자 하는 매개가 아닌가. 그녀들의 모습이 변한 것이다.
누구의 딸도, 누구의 연인도 아닌 그녀
이 세 여성 경찰 캐릭터에서 가장 눈에 띈 건 〈비밀의 숲〉의 한여진이다. 한여진이 정의를 추구하는 동기는 가족도 연인도 아니다. 정의로운 아버지, 첫사랑 선배에 대한 명예회복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추구한다. 그녀가 눈시울을 적시며 가장 분노한 때는 사건 해결을 위해 불의한 방법을 사용하는 동료들의 배신, 자기 직업에 대한 가치를 훼손한 직장상사의 배신을 목도했을 때다. 〈귓속말〉의 신영주는 원래도 강직한 경찰이었지만, 진보언론인인 아버지의 신념을 되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도구로 사용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하는 것도 자신의 정의가 아니라 아버지의 정의를 지켜주고 싶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시그널〉의 차수현은 원래도 민심을 챙기는 순박한 경찰이지만, 누명을 쓰고 실종된 첫사랑 남자 선배를 찾아내 명예를 회복시켜주고픈 한편의 마음이 움직이며 장기미제사건전담팀을 담당한다. 그 때문에 그녀는 백골사체만 발견되면 국과수로 달려가고, 결혼하라는 가족들의 권유에 선은 보러 나가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보통 등장인물이 각성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동기로 가족 혹은 연인을 사용한다. 가족 이데올로기는 항상 드라마의 밑바닥에 깔려있고, 여성 캐릭터는 더욱더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비밀의 숲〉의 한여진은 이 같은 서사가 없다.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드라마에 등장하지도 않는 가족 때문에 외롭게 보이거나 동정심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비밀의 숲〉에서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주인공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도 가족이요, 잘못을 저질러 선처를 구하면서 변명을 할 때도 가족이 겪을 어려움을 호소한다. 구차하다. 한여진에게는 그런 구차함이 없다.
당사자주의를 뛰어넘는 공감
〈비밀의 숲〉 한여진의 해결 방법은 복수가 아니다. 그녀의 행동은 우리가 어쩌면 수없이 많은 범죄와 악인에 대한 단죄를 복수로써 해결해오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복수는 나의 것’을 외치던 수많은 드라마 속 인물과는 달리 〈비밀의 숲〉의 한여진은 사회의 많은 범죄를, 여성들이 직면한 수없이 많은 문제를 복수가 아니라 따뜻한 연대로 해결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점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귓속말〉의 신영주와는 확연히 다르다. 파워 있고 이성적인 능력으로 범인을 잡고 응징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의를 외치지만 결국에는 자신도 그들과 뭐가 다를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는 신영주와는 달리 한여진은 사람과 사람 간의 연대를 진심 어리면서도 담백하게 보여준다.
이는 〈비밀의 숲〉의 한여진이 피해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누명을 쓴 〈귓속말〉의 신영주, 첫사랑 선배가 실종되고 범죄 피해자로서의 트라우마를 가진 〈시그널〉의 차수현은 피해관련자 혹은 당사자다. 그녀들은 정의를 향한 감정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분리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비밀의 숲〉의 한여진은 본인이 피해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도 눈시울을 붉히며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바로 이 점 덕분에 그녀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에 균열을 내는 존재가 된다. 제도 안에서 정의를 찾지 못한, 자식 잃은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죽게 만든 이를 살해한 데 대해 한여진은 오히려 질타한다. 세상의 모든 자식 잃은 부모들이 열심히 살고자 애쓰며 견디는 하루하루의 가능성을 모두 낙인찍어 버렸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악인이라 응징당하며 죽어간 자들의 어머니를 언급한다. 복수는 결국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뿐이라는 신랄한 질타, 결국 새로운 피해자가 된 또 다른 여성을 언급하며 그녀는 ‘복수는 방법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어떻게 깨어날까
〈비밀의 숲〉에는 아직 잠자고 있는 또 하나의 여성 캐릭터가 있다.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아버지를 둔 금수저 출신에, 위의 세 여성보다 사회적 직급이 높은 영은수 검사이다. 한여진이 가장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이라면, 영은수는 가장 욕망에 충실한 현실적인 인물이다.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막무가내 돌출 행동에 짜증이 나면서도 돌아서면 안쓰럽고 속상한 심정이 들게 하는 인물. 왜 속상했을까. 영은수의 모습에서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한 여성 직장인이 직면한 현실이 보였고, 영은수의 현재는 신영주와 차수현과 한여진이 겪었던 과거 신입 시절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영은수는 90년대 신입경찰이었던 〈시그널〉의 차수현과 닮았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녀들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한다. 90년대의 신입 경찰 차수현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범인을 맨몸으로 잡으려 코피가 터져가며 고군분투한 것처럼, 2017년의 영은수는 아버지의 누명을 풀겠다며 대책도 없이 트럭 짐칸에 숨어들어 관련자를 쫓는다. 〈시그널〉의 차수현이 일부러 범인의 표적이 될 각오로 수사를 하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처럼, 영은수는 선배검사 서동재에게 목이 졸려가면서도 스스로 용의자를 찾아내려 한다. 90년대 차수현과 2017년의 영은수의 차이는, 영은수가 커피 심부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로 보인다. 마치 20년 동안 변한 것이 그 뿐인 것처럼 말이다. 형사기동대의 마스코트라며 커피심부름을 강요받던 차수현과 달리 영은수는 그럴 위치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다.
한편 사건 해결을 통해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영은수의 집념은 <귓속말>의 신영주와 닮았다. 하지만 영은수는 신영주처럼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영은수가 하는 일은 영향력이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비밀의 숲〉에서 아직 잠자고 있는 영은수는 덜 진화된 신영주이면서도 차수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욕망에 충실한, 잠자고 있는 숲속의 공주인 영은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캐릭터다. 고군분투하는 영은수의 모습을, 아버지의 정의가 아니라 자신의 정의로 삶을 살아가는 진짜 주인공이 되기 전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이후 신영주·차수현·한여진 중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는, 일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영은수의 ‘저는 왜 안돼요? 저는 왜 안돼냐고요?’라는 대사가 아직도 귓가에 남는다. 출발선상에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이 땅의 많은 일하는 여성들이 한번쯤은 내뱉거나 맘속에 품었을 법한 말. 이 땅 모든 영은수들의 미래가 궁금하다.
이상적인 여성캐릭터는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다시 〈비밀의 숲〉 한여진으로 돌아오자. 그녀의 캐릭터는 꽤나 진일보했다. 정의롭지 못한 행동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은 (그것이) 되니까 하는 거라고 지적하며, 비록 작은 울림으로 그치더라도 타협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사회악을 처단한다며 또 다른 여성의 피해를 만들지 말라고 눈시울 적시는 이런 여성 캐릭터가 필요하다.
한여진은 감성적이지만 신파는 아니고, 과하지 않으며, 단순한 측은지심이 아니라 정의를 향한 감성의 소유자이다. 시청자들은 뇌수술로 감정이 제거된 남주인공 황시목의 특성에 주목했다. 그 장치가 주는 깊은 메시지를 기억하는 한편, 공감이라는 여주인공 한여진이 가진 제거되지 않는 감성의 순기능 역시 이 드라마의 중요한 장치임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비밀의 숲〉의 한여진은 지금껏 봐온 한국드라마 중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전형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로 눈여겨봐야 한다.
너무 이상적이어서 판타지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드라마 여성 캐릭터에도 의미 있는 판타지가 선사되었으면 한다. 민폐 여성 캐릭터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하거나 남성의 모습을 한 멋진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정의를 추구하는 캐릭터를 만들 때, 진짜 일하는 여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도 커지지 않을까? ●
- 필자 소개
정지현 | 취미는 드라마 속 여성의 삶 탐구. 2000년대 여성노동자 투쟁에도 줄기차게 연대했다. 현재 사회진보연대 노조페미니즘팀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