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7/10 제33호

도시가스검침원의 추석명절

  • 공순옥

가스검침원에게 명절이란?

이번 추석은 휴일이 길다. 휴일이 길면 다른 직종의 종사자들은 좋아한다. 그러나 가스검침원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연휴에 검침이 걸린 사람들은 편히 휴일을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 내부에 계량기가 있는 사람들도 명절 지내러 지방에 내려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혹은 바빠서 가스검침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더 힘이 든다. 해가 바뀌면 달력을 넘겨보며 제발 명절 연휴에 검침기간이 안 걸리길 바란다.

이번에도 원래는 10월 6일부터 11일까지가 검침기간이었다. 그런데 이 기간을 어떻게 조정해 줄지 몰라 연휴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명절과 검침기간이 겹치면 하루 정도 늦춰주는 식으로 일정이 나와서 이번에는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검침원들과 상의하거나 좀 더 미리 알려주기라도 하면 좋은데, 9월 말이 다 되어서야 일정이 나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연휴를 다 쉬고 10일부터 15일까지 검침을 하란다! 

연휴를 다 쉬면 좋을 것 같지만 우리한테는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점검은 언제 하냐’는 생각이 먼저 든다. 연휴를 보내고 15일까지 검침하면 남은 날짜에 가스 안전 점검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 더 일찍 일정이 나오면 계획을 잘 짤 수 있었는데 아쉬운 점이 많다. 우리도 주부라 명절을 지내러 시댁도 가야하고, 음식도 준비해야 하고, 인사 갈 곳도 있고, 할 일도 많은데… 검침기간이 걸려 계획을 못 세우고 있었다.

이번 추석처럼 연휴가 길면 점검이 걱정이다. 남들 쉬는데 점검하는 것도 싫지만 고객들도 점검하러 오는 걸 싫어한다. 명절 연휴인데 점검 왔냐고 하면 서글퍼진다. 그러나 명절 연휴를 다 쉬면 할당량을 다 할 수가 없다. 연휴 때 안전점검을 하지 않고 쉬려면 미리 일요일에도 쉬지 말고 열심히 하거나 연휴가 끝나고 쉰 날만큼 배로 채워서 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할당량을 다 채우기가 부담스럽다. 명절에는 집안일도 그렇거니와 우리의 일은 더욱 힘이 든다. 그래도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자기의 맡은 일을 책임지고 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게 우리 가스검침원이다.
 

노동자 며느리에게 명절이란?

나는 시댁이 제주도다. 맏며느리라 안갈 수가 없다. 언젠가는 설날이 검침기간과 딱 겹쳤다. 그럴 때는 검침기간을 조정해주는데 겨우 하루만 늦춰줬다. 그렇게는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미리 수검침을 하고 갔다. 일일이 종이에다 한 집 한 집 계량기 수치를 적어두고, 나중에 시댁에 가서 장을 보거나 음식을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피디에이에 옮겼다. 다음 달에는 일요일이 겹쳐서 검침을 조금 늦게 했더니 날짜차이도 나고, 겨울이라 요금이 많이 나와서 민원이 크게 터진 적이 있다. 이렇게 가끔 어쩔 수 없이 수검침 할 때가 있는데, 오검침을 할 수도 있어 우리도 좋아하지 않는다.

시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는 그래도 마음이 편했다. 명절에 내려가서 음식만 준비하고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는 장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 어떤 음식을 해야 할지, 손님 접대는 어찌할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내 몫으로 돌아왔다. 시댁이 가깝지도 않으니 미리 제주도에 내려가서 양념부터 모든 것을 나 혼자 준비해서 해야 한다. 명절 준비뿐만이 아니다. 시아버지 혼자 사시기에 청소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내려가면 대청소부터 해야 한다. 남편이 도와줘도 힘이 든다. 이런 와중에 검침하고 내려가면 마감까지 부재검침 전화벨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명절 일하랴, 부재검침 챙기랴 정신이 없다. 화가 날 때도 있지만 홀로 계신 시아버지가 안 되어 보이고 또 집안의 평화를 위해 참는다. 남편이 장도 같이 보고 청소도 해주고 음식 하는 것도 많이 도와주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챙겨야 할 일이 훨씬 많다.

거기다 노동조합하면서 신경 쓸 일도 많이 생겼고, 시간도 많이 들게 됐다. 회의도 있고 모임도 있고 교섭도 있고… 일도 똑같이 다 해야 해서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다. 그러니 당연히 집안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체력도 많이 고갈된 것 같다. 식구들이 많이 이해해주지만, 요즘은 내가 미안해지고 있다. 왜일까? 남편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눈치가 보여 불편하다. 아무래도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대한민국의 주부이기 때문인가 보다. ●
 
 
 
필자 소개

공순옥 | 지난해 여름 노동조합을 결성한 도시가스 검침 노동자.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도시가스분회 분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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