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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 제29호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자가 요구하는 개혁은 어떻게 가능할까?

독자적이고 영리한 대응이 필요한 때

  • 박준형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새 정부가 일자리 확대와 고용구조 개선을 중요한 정책방향으로 설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급조된 방문에 이어, 과연 실효성 있는 정규직화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기로 한 ‘일자리위원회’도 이제 겨우 구성을 시작하는 단계다.

이와 함께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부의 노동개악 지침(쉬운 해고, 취업규칙 개정, 성과연봉제 강행)을 폐지하겠다는 입장도 제시했다. 고용노동부 행정해석 변경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 역시 검토하고 있다. 실제 실행까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노동정책 전반을 달리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조합들은 새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을 환영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는 물론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겪으면서, 정부에 대해 섣부른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대선 시기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한국노총만 하더라도 일자리위원회 참여 요청에 대해 위원회 구성과 노동개악 지침 즉각 폐지 등 노동정책 현안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 입장을 확인한 후 참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이보다 더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는 ‘일자리위원회’에 고용뿐 아니라 사회적 대화라는 측면에서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 정권의 노사정 협의가 파행으로 이어진 상황에서, 현재의 노사정위원회를 단순히 복원하는 건 어렵다는 진단이 배경일 것이다. ‘일자리위원회’를 포함해 다양한 수준의 사회적 대화를 전개해 신뢰를 높인 후, 사회적 협의기구를 다시 가동한다는 복안이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아직 형성 중이기는 하지만 지난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과는 분명 다른 접근이다. 그러나 실제 추진 과정에서 보수세력과 언론, 관료들의 반발로 인해 상당한 변화를 겪을 가능성도 많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비슷한 경로를 겪은 바 있다. 대통령이 수차례 공약한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폐지만 하더라도, 보수언론은 “적폐 청산과 무관하다”며 반대에 나섰다. 기획재정부 등 관료들은 부분적으로 도입방식을 손보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노동조합들의 신중한 접근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대응 어때야 할까?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접근에 대해 노동자운동은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앞서 “소득주도성장론의 한계와 노동자운동의 과제(한지원)”가 진단한 것처럼, 문재인 정부의 고용 정책과 경제 정책은 지난 정부에 비해 진일보한 개혁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구조적 제약과 정책 자체의 결함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 어렵다는 우려가 많다. 화려한 슬로건과 달리 실질적으로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고용불안, 빈부격차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정부가 추진한 노동 정책이 ‘반노동’, ‘노동 개악’이란 점에서 이를 폐기하는 것 자체만 해도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그 때문에 정권 초기의 개혁 드라이브가 어느 정도 적폐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까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정권 초기의 개혁 드라이브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문에 집중되어 있다. 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밝혔듯 정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공공부문에서 전향적인 비정규직 정책과 일자리 창출이 대표적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꾸준한 활동이 여론을 형성한 만큼 ‘지금 당장’ 1만 원은 아니라도 두 자리 수의 인상율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중의 지지도 얻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은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 초기에 이를 더욱 밀고 나가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까지 가는 기간을 더 단축하고, 지난 정부의 노동개악 정책을 즉각 폐기하도록 하는 요구는, 정부를 직접 ‘상대로 하는 투쟁’이기보다는 정부를 ‘밀어붙이는 사회적 투쟁’일 것이다.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정부를 견제하면서도 동시에 협력할 수 있는 쟁점들이다.
 
 

노동조합과 협의 생략해선 안돼

이 단계에서 정부는 일방적인 추진이 아니라, 이해당사자인 노동자들과 협의를 거쳐야만 한다. 예를 들어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더라도 회사 측이 당사자들과 대화를 거부하고 일방적인 방안을 만든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없다. ‘쉬운 해고’ 지침을 폐지하더라도 그 대안을 노동조합과 협의해 추진하는 과정이 생략된다면, 심각한 양극화와 저임금·고용불안의 노동 체제는 포장만 바뀐 채 온존할 것이다. 일각에서 이미 그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노동 정책이 산별노조, 산별교섭 등 초기업 노조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추동할 필요도 있다. 정부가 산별노조, 산별교섭의 제도적 인정 등 전향적인 노사관계 정책을 취하도록 하는 것은 노동자운동 스스로도 기업별 이해에 갇히지 않고, ‘무늬만 산별’을 극복해가는데 의미있는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기아차지부의 1사1노조 분할과 같은 사태를 지양하기 위한 노조 내부의 개혁, 기업과 고용형태를 넘은 공동교섭, 공동투쟁 강화가 병행되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노동자운동의 독자성 지켜야

아직 정권 초기다. 현재로서는 새 정부가 ‘노동조합과의 대화’를 선호하고,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평할 수 없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에 참여하거나 등용이 거론되는 일부 인사들은 기존 노조를 양극화의 책임이 있는 ‘기득권 세력’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이는 사실상 홍준표의 ‘강성귀족노조’론을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조 혹은 적어도 상급조직을 우회하는 가운데 직접 현장 노동자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경향도 상당하다.

일각에선 정부와의 대화가 ‘사회적 합의체제’ 형성으로 단계적으로 이어질 경우, 노동자운동이 독자성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역사적으로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자에게 양보를 강요해온 사실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정, 노-사, 노-사-정 등 협의는 정세에 따른 대응 방식에 불과했다. 협의 방식이나 논의 기구가 문제라기보다는,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 등 쟁점에서 노동조합이 얼마나 자신의 기반인 노동자계급에 충실한 입장을 견지하고 독자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즉 실제 내용이 문제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를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 과감한 개혁을 끝까지 계속 밀고 갈 수 있다면, 어쩌면 의도대로 ‘사회적 합의체제’가 실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상황이 녹록하진 않을 것이다.

어느 시점에 문재인 정부 정책의 한계가 드러나면,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이 정권을 상대로 투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정세의 변화에 따라 노동자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독자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미래에 예상되는 조건 때문에 ‘지금 당장’ 추진해야할 개혁 정책까지 견제할 필요는 없다. 개혁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정권 초기에 최대한 노동자의 요구를 현실로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투쟁을 ‘사회적 총파업’으로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정권 초반의 개혁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더 많은 사회운동과 대안이 필요하다

촛불 이후의 정권 교체인만큼 새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운동과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정서를 이해하고 반영하면서도 정부와는 구별되는 자신의 독자성을 유지하며 유연하고 영리하게 대응해야 한다.

민주노총 등 노동자운동 지도부가 개별 사안에만 몰두하기보다 장기적인 시야를 갖고 5년, 10년 후를 준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시급히 필요한 것은 지난 촛불운동에서 형성된 사회운동의 자산을 강화하고, 무엇보다 노동조합을 더 조직하는 일이다. 노동자가 스스로의 목소리로 요구해야 저임금·장시간 노동,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가 가능하다.

우선 제도개혁의 가장 앞자리에 노조 할 권리 확대, 산별교섭, 산별노조 등 초기업단위 교섭과 초기업노조 활성화가 있어야한다. 이는 정부에 대한 요구 과제이기도 하지만, 노조 스스로 혁신해야 할 자기 과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적 기반으로서 노동조합이 더욱 확대되고 강화되지 않으면 촛불운동의 성과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부분적인 개혁 과제조차 금세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으로는 집권 초반 추진되는 개혁 정책 자체의 완성도 불가능하다. 곧 엔진에 동력이 멈추고 기름이 떨어질 것이다. 촛불 투쟁이 요구한 사회 개혁의 완성은 정부가 아니라, 그 촛불을 만들어온 노동자·시민의 사회운동이 이뤄낼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더 많은 사회운동’이 필요하다. ●
 
필자 소개

박준형 | 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장, 현재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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