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동보다
  • 2017/10 제33호

감정노동자 권리 보호, 기업의 책임을 묻는다

방문 설치·수리기사 인권을 위한 법·제도적 개선

  • 박장준

소모하다

감정노동은 업무에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이 실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특정 감정을 표현하도록 요구하는 노동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 김양건은 감정노동에 대해 “자기 기분을 다스려 겉으로 드러내는 감정관리가 전체 직무의 40퍼센트 넘게 차지하는 노동 유형”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감정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31~41퍼센트인 560만~74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대표적인 직종으로는 항공기 객실 승무원, 홍보 도우미 및 판촉원, 통신서비스 및 이동 통신기 판매원, 장례상담원 및 장례지도사, 아나운서 및 리포터, 음식 서비스 관련 관리자, 검표원, 패스트푸드업 종사자, 고객상담원, 미용사 등이 있다.

그간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은 ‘감정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며 감정노동자들을 조직화해왔다. 이를 둘러싼 담론과 법제도 개선이 본격화한 것은 고객의 ‘갑질’과 사용자의 불합리한 지시로 감정노동자들이 겪은 인격 모독과 업무 스트레스를 경험하면서다. 즉, 고객이자 노동자인 시민들이 보기에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감정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시발점이 됐다.

희망연대노조 소속 에스케이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와 엘지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는 2015년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권리로서 작업중지권’을 따냈다.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딜라이브의 고객센터 ‘텔레웍스’ 노사는 올해 임금협약 교섭을 통해 ‘감정 수당’을 신설했다. 엘지유플러스고객센터를 위탁 운영 중인 엘비휴넷은 2017년 올해 비극적인 사건 이후 ‘전화를 끊을 권리’를 포함한 대책을 내놨다.
 
단체협약 [업무 스트레스 완화]
① 조합원은 업무중 고객의 폭언 및 욕설 또는 성희롱으로 인격권이 훼손되거나, 고객이 업무외 부당한 요구를 지속하는 경우 관리자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해당 업무를 중단할 수 있다.
② 회사는 전항의 업무 중단을 이유로 조합원을 부당하게 처우하지 않는다.
 

보호하다

법제도 개선 움직임도 활발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5월 국회에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 정의 보완과 감정노동자 보호법안 제정을 주문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법안 제정을 공약했는데, 그 골자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현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표 발의한 ‘감정노동자 보호법안’ 취지와 같다. 감정노동에 대한 사용자 책임과 정부의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하고, 고객의 부당한 요구와 부적절한 발언을 규제하자는 것이다.
 
제4조(국가 및 사용자의 책무)
① 국가는 감정노동자의 건전한 근로환경 조성과 감정노동자를 인격주체로서 배려하는 시민의식 확산을 위해 필요한 시책 및 지원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② 사용자는 감정노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예방을 위하여 감정노동자를 위한 복지시설을 마련하는 등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제5조(사용자 및 고객의 금지행위) 사용자 및 고객은 감정노동자에게 다음의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감정노동자에 대한 폭행, 폭언 및 그 밖에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되지 않는 무리한 요구
2.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행위
3. 감정노동자의 업무를 위계(危計) 또는 위력(威力)으로 방해하는 행위 등

제6조(사용자의 보호 조치 의무) 
① 사용자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감정노동자가 요청하는 경우 해당 고객으로부터의 분리 및 근무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등의 조치
2. 감정노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건강장해의 예방 및 치료
3. 그 밖에 감정노동자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
② 감정노동자는 사용자에 대하여 제1항 각 호의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③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감정노동자의 요구를 이유로 감정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작업중지권 관련 제도 정비도 추진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핵심은 작업중지권이다. 소 의원은 “일부 산업현장에서는 생산성·효율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근로자의 생명·안전·보건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위반하는 환경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근로자는 그 작업을 거부하거나 작업의 중단을 요청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하면서 작업중지와 재개에 있어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강화하는 개정안을 제안했다.
 
제26조(작업중지 등)
②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이 경우 근로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바로 위 상급자에게 알려야 한다.
③ 근로자는 사업주가 노동관계법령, 취업규칙, 단체협약, 안전지침 등을 위반하여 근로자의 생명 또는 건강에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작업을 지시하는 경우에 이를 거부할 수 있다.
④ 근로자가 제2항 및 제3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거나 작업을 거부한 경우 사업주는 작업현장 점검, 안전·보건상 조치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그 결과를 해당 근로자 또는 근로자 대표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이 경우 근로자는 사업주의 조치로 안전·보건이 확보되지 아니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지 아니할 수 있다.
⑤ 사업주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거나 대피한 근로자 또는 제3항에 따라 작업을 거부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임금 삭감,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⑥ 제2항에 따른 작업중지, 제3항에 따른 작업거부 및 제4항 후단에 따른 작업 복귀 거부와 관련하여 근로자와 사업주 간에 이견(異見)이 있는 경우 해당 근로자 또는 사업주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중재를 요청할 수 있다.
⑦ 근로자의 작업중지 및 작업거절의 요건, 절차, 방법 등에 관하여 사업주와 근로자가 이 법에서 정하는 바와 다르게 정한 약정이 근로자에게 불리한 것은 그 부분에 한하여 무효로 한다.
 
 

가능하다

감정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발명해야 할 때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다. 바로 자본이다. 자본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노동자를 지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정반대다. 감정노동자 관련 제도와 프로그램을 ‘비용’으로 인식하고, 대기업조차 ‘고객은 왕’이라는 정신교육을 진행한다.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을 뒤집으면 “직원은 머슴이다”라는 말이 된다. 최근 케이티세종지사는 기술서비스노동자를 ‘머슴’으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전단지를 배포했다. “가입하신 고객님 댁으로 머슴을 빌려드립니다. 인터넷 관련 전기선 정리, 몰딩 작업을 무료로 해드립니다.” 이 촌극에는 ‘자본이 노동자를 대하는 만큼 고객은 노동자를 대한다’는 교훈이 숨어있다. 

산업안전보건교육을 내실 있게 진행하는 현장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다. 일례로 케이티가 기술서비스노동자 피살사건 이후 내놓은 재발방지대책은 고작 ‘위험고객 파악 후 관리자 동행’ 뿐이다. 교육도 대책도 기업문화도 평가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기술서비스 업종만 보더라도 자본은 설치, 수리, 상담 등 상시지속 업무인 감정노동 대부분을 수백 개 하청업체로 외주화하고 실적 경쟁을 강제한다. 감정노동자들을 마치 특수고용노동자처럼 부리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건당 실적급을 지급하고, 해지방어율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영업목표의 100퍼센트가 아닌 99퍼센트를 달성하면 S도 A도 B도 아닌 C등급으로 평가하고, 고객의 불만이 접수되면 반성문을 써내라 지시하는 등, 노동자들을 일회용품처럼 소모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감정노동 문제는 결국 자본이 바뀌어야 해결할 수 있다. 고객에게 회사의 감정노동 정책과 직원의 권리를 알려야 할 주체, 노동조합과 산업안전보건 관련 규정을 강화하고 관리·감독해야 할 주체, 내부감시자가 없는 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는 주체가 바로 자본이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자본 스스로 강화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이자 끝이라는 이야기다. 노동자·고객·국회·언론은 대안을 내놨다. 이제 기업이 응답할 차례다. ●
 
필자 소개

박장준 | 희망연대노동조합에서 정책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1시간 동안 신문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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