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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 2016/08 제19호

작업중지권,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

  •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2013년 추석, 이화여대 식당에서 환풍기가 고장난 상태에서 식당 노동자들이 일을 시작했다가 결국 한 명이 근무 중 쓰러진 일이 있었다. 어지럼증과 가슴이 울렁거리는 증상을 느낀 노동자들이, 돌아가면서 바람을 쐬고 다시 업무에 복귀하길 반복하며 일을 하는 동안, 식당과 학교 측은 환풍기 고장을 방치했다. 
결국 3일 동안 이렇게 일하던 노동자 한 명이 쓰러져 응급실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진단을 받았다. 소식을 전해들은 노동조합 활동가인 노무사가 ‘왜 작업을 중지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조합원들은 오히려 ‘일을 중단해도 되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작업중지권이 꼭 필요한 이유 《일터 118호》)
 

위험하면 멈출 수 있다는 상상

‘작업중지권’이라면 큰 제조업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를 멈추는 것이 먼저 떠오르지만, 위험하면 일을 멈출 권리는 모든 노동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절실하고도 소박한 권리다. 그러나 이런 작업중지권, 위험작업 거부권을 사용하지 못해 목숨을 잃는 노동자 소식은 여전히 들려온다.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 사망 사고를 보면서, 위험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안전매뉴얼에 있는 대로 두 명이 짝을 지어 출동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못 나간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탄식했다. 

둘이 일해야 하는 위험 업무를 혼자 하다 사망한 사고는 지난해에도 있었고, 그에 따라 2인 1조로 일한다는 매뉴얼을 확인하고, 메트로와 서울시가 재발 방지를 약속한 터였다. 승강장 바깥쪽 센서를 고치는 업무를 혼자 하는 것은 위험하니 2명이 일할 수 있을 때 하겠다고 말하고 대기할 수 있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까.

물론 현실은 만만치 않다. 계약직 노동자 혼자 못 한다고 했으면 잘렸을지도 모르고, 2명이 일할 수 있을 때까지 대기하겠다고 했다가도 관리자의 눈총을 받고 괴롭힘의 대상이 됐을지 모른다. 혹은 해고를 당하지 않더라도 도급업체 계약이 해지되는 등의 불리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법과 제도, 사회적 분위기는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일을 멈출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한다.
 

불안정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노동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작업중지권을 사용하는 게 쉽지 않다. 일을 중단하면 필연적으로 생산에 손실을 입히기 때문에, 사측은 노동자가 스스로 위험을 판단해서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권리를 막고 있다.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고 규모가 큰 완성차 사업장에서조차 작업을 중지하면, 어떤 위험 때문에 작업을 중지했는지 묻기보다 손실이 얼마인지부터 따진다. ‘7일 파업으로 XX억원 손실’식의 매스미디어 보도와 같은 논리다. 특히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 노조가 없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자들, 일터를 자주 옮겨야 하는 불안정 노동자일수록 힘이 없다.
 
“얼마 전 현대제철 하청업체에서 감전사한 노동자 사례를 상담했습니다. 작업시간도 아닌 시간에 하청에 일을 시켜 제대로 된 절연 장비나 절연복도 없이 일하다 감전된 경우였습니다. 이런 때 작업중지 개념이 들어설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예방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일을 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
 
노동자나 노동조합의 작업중지권이 그나마 관행으로 인정되던 조선소에서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작업거부가 어렵다. 심지어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노동조합의 작업 중지에 불만을 표하는 사태마저 벌어지게 된다.
 
“환기 문제로 3일을 세웠는데, 우리 비정규직 동지들 출근을 안 시킵니다. 그럼 당장 임금의 손실이 오잖아요. 그래서 이제 3일 만에 풀긴 풀었는데 그런 부분이 미안하죠. 당연히 원청에서 안전보건상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줘야 하는데 하도급에 맡기고 하도급은 또 물량에 맡기고 그런 구조죠. 그래서 좀 안타까운 거는 있습니다.” (조선소 정규직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권리보장도 못하는 법

지금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작업중지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 노동조합도 조직되어 있지 않고 상대적으로 집단적·조직적 힘이 약한 불안정 노동자들일수록 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다는 측면에서, 노동자들이 기댈 수 있는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조건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서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 보건 예방조치와 이를 구체적으로 정해둔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위반한 모든 상황에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권리를 보장해야, 작업중지권이 실제 예방 활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 위험이 있어 대피한 것을 인정하더라도 작업중지 시간이 과도하다며 업무방해나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캐나다 노동법에서는 현 상황이 작업을 중단할 만큼 위험한지에 대해 노동자와 사업주 사이에 이견이 있을 경우, 3번까지 중재 절차를 규정해두고, 이 절차가 진행 중인 동안에는 ‘사업주가 보기에 위험하지 않다 하더라도’ 노동자가 작업중지를 지속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다. 우리도 작업을 중지했던 노동자가 복귀할 수 있는 기준을 명시하는 게 필요하다.

사측의 고소·고발을 막기 위해 ‘작업중지를 판단한 근로자의 의도가 악의적이지 않다면’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지 않도록 하고,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행한 자에 대해 벌칙을 부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드라마 <미래의 선택>의 주인공 나미래가 대기업 콜센터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는 모습
 

모든 노동자에게 확대할 수 있을까

만약 지금의 제조업·재래형 사고 중심의 작업중지권 논의와 실천이 확대된다면 어떨까? ‘급박한 위험’이란 개념은 서비스업에서 제3자인 고객에 의한 인격침해, 사업목적에 맞지 않는 작업강제로 인한 노동자 인격권 침해 상황에 작업중지권을 적용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제조업 내에서도, 경미하지만 지속적인 안전과 보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작업을 거부하기가 어렵다.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 투쟁의 성과로 2014년 2월 콜센터 상담사들의 인권실태조사 이후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가 도입됐다. 성희롱 등의 악성 민원에 대해 상담사들이 안내 후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하고, 바로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감정노동 종사자에 대한 보호라는 측면이 부각되긴 했지만, 콜센터 노동자의 통화거절권은 작업중지권·거부권의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이를 진상고객 때문에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판매 노동자가 잠시 카운터를 떠날 권리, 교통 법규를 위반하고 곡예운전을 하면서까지 ‘20분 배달’을 하지는 않을 권리 등으로 확대해보는 건 어떨까?

중국의 안전생산법 51조는 “종사자는 규칙에 어긋나는 지휘와 위험작업을 강제적으로 명령하는 경우에는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규칙에 어긋나는 지휘와 강제적인 작업을 거부할 권리를 주장한다면 작업거부의 범위는 훨씬 넓어진다. 이런 사례에는 직장 내 성희롱, 집단적 괴롭힘, 인신모욕적 폭언, 프라이버시 침해,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수집, 양심에 반하는 노동의 강요, 건강 및 가정생활의 양립에 반하는 장시간노동의 강요 등 노동자의 인격권을 위협하는 다양한 상황이 포함될 것이다.
 

노동자 모두의 권리로

작업중지권이 노동자 개인의 용기에 달린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작업중지권만 있으면 되느냐는 항의도 있다. ‘작업중지’란 말은 부담스러우니 ‘위험작업 거부’나 ‘회피’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어떠냐는 제기도 있었다.

그러나 회피든 거부든, 혹은 중지든, 작업중지권 행사를 개인의 힘만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작업중지권은 노동자가 자신의 일터에서의 위험을 알 권리,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참여할 권리와 따로 떼어 말할 수 없다. 노조에 가입해 투쟁해야 보다 원활하게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아니, 우리의 싸움과 조직과 단결의 과정이 이런 권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곧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함께, 스스로 조직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위험작업에 대한 거부·중지권은 다양한 현장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작업중지권이 꿈같은 얘기라고 했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도 위험작업 중지를 위한 실천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다.
 
“우리 조합원 한 명이 계속 1인 시위를 해서, 족장 야간작업 하자는 건 무산시켰어요. 원래 족장 작업은 위험하니까 야간작업은 안 했는데, 원청 주도로 이걸 시도했거든요. 실제로 며칠동안 야간작업을 시켰죠. 원청 입장에선 밤에 족장 깔아 놓으면, 낮에 바로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원하는 거거든요. 이걸 노동자 한 명이 나서서 싸워서 막아낸거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이런 실천을 조직하고, 그 사례를 널리 알리고, 위험작업 거부를 둘러싼 투쟁이나 노사 간의 대결이 벌어졌을 때 적극적인 연대를 꾸리는 일이 필요하다. 작업중지권은 그런 과정을 통해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모두의 권리로 구성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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