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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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 제32호

크런치 모드에 죽어간 게임개발자들

“우리는 넷마블의 노예였다”

  • 이준혁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초, 한 게임개발자가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게임회사에서 일하던 시절을 되뇌며 증언을 시작했다. ‘일상이 된 야근, 이러다 한 명 죽겠다 싶었다.’ 그가 낭독한 글의 제목이다. 그가 일했던 곳은 다름 아닌 청년의 꿈을 팔아먹은 기업, 넷마블이었다.
 
 

증언 자리에 서기까지

지난 한 해 한 회사에서만 20~30대 젊은 노동자 3명이 돌연사했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넷마블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며 잡아뗐다. 고인의 사망과 업무의 관계가 없다며 말이다. 심지어 게임 전문 언론들에 사망 사건을 다룬 기사를 내릴 것을 종용하기까지 했다. 

넷마블이 있는 구로디지털단지에서 활동하는 ‘무료노동신고센터’는 2017년 초, 게임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돌렸다. 무료노동신고센터는 서울남부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미래’와 게임개발자연대, IT노조 등이 결합해 만든 일종의 연대 조직이다. 설문조사에는 무려 500여 개발자들이 응했다.

밝혀진 실태는 말 그대로 “사람을 갈아 게임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번 출근하면 36시간 이상 회사에 머물렀다는 응답만 30퍼센트를 넘었다. 근로기준법 상 최장 노동시간인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크런치 모드’(Crunch Mode,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야근과 특근을 반복하는 것)에 돌입하면 꼬박 2박 3일, 3박 4일 동안 일했다.

구체적인 노동조건이 폭로되자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에 나섰다. 넷마블은 야근으로 인한 체불임금 44억 원도 돌려주겠다고 했다. 원래 이 회사에 ‘연장근로수당’은 없었다. 회사는 연봉협상 자리에서 모든 수당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넷마블 노동자들이 새벽까지 근무해서 추가로 받을 수 있는 돈은 교통비 명목으로 지급되는 1만 5천 원 뿐이었다. 넷마블은 지금까지의 관행을 반성하겠다며 44억 원을 내놓고 큰 자랑거리인 마냥 보도자료를 뿌렸다.

문제는 이 44억 원이 2016년 1년 치 연장근로수당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 상 임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기한은 최대 3년인데 말이다. 게다가 2016년 이전까지 넷마블에서 일하다 퇴사한 이들에게는 출퇴근 기록도, 임금명세서도 제공하지 않았다. 사회의 눈초리가 심해지니, 마지못해 내놓는다는 느낌이었다.

넷마블의 실태를 고발하고 더 압박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구체적인 불만지점을 포착해야 했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넷마블 전·현직 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2014~2015년이 가장 괴로웠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이에 ‘1년이 아니라 3년 치 체불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를 걸었다. 체불임금을 돌려받기 위한 진정인도 모집한다고 선전했다. 다행히 조금씩 반응이 나왔다. 넷마블 회사 코앞에서 뿌린 유인물에 대한 반응도 좋았고, 에스엔에스(SNS) 상에서도 폭넓게 공유됐다.
 

넷마블 다니셨어요? 야근은 문제없겠네요?

“3000억 매출을 1조 매출로 신장시킨 게 내가 재직했던, 2014~2015년도 일이다. 하지만 우리 팀에 돌아온 건 권고사직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고 하니까, 인사팀장이 자기는 밤새 일하라고 시킨 적 없다고 했다.”

20여 명의 체불임금 진정인이 모였다. 진정인들은 초과근무를 견뎌내며 일했지만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2011년만 해도 넷마블의 매출은 2000억 원 남짓이었다. 하지만 2015년에 넷마블은 매출액 1조 원을 달성하게 된다. 2013~2014년 게임시장이 모바일 게임 위주로 재편되면서 넷마블은 모바일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융단폭격을 하듯이 많은 모바일 게임을 출시했다. 그 어마어마한 수의 게임만큼 개발자들은 과로에 시달렸다. 덕분에 넷마블 사업주와 경영진들은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진정인들은 게임이 성공할 경우 개발자들에게 인센티브가 지급된다는 말만 떠돌았다고 증언한다. 인센티브의 구체적인 지급 기준과 액수 등은 어디에도 공시되어있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개발팀이 성공해서 인센티브를 받았다고 해도 매출과 인센티브 액수는 기업비밀이라며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이 기능 만드는데 며칠 걸리는지 개발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그러나 넷마블은 일정을 묻지도 않고,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식으로 일정을 정해 알려준다. 그 일정에 맞추다보니 100시간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잔채 일한 거다.”

“넷마블 본사는 야근 많이 안 해요. 개발사가 하지.”
 
이들은 넷마블 안의 자회사나 계약을 체결한 개발사들이 경쟁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살인적인 노동조건이 강요될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한다. 게임 출시 여부 자체가 퍼블리셔인 넷마블에 달려있었다. 아무리 야근을 해도 게임이 출시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넷마블은 이러한 지위를 이용해 개발 일정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출시가 다가올수록 수정 요구가 많아졌고, 개발사 입장에서는 거부할 수조차 없었다. 개발자 개인에게도 게임 출시 여부가 커리어에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야근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넷마블 퇴사한 사람은 면접 때 이런 질문 받는다. ‘넷마블 다니셨어요? 야근은 문제없겠네요?’ 우린 소모품인데 넷마블에서 버텼다면 내구성을 인정받는 거다.”

“파혼하는 사례들 넷마블에서 많이 봤다. 가족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 그런 거 없다.”
 
노동자들은 결국 극심한 노동강도를 견디다 못해 퇴사했지만 돌아온 것은 악화된 건강과 붕괴된 일상이었다. 한 진정인은 크런치 모드 중에는 모든 팀원들의 건강이 악화되어 며칠 만에 감기가 유행병처럼 돌았다고 한다. 체중이 급격하게 불거나 준 사례도 있다. 한 진정인은 석달 만에 몸무게 8kg가 증가했으며, 또 다른 진정인은 넷마블 근무 당시 20kg나 살이 빠진 적이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게임업계가 바뀌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얼마 전 작년 11월 유명을 달리한 29세 노동자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으로 인정했다. 이를 계기로 진정인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들은 “체불임금이 100원이라 해도 진정할 것”이라며, “그렇게 해서 게임업계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넷마블처럼 일을 시키는 것이 다른 회사로 절대 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여전히 “게임을 좋아해서 이 일을 더 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무료노동신고센터는 넷마블에서 근무했던 당사자들과 함께 증언대회와 더불어 기자회견도 개최했다. 당사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체불임금 지급 방안을 합의하고, 과로사 재발 방지와 공짜야근 근절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3자 협의기구도 제안했다.

앞으로 추가적인 진정인 모집도 계속될 예정이다. 혹여나 이 글을 보고 있는 넷마블 전·현직 노동자들이 있다면, ‘무료노동신고센터’로 주저없이 연락해주었으면 한다. 그저 상담만 해도 좋고 재직기록, 근로계약서, 출퇴근기록, 임금-교통비 지급기록 등 자료를 보내주어도 좋다. 더 많은 증언과 자료가 모일수록 넷마블 사측을 압박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
 
필자 소개

이준혁 | 게임, 만화, 술을 좋아한다.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미래>에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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