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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 제29호

문재인 정부 고위공직자 인사 논란, 어떻게 봐야 하나

‘위장전입’으로 드러난 엘리트들의 일반화된 도덕불감증

  • 홍명교 편집실장
지난 3주 간 주류 정치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자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이낙연 총리는 3주간의 뜨거운 논란 끝에 가까스로 국무총리에 인준되었다. 최순실 게이트 직전까지 박정희 기념사업회 부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교사였던 배우자가 서울 강남 쪽 학교에 재직하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던 사실, 아들 병역 면제 과정과 전세자금 관련 증여세 탈루 의혹 등이 제기됐다. (청문회 과정에서 이낙연 총리는 위장전입 사실은 인정했고, 아들의 병역의혹은 부인했다.)
 
새 정부 재벌개혁의 상징처럼 등장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 역시 인준 과정이 순탄치 않다. 마찬가지로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고, 1999년 아파트 구입시 시세 1억8000만원보다 낮은 5000만원에 신고를 해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으로선 치명적 의혹이지만, 2006년 부동산 실거래 신고가 의무화되기 이전이라 불법은 아니다. 이외 자질구레한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대체로 결격일 정도의 의혹이라 말하긴 어렵다. 오히려 그의 재벌개혁론을 둘러싼 논쟁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우려된다.
 
 
최초의 여성 외교 수장이자 UN 업무에 대한 호평으로 주목받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역시 인준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는 2000년 한국 거주 당시 큰딸을 이화여고에 전학시키기 위해 이화여고 전 교장의 집에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친척집에 전입한 것이었다는 기존의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드러낸 것이었다. 또한 두 딸이 내지 않던 증여세를 후보자 지명 후 뒤늦게 납부한 점, 큰딸이 강 후보자의 UN 부하 직원으로부터 투자받아 주류 수입·도소매 회사를 차린 사실 등 여러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 고위 공직자들의 ‘위장전입’이나 ‘탈세’ 문제는 과거 여러 정권들에서도 여러 차례 문제시 됐었다. 그 때문에 지배 엘리트들 사이에서 위장전입 안 한 인사를 찾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니느냐는 자조 섞인 얘기가 들린다. 나아가, “부동산 투기 외에 자녀 교육 목적의 위장전입은 정상을 참작하자”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 초래한 ‘기준’

사실 이런 곤란은 문재인 정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고위 공직자 배제의 5대 원칙으로 ‘위장전입’을 지목한 바 있다. 부패로 얼룩졌던 이명박-박근혜 정권과는 다른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스스로 밝혔던 셈인데, 정작 야심차게 임명한 후보자들이 죄다 이 기준에 걸리고만 것이다.
 
논란이 지속되자 대통령직속 국정기획자문위원회(위원장 김진표)는 ‘5대 원칙’의 후퇴를 선언했다. 이달 말까지 고위공직자 임용 기준안과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따라서 야당들과 언론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민주당이 지금에 와서 비판들에 대해 “정략”이라느니, “국민 눈높이에서 재설정”이라느니 떠드는 것은 별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을 고위공직자들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으로 전락하는 순간, 지배 엘리트들로서는 면이 서지 않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가운데에도 부정부패를 위한 위장전입과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옹호론은 존재한다. 이에 대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도 동일한 기준으로 비판해오던 일을 갑자기 질적 차이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게 가당키나 하느냐’는 반론도 있고, 반대로 ‘어차피 고교 평준화 정책일랑 무너졌으니 거리를 기준으로 학교가 배정되는 현존 시스템에서 위장전입은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평준화 정책이 무용하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으나, 그렇다고 그런 ‘사형선고’가 대중의 교육권‧지식권의 확장으로 이어질리 만무하다. 평준화의 토대가 무너졌다고 해서 서열화를 획책할 순 없는 노릇이다.
 
사실 위장전입 문제는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을 관통하고 있다. 위장전입이 상당수 국민들에게 생소하고 변칙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엘리트 계층의 선택지와 윤리적 기준이 대중들의 것과는 꽤나 다르다는 점 때문일 게다. 근무지나 자녀 교육에 얽힌 것이라 하더라도 그만큼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주소를 옮길 금전적 여력이나 인맥 등 사회적 자본이 없는 대다수 사람들에겐 위장전입일랑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강경화 후보자가 딸을 위장전입시킨 주소지는 이화여고 전 교장의 전셋집이었다. 교육이 계급재생산 혹은 계층 상승의 거의 유일한 사다리라고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이는 상징적인 박탈감을 안겨준다. 그 때문에 지배 엘리트의 위장전입은 ‘금수저’만을 위한 한국 사회의 상징적 행위로 더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포부를 무색케 한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고심 끝에 이 기준을 포기하고 후퇴하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행히도 정권 초기 높은 국정 지지를 받고 있는 ‘허니문’ 기간에 있는 청와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이지만, 이후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맹점이 되고 있다. 첫째, 재벌들은 김상조 후보자를 둘러싼 몇 가지 논란을 들먹이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책에 더 강하게 저항할 것이다. 둘째, 자유한국당 등 오랜 시간 한국 사회를 병폐로 몰아온 보수세력은 기세등등하게 자유주의 세력에게 비아냥거리며 조금 더 넓은 차원에서 ‘어차피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식의 논리를 유포할 것이다. 물론 두 세력의 부패 정도에는 상대적인 차이가 있지만, 대중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과 허무주의는 보다 빠르게 촉발될 위험 역시 존재한다. 
 
 

‘누가 덜 부패했나’로 우위 겨룰 수 있나?

우리가 공히 확인하고 있듯, 지배 엘리트들은 수구‧보수건, 아니면 자유주의 엘리트들이건 대중들의 윤리적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박근혜 정권 말기 초유의 사태들을 보며 놀란 것은 ‘저들이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 ‘이 나라 지배계급에게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구나’하는 점이었다. 나아가 정권교체를 이룬 지금 공히 확인하고 있듯, 한국의 엘리트들에게 위장전입이나 탈세는 거의 상수라고 보는 게 맞을 성 싶다. 교육 제도를 통한 계급재생산의 틀은 공고화됐고, 위장전입 등 탈법 행위는 엘리트 계층 내에서 훨씬 일반화됐다. 여전히 교육만이 계층이동 사다리 역할을 한다는 분석(한국경제연구원, 2016)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교육은 계층이동 사다리가 아니’라는 인식도 커졌다. 한 여론조사 기관이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19~29세의 ‘계층 역전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19.3퍼센트로, 전 연령에서 가장 낮았다. 한국인 대다수는 본인의 인맥과 학력보다는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신분이 ‘사회적 성공’을 위해 훨씬 중요한 요소라고 여긴다. 개천의 용은 보이지 않고, 금수저는 금수저끼리, 흙수저들은 흙수저들끼리 경쟁하는 악무한 그 자체인 것이다.
 
박근혜 정권 적폐의 주역들이 야당 정치인이 되어 고위공직자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등 문제를 남일 얘기하듯 비난하는 것은 꽤나 볼썽사나운 일이다. 그들이야말로 썩은 정치인의 전형임은 여전히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부패했다는 것으로 폭 넓은 설득력을 갖추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정책과 대안이 아닌 부패 이슈에 의존할 때 대중의 정치 환멸을 심화시키는 효과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정의당 일부 정치인들의 한심한 대응

헌데 진보정당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지명한 인사들을 옹호하는 것에 포지셔닝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의당의 국회의원이자 대변인 추혜선은 문재인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장하성 교수를 임명한 것에 대해 과거 주주자본주의론에 입각해 금융화 개혁을 획책한 그의 행보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호응’하는 논평을 낸 바 있고, 노회찬 원내대표는 연일 TV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식의 말을 보태는 일에 ‘애쓰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행보는 진보정당이 서야할 위치를 혼란스럽게 하며, 참여정부 시기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에 대한 민중운동의 저항과 자유주의자들 내부의 반성, 진보정당 자신의 비판들마저 무색케 한다. 심지어 이는 지난 대선 시기 정의당 자신이 받은 대중의 지지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처이기도 하다.
 
 
덧붙여, 우리는 지배 엘리트의 도덕성만으로 그 정부의 개혁성과 민주성을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 한국 사회 변혁의 진정한 대안과 실력을 갖춰나가기 위해서는 여당인 민주당과 보수야당들 간의 ‘누가 덜 썩었는가’를 둘러싼 이전투구에 휩싸이거나 말을 보태는 것에 치중해선 안 된다. 지배계급에 대한 도덕주의적 비판을 상회하는 보다 냉철한 분석과 비판, 대안 제시력과 전망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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