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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 제28호

2005년 12월 비정규직법 저지 총파업의 기억

  • 이진숙
지난 4월 13일 대통령 후보 TV토론회 직후,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가 민주당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다. 심상정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비판과 토론을 제기했고 이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빗발친 것이다. 

심 후보의 질문은 사드배치, 국가보안법 폐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반노동 정책, 복지공약 후퇴에 대한 것이었다. 심상정 후보는 김대중 정부가 정리해고제, 파견제를 도입하고, 노무현 정부가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제·개정하여 현재의 지옥 같은 노동현실을 만드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이를 극복할 구체적인 대안을 문재인 후보에게 질문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민주노총의 투쟁은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도 격렬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하며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제·개정했던 때는 민주노총 역사상 손에 꼽을 만큼 집중적인 총파업이 벌어진 시기다. 비정규직법 저지 투쟁은 2004년 말부터 2006년 말까지 이어졌는데, 12차례에 달하는 총파업과 상시적인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비정규직 보호입법을 쟁취하지 못하면…”

민주노총이 ‘장외투쟁’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며 원내에 진입함에 따라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공조하여 ‘비정규노동자 보호와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입법화하기 위한 국회 투쟁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때는 내가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아마 당시의 그 많은 투쟁에 모두 참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록을 뒤져봤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의 하에 국회환경노동위원회 논의가 본격화되던 즈음인 2005년 12월 초에 집중적으로 몇 차례 진행된 총파업 중 하나. 국회 앞에서 진행된 총파업 집회에 민주노총 지도부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몇 명이 단상에 올랐다. 

10명의 국회의원 중 한명이었던 단병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대표로 마이크를 잡고 “민주노총 조합원이 파견한 노동자 국회의원으로서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법을 막고 비정규직 보호입법을 쟁취하지 못하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결의로 국회로 들어가 싸우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총파업 집회는 참가자들의 분노는 높았지만 참가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2005년은 민주노총 내부의 혼란이 컸다. 연초 대의원대회에서는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논쟁 끝에 급기야 폭력 사태가 벌여졌고, 10월에는 강승규 부위원장 비리 사건으로 이수호 집행부가 사퇴했는데 그 과정에서 조직 내 갈등이 깊어졌다. 

이런 조건에서 열린 총파업 집회에서 국회의원직을 걸고 싸우겠다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을 보며 조합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이 보호입법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조합원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10명이라는 숫자 때문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집권 첫해인 2003년은 이른바 ‘열사정국’이었고 노동자들의 대량 구속, 파업현장에 대한 빈번한 무력진압과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 등을 경험했던 터였다. 결국 비정규직 법안은 2006년 2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심사소위를 거치치도 않고 위원장 직권상정으로 환노위를 통과했고, 그해 11월 30일에는 의장 직권상정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국회의장은 열린우리당 임채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역할은 주로 농성과 점거였고, 그러다 사지가 들린 채 끌려나오기도 했다. 
 

 
“노동자와 시민의 삶은 나아졌을까” 

연인원 1700만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가 대통령을 탄핵시켰지만 노동자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는 확정적이지 않다. 촛불의 최종 목표가 마치 정권교체였던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대선이 치러지고 있다. 민주노총 창립 이후 20년 동안 10년은 새누리당 계보의 보수정부에 맞서 싸웠고, 10년은 민주당 계보의 자유주의 정부에 맞서 싸웠다. 

노동운동, 노동자의 입장에서 양자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다른 영역에서는 차이가 아주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년이란 시간, 한국사회 전체의 변화를 놓고 보면 어떤가. 과연 그 사이 노동자와 시민의 삶이 나아졌고, 우리는 더 민주적인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일까.  

노무현 정부가 노동자의 삶을 벼랑으로 밀어내려는 악의적인 의도로 비정규직법안을 완강히 통과시켰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관점과 노선에서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그 방법이 최선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노동자운동과는 가는 길이 다른 정치집단이다. 물론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별 국가의 정책적 선택지가 많지 않다. 더욱이 지금은 장기 저성장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따라서 정당정치, 정치가의 의지만으로 정책적 변화를 만들기에는 제약조건이 크다. 남미, 유럽 등의 급진좌파의 집권 경험이 이를 말해 준다. 
 
대통령 임기 5년이 아닌, 보다 긴 시간을 내다보며 노동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길이 무엇일지 숙고해야 하는 촛불 대선이다. 

2005년 12월의 총파업 집회에 모인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에게 거는 기대가 아무 것도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금배지를 내던지고 배수진을 치며 국회 안에서 싸우는 우리 편 국회의원들을 기대했을 수도, 지금은 아니어도 다음 세대엔 뭔가 다른 정치,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
 
 
덧붙이는 말

이진숙 | 민주노총 인천본부에서 정책교육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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