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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 제26호

되살아나는 재벌특혜 규제완화, 규제프리존법

  •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김태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청문회에 출석한 재벌 총수들
 
2월 임시국회의 특명은 ‘규제프리존특별법(이하 규제프리존법) 구하기’인가? 그 선두에는 박근혜의 아바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있다. 그는 2월 16일 신산업 규제혁신 관계장관회의에서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1년 간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규제프리존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국민의당, 민주당까지 나서고 있다. 국민의당은 규제프리존법이 “경제활성화, 민생을 살리기 위한 법”이라며 박근혜와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 했다. 실제 규제프리존법 통과를 요구하는 지자체 단체장들 중에는 민주당 소속 도지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엔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있다. 여야4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민주당이 다른 법안들을 통과시킬 협상용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도대체 어떤 법이길래 이러는 걸까. 규제프리존법(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은 분당되기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전원이 지난해 5월에 공동 발의한 법안이다. 국민의당 국회의원들도 함께 서명했다. 어수선한 19대 국회 막바지에 박근혜 대통령이 기습 처리하려다가 실패한 뒤 다시 20대 국회에 발의했다.

처음 발의할 때에도 ‘재벌 청부법’이라는 비판이 무성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015년 12월 9일 ‘7대 유망서비스산업 활성화 방안’에서 “서비스산업 특별구역 지정을 통해 지자체 규제완화 경쟁을 유도하자”고 주장했다. 그러자 정부는 일주일 만에 ‘규제프리존 도입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방안’을 제출했고, 뒤이어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실제 박근혜-최순실-재벌 게이트를 통해 진실이 밝혀졌다. 재벌들은 전경련을 통해 미르재단, 케이스포츠재단에 뇌물을 줬고, 그 보답으로 박근혜는 파격적인 특혜를 약속한 것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러한 사실을 특검에 고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재벌 특혜의 정점인 규제프리존법도 같이 폐기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야당들이 오히려 구원자로 나서고 있는 꼴이다.

규제프리존법을 추진하면 야당 또한 박근혜 체제의 공범자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규제프리존법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희생시키는 법이고, 재벌 독식 체제를 더욱 강화시키는 재벌특혜법이기 때문이다.
 

생명과 안전을 파괴하는 독소조항들

규제프리존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광역시·도별 지역전략산업을 선정해 관련 산업 규제를 전국 단위보다 대폭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말 그대로 규제가 없는(free) 지역(zone)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별법이기 때문에 다른 법보다 우선 적용되며, 다른 규제 역시 무력화시킨다. 법안 제4조를 보면 명시적인 금지사항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업행위를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인데, 기업에는 무한한 자유를 주는 반면, 지역 주민과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은 위협한다.

예를 들면, 환경 사고는 그 피해와 복원 비용이 크기 때문에 복원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에 환경정책기본법은 사전 예방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프리존법은 ‘국민의 안전·건강·보건 및 환경에 위해가 발생한 경우와 현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여기서 ‘현저한 위해’의 범위가 모호하다. 결국 위해가 발생한 뒤에나 조치할 수 있다.

규제프리존법은,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규제는 네거티브 방식에서도 예외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세부 항목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에 대한 규제 완화가 명확히 드러나 있다. 병원의 무분별한 돈벌이를 막고, 환자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해 병원이 부대사업을 펼치는 걸 규제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규제 완화를 통해 병원이 의료기기나 의약품을 제조·유통하는 사업을 한다면 병원의 의료진들은 그 기계나 약품을 사용하도록 강요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잉진료·과잉검사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제품이 남용될 위험도 있다. 메르스 사태, 다나의원(C형간염 집단 감염) 사태, 신해철 사망사고 등 무수한 안전사고가 의료민영화·영리화를 배경으로 이미 발생하고 있다.

개인정보도 문제다. ‘비식별화’라는 별도의 개념을 만들어 익명정보가 아닌데도 개인정보보호 규제를 면제해준다. 이미 수차례 개인정보 유출판매 범죄가 있었음에도, 대책은커녕 오히려 상업화를 부추기고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규제프리존법은 환경, 보건의료, 교육, 개인정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규제완화

©경향만평
 
규제프리존법 추진론자들은 규제프리존을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실체 없는 창조경제론의 반복일 뿐이다. 특정 산업을 활성화하려면 그 산업에 특화해 법제도를 정비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현재 규제프리존법은 지역별 나눠먹기로 산업을 선정한 뒤, ‘규제프리존 지역추진단’에 운영을 전담시킨다. 이 ‘규제프리존 전담추진단’에 차은택이 총괄책임자였고, 재벌이 전담 지원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들어갈 계획이었다. ‘규제프리존’은 결국 재벌프리존, 재벌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주는 지역이다.

또한 특정 기업이 사업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가 있으면 정부에 직접 폐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실증특례’ 조항도 있다. 국회를 거치지 않고 기재부 장관이 다른 부처 및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특위의 심의·의결만 거치면 규제를 폐지할 수 있다. 지역에 진출한 재벌대기업이 각종 재벌 규제 조치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면 속수무책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이는 재벌이 주도하는 의료민영화의 우회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부는 병원의 돈벌이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해주고,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해주는 등 의료민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규제프리존에서는 그간 반발에 부딪혔던 병원 부대사업에 대한 규제가 더욱 완화되기 때문에 의료기기와 의약품 산업에 진출한 삼성이 병원에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다.

이런 문제는 특정 지역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지역균형 발전의 취지로 규제프리존에서 수도권을 제외했다. 그러나 산업발전이라는 취지로 보면 산업이 집적된 수도권의 규제완화 효과가 더 크다. 조만간 수도권도 역차별이라는 근거로 규제완화를 요구할 것이다. 이렇게 지역 간 규제완화 경쟁을 부추겨 결과적으로 전국의 규제를 모두 약화시킬 것이다.
 

주술을 멈춰라

규제프리존법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민주당이 바보가 아니라면,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추진한 규제프리존을 바로 통과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가 탄핵되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재벌들은 또 다시 규제완화 요구를 반복할 텐데, 현재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들은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규제완화를 통한 지방경제 활성화도 본질은 지역적 수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다름 아니다.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초국적 자본의 유치를 위해 각국이 노동권과 공공성을 파괴해 온 것처럼, 재벌 규제완화를 위해 각 지방이 서로 경쟁하라는 것이다. 네거티브 방식으로 경쟁적으로 규제완화를 하자는 전략은 이미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시초였다.

우리는 이런 신자유주의 체제의 결말을 이미 확인했다. 그것은 일자리 없는 성장, 재벌의 나홀로 성장일 뿐이었다. 나아가 노동유연화, 법인세 인하 등 경제위기를 과도한 노동규제, 즉 노동자 탓으로 돌리고, 노동자를 쥐어짜는 데에만 활용되기도 했다. 실제 규제프리존법의 모델인 일본의 국가전략특구 정책은 해고규제 완화, 법인세 감면 등을 핵심 규제개혁으로 내걸었다. 나아가 이는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마저 위협한다. 세월호의 불법 증·개축, 부실고박과 과적이 정부의 규제완화 속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겨우내 이어진 광장의 촛불은 완전히 다른 사회를 요구해왔다. 그것은 비단 대통령 하나 물리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재용 구속과 박근혜 탄핵을 넘어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만들어 온 재벌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재벌에 묻고, 박근혜 체제의 적폐인 친재벌 정책들을 폐기시켜야 한다. 

당연하게도 야당들의 규제프리존법 추진은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모순이자, 촛불에 대한 모욕이다. 덩달아 심판 당하지 않으려면 당장 폐기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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