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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 제3호

조직화 경쟁을 넘어 질적인 도약을!

노동자운동연구소 워크숍 <학교비정규직 운동의 과거·현재·미래>

  • 송민영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2000년대 이후 가장 큰 노조 조직화 성과를 내고 있는 직종은 어딜까? 단연코 몇 손가락 안에 학교비정규직을 꼽을 수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학교비정규직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망과 방향을 토론하고자 워크숍을 진행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한지원 연구실장은 학교비정규직 운동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가야 할 바를 담은 <학교와 노동운동>을, 이진우 연구원은 <학교비정규직의 현장투쟁 활성화 전략: 노안 의제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이시정 사무처장은 교육공무직본부의 역사와 현재 쟁점에 대해 토론했고, 공공운수노조 충북본부 문설희 조직국장은 학교비정규직 운동의 강화와 지역운동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교육공무직본부를 비롯한 공공운수노조 활동가,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이 의견을 나눴다.
 

성공적인 확장과 변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체 교직원 중 약 43퍼센트를 차지하며, 40만 명에 달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많다. 조리사, 영양사, 사서, 사무, 강사 등 5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직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여성노조와 공공연맹에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기 시작해 8000명에 가까운 조합원들이 생겼고, 2010년대에 들어 진보교육감 당선의 정세를 타고 7만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공공운수노조, 전국학비노조, 여성노조 등에 속해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총파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교육공무직제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농성과 해고·직종통폐합 등의 현안 대응 투쟁을 벌이고 있다. 여러 시·도교육청과 임금 및 단체협약을 맺었고, 상당한 처우 개선이 이뤄졌다. 여기에 힘입어 조합원이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학교비정규직 운동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열악한 처우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극복 의지, 활동가들의 헌신성이겠지만, 이와 더불어 진보교육감이나 의회 등의 정치적 흐름을 활용하고, 학교에 공공기관으로서의 책임감을 요구하며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 낸 데 있다.
 

부정적 요소들

이처럼 성공적인 조직 확대와 처우 개선을 이뤄왔지만, 부정적 요소들도 존재한다.

우선은 업무를 둘러싼 교사와의 갈등 가능성이 있다. 19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 속에서 추진된 ‘교육업무경감대책’으로 인해 학교비정규직이 급증했다. 교사 수를 늘리지 않고 수업 외의 업무를 비정규직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업무경감이 이뤄진 것이다. 학교업무에 대한 가치평가와 노동자 간 차별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교육과 교육노동의 상에 대한 논의 없이 교사와 학교비정규직 간의 갈등 해결은 어렵다. 제조업이나 여타 산업의 하청·파견 노동은 자본이 사용자성을 회피하고 인건비를 경감하기 위한 꼼수라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있지만, 학교에서의 비정규직 노동은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교무보조’ ‘특수보조’라 명명하는 것은 이를 반영한다. 수업 외 업무가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교사와 학교비정규직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의 다양한 노동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는 공무직화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2013년 기준 학교회계직 인건비 총액은 2조 6000억 원인데, 지방공무원 대비 80퍼센트 수준으로 인상하기 위해서는 약 3조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 재원이 2014년 기준 2조 6000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교육공무직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또 한 가지 갈등 요소는 노조 간 경쟁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민주노총 내에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전국여성노조, 서울일반노조 등 서로 다른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 이로 인해 경쟁적 조직 확대가 이뤄지는 순작용도 있지만, 투쟁 과정에서의 갈등이나 조합원 뺏기와 같은 부작용도 심각하다. 민주노총에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단결 및 통합 방안 논의를 위한 TF팀을 꾸렸지만, 빠른 시일 내 통합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당분간은 공동교섭·투쟁 틀인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기 진보교육감 시대에 들어서서는 진보교육감들이 학교비정규직과의 연대보다는 견제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감 입장에서는 학교비정규직이 처우가 예전처럼 열악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처우 개선이 크게 표시 나는 일이 아니기도 하고, 무상급식·혁신학교와 같은 상징이 이전보다 무뎌진 조건에서 안정적인 교육행정을 위한 교육청 관료와의 동맹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맹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노조가 사회적 의제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의 역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운동의 다음 도약은 학교 내 노동의 가치 재평가를 노조가 주도하면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학교 내 노동은 크게 ①수업 ②무상급식, 누리과정 등의 교육복지 ③주민직선 교육감이나 학교운영위 등의 지역자치 ④행정, 시설관리 등 학교시스템의 유지 및 관리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학교비정규직은 네 영역 모두를 포괄하는데, 바로 이 점에 주목해 보아야 한다. 학교 시스템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며, 각 주체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진 단체협약을 맺기에도 버거웠기 때문에 이런 역할이 뜬 구름 잡기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교육공무직법, 호봉제 등의 요구는 상당한 사회적 힘이 없이는 쟁취하기 힘들다. 또한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한 개선뿐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한다는 자긍심이 조합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으로 열려있는 노조가 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의 지역조직들, 지역시민사회와 유연하게 결합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노조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안전 의제로 노조 활성화

어떤 의제로 사회적 이슈를 만들고 노조를 활성화 할 수 있을까? 이진우 연구원은 노동안전 의제를 제안했다. 제조업에 근골격계 질환 직업병 인정 투쟁이나 주간연속 2교대제 투쟁 등의 사례가 있다면 학교비정규직에서는 급식노동자들의 노동안전 문제를 제기한 사업이 있었다. 2012년 강원도에서의 실태조사, 2014년 인천의 ‘행복한 학교 만들기’ 근골격계 사업, 충북의 ‘건강안전학교급식운동본부’를 통한 조리종사원 배치기준 개선 연구 등이 그것이다.

노조가 주도하는 학교급식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의 임단협 투쟁과 다른 방식의 노조활동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기관이 주도하는 형식적인 조사가 아니라, 조합원들이 교육을 통해 인식을 전환하고, 스스로 노동 현장을 통제하며 사회적 이슈도 만드는 활성화 전략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자

이시정 사무처장은 교육공무직본부의 역사와 쟁점을 소개하며 학교비정규직 운동의 고민을 나누었다. 지역운동이나 노동안전사업에 대한 의지나 계획은 있지만 현안에 밀려 추진하기 쉽지 않으며, 복수노조 상황에서 조합원 수 경쟁을 넘어서 내용적인 대표성을 갖추는 것도 고민이라는 점을 밝혔다. 질적인 성장을 위한 간부 교육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직종이 있기 때문에 직종 간 갈등 해결도 중요한데, 지역 단위로 운영되는 지부와 직종별로 운영되는 분과를 어우르는 조직 운영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문설희 조직국장은 충북에서 ‘교사, 교육공무원, 학교비정규직, 우리 모두 교육노동자’라는 문구와 함께 셋이 어깨를 걸고 있는 배지를 전교조, 공무원노조, 학교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함께 달고, 공동의 실천을 벌였던 2012년 활동을 이야기했다. 이를 통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싸워도 깨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파업 기간에 조합원 수가 계속 늘었다. 교사, 공무원들과 서로 이해하는 부분도 많아졌다. 지역 차원에서는 신규 조직의 총파업이 활력을 불어넣었다. 

2014년의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 만들기’ 사업에 이어, 충북도민 160만 명 중 급식을 먹는 27만 명을 ‘우리가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을 갖고 친환경 음식이나 무상급식을 고민하는 단위들과 공동으로 실천해보자는 아이디어도 제안했다. 

한국 노동운동은 그동안 정규직, 대기업, 남성 중심이라는 점에서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되어 왔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은 이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적 의제를 주도하고 노동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길 기대한다. ●
 
덧붙이는 말

노동자운동연구소는 매월 노동조합운동의 혁신과 발전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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