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기획
  • 2017/03 제26호

여성 인력 활용이 아닌 여성의 권리를 위해

  • 사회진보연대 노조페미니즘팀 정지현

뜨거운 감자, 임금격차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의 공약 중 단연 돌아봐야 할 것은 ‘최저임금 인상’과 ‘남녀 평등한 임금 지급’이다. 비록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은 평등으로 가는 역사를 거스를 수밖에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샌더스의 공약이 더욱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샌더스 등장 이전부터 임금격차는 미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였다. 2015년 7월 구글에서 일하는 여성·남성 간 임금차별 폭로를 시작으로 불거진 임금격차 문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기업 CEO와 직원들의 임금 비율을 공개하는 안을 승인하면서 더욱 달아올랐다. 임금격차의 공개는 바로 소득불평등 문제의 대안으로 등극했다. CEO와 직원 간 임금격차 공개 규정 통과는 성별 임금격차를 공개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강조하면서 기업들의 성별, 인종에 따른 연봉 격차 공개가 도입되기도 했다. 성별 임금격차 공개에 대한 입법은 영국,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에서도 추진됐다. 영국은 2018년부터 남녀 임금격차 공개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2016년 10월에 아이슬란드에서, 11월에는 프랑스에서 임금격차에 항의하는 여성들의 조기퇴근 시위가 있었다. 이제 성별 임금격차 축소는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다. 

임금, 직업, 고용형태 등 경제적 지위를 측정하는 기준 중에서도 노동의 시장가격인 임금은 경제적 지위를 측정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그러다보니 임금격차는 심화되는 소득불평등 문제를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가 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당선되고 유럽에서는 우익 정당들이 득세하고 있는 이 시기에, 더욱 심각해질 차별과 불평등의 현실을 생각하면 임금격차는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확연히 낮은 임금을 받는 지위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폭로를 시작으로 여성의 권리를 말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성별 임금격차로 본 한국 여성의 현실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36.6퍼센트 정도로, OECD 평균 15.3퍼센트에 비해 그 격차가 심각하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 지수가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하다는 통계는 15년 가까이 매년 접하는 사실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되었지만 여전한 성별 임금격차는, 지난해 여성혐오 논란이 과잉된 논쟁이 아니었고 아직도 한국 사회가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낙태죄 폐지나 성폭력 문제뿐 아니라 일터에서의 평등을 만들기 위한 시작점으로 성별 임금격차의 폭로는 중요하다.

남성과 달리 여성 노동의 생애 주기는 출산과 육아 등으로 중간에 공백을 보이는 ‘M자형 곡선’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20대에서는 비슷하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성별임금격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40대에는 최대치에 이른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20대의 경우 성별 임금격차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이전보다 대졸자가 많아지면서 고학력 여성이 늘어났는데, 이들은 여성에게 특히 좁은 대기업의 취업문을 피해 임금이 적더라도 비교적 차별이 적은 교사나 공무원과 같은 직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업종 자체의 출발선에서부터 쏠림 현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성별 임금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격차가 벌어지는 요인으로 비정규직의 증가와 영세기업체에 종사하는 경우, 그리고 노동조합 가입비율이 적다는 점들을 들 수 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성별임금격차가 최대치에 이르는데, 핵심적인 이유는 경력단절이다.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이 30대 후반부터 40대에 이르러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경우, 대부분이 저임금의 일자리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나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체계 속에서 경력단절로 인한 낮은 근속기간은 임금격차의 핵심 요인이 된다. 여기에 30대보다 더 늘어난 비정규직 일자리와 영세기업체 종사 비중, 낮은 노조 가입률 역시 이 시기의 임금격차를 늘리는 데 일조한다. 이때의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성별, 고용형태별, 기업별로 가장 불리한 조건에 위치한다. 50대에는 40대에 비해 성별격차가 주춤하지만 여전하고, 60대에 이르러서는 남녀 모두 비정규직화가 확대되어 전반적인 임금하락이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임금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인포그래픽 ‘한눈에 보는 성별 격차의 진실’ 참고) 

이처럼 한국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큰 이유는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이 저임금 산업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력단절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과 함께 여성의 빈곤화, 여성노동의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여야 한다. 
 
3.8 여성의 날 ‘3시 STOP 행동’ 포스터 중 ⓒ민주노총
  

해법은 어디에?

성별 임금격차는 악화된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여성정책은 어떠했는가. 출산율 하락으로 노동인구가 감소하자 경제 성장을 위해 여성고용률을 높이는 유연한 비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었고, 여성이 취업했을 때 발생하는 돌봄노동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사회서비스 정책을 제시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자 일·가정 양립이라는 미명 아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보육지원과 육아휴직 장려 정책을 시행했다. 노무현부터 박근혜까지 모든 정부가 ‘여성 인력 활용’이라는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여성을 저임금 주변부 일자리에 채워 넣는 노동시장 구조를 계속 가동시켰을 뿐이다. 이는 여성 인력 돌려막기에 불과하다. 

여성 문제의 해결은 보육지원이나 육아휴직 같은 여성에 대한 특수한 복지 정책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동안의 여성정책은 여성을 일하는 노동자로 설정하고 만든 것이 아니라, 보육과 재생산을 당연히 담당해야하는 존재로 설정하고 만들어졌다. 여성이 온전한 한 사람의 노동자,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사회와 노동시장 전반을 바꾸어야 한다. 때문에 여성들의 자기 조직화와 사회적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먼저 여성들의 자기조직화를 위해서는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을 극복해야 한다. 2015년 고용노동부의 노조조직현황 통계에 따르면, 노동조합 조직대상 근로자수 1902만여 명 중 전체 조합원 193만여 명으로 전체 노조가입률은 10.2퍼센트에 불과하다. 여기에 2017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조직현황보고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수 73만 4000여 명 가운데 여성조합원이 17만 7000여 명으로 민주노총의 여성 조합원 비율은 24퍼센트 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2010년 고용노동부의 노조 조직 현황 통계에서 전체 여성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5퍼센트였고 지금까지도 크게 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권리를 말할 수 있는 기회로서 노조할 권리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때마침 민주노총에서는 3월 8일에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3시 STOP’ 행사를 준비 중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성별 임금격차의 문제를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 시작된 것이다. 여성 인력 활용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육아와 돌봄을 여성에게 전담시키는 한국사회의 작동 방식을 넘어서야 한다. 여성이 2등 시민이 아닌 1등 시민의 권리를 가지고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길을 3.8 여성의 날과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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