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7/01 제24호
촛불은 진화하고 있다
박근혜 게이트로 뉴스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요동치는 정국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에 서 있다. 우리 모두가 230만의 촛불에 압도당했으며, 대구에서도 5만의 촛불로 집회의 새 역사를 써 냈다.
박근혜 탄핵이나 퇴진을 넘어서 더욱 다양한 대중의 요구가 올라오고 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 동안 쌓인 구조적인 폐단을 들추어내고 청산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내 일터인 성서공단과 주거지인 성서지역으로 눈을 돌려 보면, 저 거대한 촛불이 각자의 현장을 바꿔내는 원동력으로서의 힘은 커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의 민주주의가 몰락한 것에 대한 저항이 각자의 현장으로 전이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대구 성서지역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성서지역 노동자·주민 기본권 보장 공대위’(성서공대위)는 12월 매주 수요일 공단에서 촛불을 들기로 했다. 잔업이 그나마 없는 수요일, 퇴근길에 성서공단 노동자들과 함께 촛불 마당이 펼쳐졌다. 추웠지만 소소한 촛불은 타오르고 있다.
성서지역 세 번째 시국촛불은 학생과 주민이 더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넓혔다. 우중충한 날씨에 급기야 밤에는 겨울비를 맞으면서 촛불을 켰다. 고등학생들의 공연과 발언, 그리고 주민의 자유발언, 더욱이 행진을 해서 함께하고 있는 노동자의 힘찬 발언까지 1시간 30분을 넘긴 촛불집회를 소화해냈다. 재벌은 공범이 아니라 주범이라는 발언이 있었고, 누구보다도 더 많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고등학생은 참정권이 쟁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성서공대위 활동을 돌아보면 학교와 공장을 키워드로 들 수 있다. 먼저 대구교육청과 한 학교 교장의 세월호 수업 교사 탄압에 맞선 1인 시위를 벌였다. 또한 촛불정국에 교내 대자보 게시를 불허한 학교를 항의 방문해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냈다. 민주주의가 교과서의 껍질을 깨고 나와 학교 민주화가 거세게 불어 닥치길 소망했다.
지금 성서공단에는 금속노조 삼우정밀지회가 천막 농성 중이다. 노동자들은 노조가 설립되기 전에 거지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색이 바랜 작업복에 1일 1개 지급이 되어야 할 장갑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사비로 구입했으니 민주주의는 언감생심이고 기계보다 못했다고 한다. 노조로 모아져 임금과 작업환경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 겨울 천막농성에 돌입한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인권과 노동권은 학교와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 이제 거대한 촛불이 학교와 공장으로 번져 걷잡을 수 없는 들불로 활활 타올라야 한다. 1989년 전교조 조합원들이 잡혀 갔을 때 학생들이 뛰쳐나왔던 것처럼,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폭발적인 노조 건설을 이루어냈던 것처럼. 아래에서부터 시작되어 타오르는 촛불이 학교와 공장뿐만 아니라 각자의 현장을 바꾸는 촛불로 태어나야 한다. 닫힌 문을 열어젖히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