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사회운동
  • 2016/11 제22호

권력의 파국, 통치의 붕괴

민중의 투쟁으로 전망을 개척하자

  • 정영섭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가겠습니다. (…)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 노후가 불안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 될 때 국민행복 시대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국민도 기초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 맞춤형의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으로 (…) 인류평화 발전에 기여하고 기쁨을 나누는 문화, 새 시대의 삶을 바꾸는 문화융성의 시대를 국민 여러분과 함께 열어가겠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 중
모두 거짓이었다. “진실한 사람을 뽑아 일하지 않는 국회를 심판해 달라”던 대통령의 호소는 정권 심판의 총선 결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었고, 정책결정자가 따로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정권도 더 이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다.
 
 

끝없는 추락

콘크리트 지지율은 모래성처럼 힘없이 무너졌다. 총선 직후엔 30퍼센트 아래로 내려가더니,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10퍼센트대로 추락했다. 하야 또는 탄핵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69퍼센트에 이르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렀다(10.27. 미디어오늘 보도). 지역과 세대를 불문하고 철저하게 정권에 등을 돌렸고 핵심 지지층인 보수층마저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권력자에 대한 배신감, 이 나라에 산다는 것의 부끄러움, 국정유린에 대한 분노, 허망함 등이 회오리치고 있다. 북한엔 핵무기가 있고, 남한엔 ‘최순실 핵폭탄’이 있다는 이야기처럼 사태의 파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물론 국정농단 비선 실세 최순실 사태가 직접적인 뇌관이다. 외교·안보정책부터 국내 정책과 재벌과의 거래, 대통령연설문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괴 인물의 정체가 까발려지고, 매일 터져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에 국민들은 충격 받고 있다.

최순실 사태가 뇌관으로 핵폭발을 일으켰다면 폭약은 무엇인가. 이 사태 이전의 여론조사들은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과 소통 미흡을 꼽고 있다. 역시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 실패와, 이해를 반영하고 조정하는 정치에 대한 지배집단의 무능이 거대한 폭약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생도, 민주주의도, 평화도 없다

‘창조도 없고 경제도 없는’ 창조경제 레토릭 아래 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수출은 20개월 연속 감소 추세고, 올해 성장률은 2퍼센트대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내년 전망을 2.9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낮췄고, 민간경제연구소들의 전망치는 이보다 훨씬 낮으며 1퍼센트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임금노동자 1950만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월급 200만 원도 못 받고 있다. 실업률은 11년 만에 최고치에 달하고 있다. 청년층 고용률은 41.5퍼센트밖에 되지 않고 청년실업률은 10퍼센트에 달한다. 청년일자리 창출 목표는 2017년까지 50만 개였지만 2015년까지 6만 8000 개를 만들어내는데 그쳤다. 낮은 고용률, 불안정한 일자리, 저임금이 만연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민생보다는 재벌 친화적인 정책만 고수해왔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만 봐도, 총수 일가나 경영진의 사재 출연 등 책임 지우기는 없고 국민의 돈으로 자금을 지원한다. 구조조정이랍시고 직원을 줄이고 광범위한 하청노동자들을 대책 없이 잘라내서 6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그 숫자만큼 더 잘려나갈 것이라고 한다. 살기 어려운 서민들이 재벌 부실까지 떠안고 있는 것이다. 민생 대책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2013년부터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놓고 공공·금융·노동·교육 4대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목표했던 잠재성장률 4퍼센트, 고용률 70퍼센트, 국민소득 4만 달러 기반 마련은 헛구호로 끝났다. 오히려 성급하고 무리하게 쉬운 해고와 파견근로 확대로 대표되는 노동개악을 추진하면서 노동자운동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는 총파업의 된서리를 맞았다. 내용도 반민중적이고 방법도 민주적이지 못한 정책들이 실패를 거듭해온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저항에 대해서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5년형 선고와 백남기 농민에 대한 물대포 살인 진압에서 드러났듯, 공안 통치와 사법부를 동원한 폭압 통치로 일관해왔다. 민중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데는 관심 없고, 재벌 대기업의 수익만 보장하다보니 반대집단에 대한 포섭이나 정당성 확보는 내팽개친 것이다. 통치는 사라졌고 공권력의 물리력에만 의존했다.
 

억지력 확보와 대화를 통한 신뢰구축이라는 소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통일 대박’을 외치던 박근혜 정권은 북핵 문제를 ‘사드 배치’라는 군사적 대결과 ‘북한붕괴론’으로만 일관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나락으로 빠뜨렸다. 제재와 압박, 사드 등 미국의 미사일방어 및 전략무기를 앞세운 군사적 위협, 북한정권 때리기는 북한의 강한 반발과 핵·미사일 실험의 악순환만 불러왔을 뿐 애초 평화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경제 실패, 노동자 민중의 생존 파탄, 민주주의와 인권 파괴, 평화 위협,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외면, 졸속적인 위안부 합의 등 실정만 거듭하던 정권이 최순실 사태로 맞이한 파국은 사실 이 나라 지배집단의 반민중 정책의 파국이요, 반민주 통치의 붕괴다.

여기엔 별다른 견제 역할도 못해온 무능한 보수 야당(민주당, 국민의당)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이들도 소위 중도를 표방하며 노동자 민중의 이익보다는 재벌과 가진 자들의 이익을 앞세워 왔고 정권의 실패에서 반사이익만 탐해왔다는 점에서 공범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퇴진투쟁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새누리당이 특검을 하겠다고 했지만, 시간을 끌면서 보수세력의 전열을 재정비하려는 속셈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최순실을 괴물로 만들어 꼬리자르기식으로 잘라내고 몇몇 대통령 측근들 물갈이로 국면을 넘어가려 할 것이다. 보수야당은 특검으로 청와대도 수사해야 한다고 하지만, 집권세력이 무너져내린 상황을 지속시키고 대중의 분노를 흡수하여 대선에서 이기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민중이 거세게 정치적으로 진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각 사퇴니 거국 내각 구성이니 하는 것도 보수 정치질서를 회복하여 정치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봉합과 수습은 보수 여야가 원하는 것이다.

민중운동이 위기관리의 일부가 될 이유는 없다. 분명한 요구를 앞세우고 일관되게 퇴진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으로 대표되는 자본 중심의 지배질서와 사회체제에 대해 대중은 분노하고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통치권자로서 대중을 속여 오고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고 자격을 상실한 대통령은 내려와야 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퇴진 투쟁을 일관되게 전개하지 않으면 그 후의 국면도 열어낼 수 없다. 노동자 민중이 직접 나서 민주주의를 바로 잡을 때다. 정권 퇴진 투쟁을 통해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면, 결국 다른 누군가 권력을 쥐어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최순실을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을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받게 해야 한다. 끝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국가 시스템을 사유화하고 주무른 실상을 고스란히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최순실-박근혜-재벌들의 추잡한 거래, 재벌과 권력의 유착을 밝혀내고 처벌해야 한다. 몇 백억 돈을 내고 그 대가로 규제완화, 민영화, 노동개악 등 재벌들의 요구를 정부 정책으로 만들어준 정황은 이미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성과연봉제 도입에 맞서 박근혜 정권과 싸우고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백남기 농민을 살해한 공권력에 분명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정권의 국정농단과 그 궤를 같이 해온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로 나아갈 수 있도록 투쟁 전선을 형성하자. 그 일차적 집중은 11월 12일 민중총궐기가 될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연속적 총궐기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노총은 박근혜 하야를 전면에 걸고 철도·공공파업 승리, 노동개악 원천 무효를 위한 총파업·총력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중총궐기투쟁본부를 중심으로 대중의 참여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누구도 믿을 자 없는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의 힘과 투쟁으로 전망을 개척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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