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6/10 제21호

충북지역 노동운동사를 펴내다

이름 없는 그들의 발자취

  • 김용직 민주노총 충북본부 사무처장
매년 민주노총 충북본부 창립기념일이 다가오면 ‘뭔가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 ‘하루하루의 연장일 뿐인데’ 하면서 지나쳤다. 올해도 3월 23일이 어김없이 다가왔다. 그렇지만 올해는 20주년을 핑계로 충북지역본부가 걸어온 역사를 정리하고 싶었다. 민주노조를 결성하기 위해, 그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그들의 발자취는 꼭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이랄까? 물론 젊은 시절 모든 것을 던졌던 그들이 지금은 사용자가 되기도 했고, 내부의 적 어용노조로 넘어가기도 했다. 아직도 현장에서 묵묵히 노동하며 민주노조를 지키는 이들이 훨씬 많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민주노조를 해산하고 소식이 끊긴 채 살아가기도 한다. 

그들의 현재가 아닌 과거를 기록하고 싶었다. 그들의 치열했던 과거를…. 그 과거를 단순히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날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는 작은 바람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들은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2005년 투쟁 담당자가 되고나서 불과 5개월 만에 구속되고, 가장 치열하게 투쟁했던 1년 반의 세월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다. 출소 후 만난 조합원들은 투쟁에 지치고 생계가 파탄지경에 이르러, 이 투쟁의 종지부를 찍어줄 것을 갈망했다. 그렇게 해서 직권조인의 논란 속에 2년 6개월의 투쟁이 위로금으로 정리됐다. 그 마지막 총회 날 조합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섰고, “이 합의서가 이미 법적인 효력이 발생된, 되돌릴 수 없는 합의서”란 답변을 해야 했고, 조합원들은 찬반투표를 가결시켰다. 누구는 욕을 하면서, 누구는 허탈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누구는 고생했다며 악수와 포옹을 하면서 그렇게 강당을 나섰다. 그 뒤로 간부였던 몇몇 이들을 제외하고 만날 수가 없었다.

그 2년 6개월의 투쟁은 그들에게 희망이었을까? 그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을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전면화 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고, 그로 인해 지역의 노동운동은 한 단계 상승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는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난생 처음 쇠파이프를 쥐어보고 전투경찰과 육박전을 치르고, 한 겨울 본사 노숙농성, 노동부 점거농성, 본사 대표이사실과 충북도청 옥상 점거농성, 철탑, 송전탑 고공농성, 고속도로 점거 등등 안 해 본 투쟁이 없었다. 가족들은 투쟁을 위해 생계를 내팽개친 남편을 대신해 돈을 벌러 나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 아이들이 일탈하고, 일부 가정이 파탄 나고, 그 아픔을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충북지역노동운동사는 그들을 위한 역사다. 노동자들이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투쟁한 이름 없는 그들의 발자취다. 이 노동운동사를 통해 그들에게 “정말 고생했다고. 당신들의 그 헌신적인 투쟁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전진해 올 수 있었다고. 정말 고마웠다고.” 꼭 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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