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5/10 제9호

외국인투자의 잔혹한 실상

유치가 아니라 규제를 고민해야 한다

  • 이유미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외자유치가 살길이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외국인투자 관련 규제완화를 통해 오는 2017년까지 외국인직접투자 유치(이하 외자유치) 3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외국인투자 관련 규제혁신 방안에는 투자 제한 업종, 자금·결제 제한 규제 완화 등이 포함돼 있으며 정부는 올해 안에 제도 정비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자본이 부족해 규제완화를 통한 외자유치가 절실한 실정인가? 

한국경제의 문제는 자본 부족이 아니라 과잉된 자본이 실물부문에 투자되지 않고 금융에 투기 되는 것이다.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더 이상 개방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가 사라졌다. 이로 인해 대거 유입된 자본은 정부의 주장처럼 고용을 창출하고 기술력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으로 고용을 위협하고 기술력을 유출시켰으며 매각차익을 노린 투기로 막대한 국부를 유출시켰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외국인투자 자본이 초래한 결과를 평가하고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휘발성이 큰 외자 유입 확대

우선 현재 유입되고 있는 외국인투자자본, 특히 직접투자(FDI) 자본은 어떤 것일까.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다가 2000년대에 등락을 반복했다. 그리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다 2014년 신고금액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역대 최대기록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155억 달러였는데 2014년에는 190억 달러에 달해 200억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투자금액 중에서 서비스산업이 약 6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그 중에서도 비즈니스 서비스업과 부동산 임대업 그리고 금융보험업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들 업종은 최근 몇 년간 투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데, 금융위기 전인 2007년과 2014년을 비교했을 비즈니스 서비스업은 약 4배, 부동산임대업은 약 3배가량 늘었다. 부동산 임대업과 금융보험업 투자는 직접투자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금융투기 성격이 강하다. 

자본시장통합법, 한미FTA, 한EU FTA가 발효된 영향과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수량완화 정책으로 뿌려진 자본이 신흥국을 중심으로 거품을 형성한 것과 유사하게 한국에도 투기자본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최근 몇 년간 유입된 외국인투자자본은 휘발성이 크다. 또한 같은 기간 외국인직접투자를 형태별로 분류했을 때 M&A형 투자가 3배나 증가했다. 매매차익을 노린 단기투자 성격의 자본이 세 배 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투자본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났다. 2013년 기준 외투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액 13퍼센트(456조 원), 부가가치 10.5퍼센트(67조 원), 고용 5.9퍼센트(51만 5000 명)다. 2007년엔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출액 10.2퍼센트(189조 원), 부가가치 5.1퍼센트(28조 원), 고용 1.8퍼센트(28만 2000명)이었다. 금융위기 전인 2007년과 비교했을 때 2013년에 그 비중이 대폭 증가한 것이다. 투기 성격이 강한 외투자본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의 불안 요소가 커졌다는 것이다.


외자유치, 20년의 흑역사

외투자본의 확대가 폐해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는 그동안 외투자본이 벌인 행각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근거가 충분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외투자본은 오리온이나 외한은행의 사례처럼 기업을 헐값에 매입해 구조조정한 뒤 매각하여 막대한 차익을 거둬가거나, 하이디스나 쌍용자동차에서처럼 기술을 유출해갔다. 또한 자동차부품사들인 발레오만도나 포레시아의 경우처럼 자본철수를 무기삼아 노조 무력화와 탄압을 자행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되었다.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핑계로 고용을 위협 당했고, 자본철수 위협 속에서 노동조건 하락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투자본의 행태는 당연하게도 노동자들의 저항을 낳았다. 외투자본에 맞선 투쟁은 때로는 격렬해지기도 했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으나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외투자본을 규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외투자본이 자본철수를 협박하거나, 국제적 생산배치로 파업을 무력화하는 데에 대응할 노동자들의 뾰족한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속노조 사업장인 위니아만도에서는 노동조합이 투쟁하자 사측은 자본철수로 위협했고, 한국 발레공조 노조가 파업했을 때 파업 효과를 축소시키기 위해 사측은 다른 국가에서 생산하는 부품을 들여오려 했다. 이처럼 개별사업장 투쟁만으로 외투자본에 대항하기가 녹록치 않다. 따라서 외투자본에게 노동권을 보장하도록 강제하고, 자본철수를 제약하는 규제책 마련이 필요하다.
 
  
 

외자 규제를 위한 다양한 방법

정부는 외자유치를 위해 외투기업에게 조세 감면을 비롯하여 각종 금전적 이득을 제공하고, 행정이나 노동, 환경 법령에서의 예외적 특혜를 주고 있다. 그러나 다방면의 지원에 비해 외투기업이 준수해야 하는 의무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이들에게 제공되는 특혜를 철폐하고, 외투자본에 노동권 보장을 강제하기 위해 고용에 대한 의무나 페널티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투기업이 국가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고나서 구조조정이나 폐업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면 지원금을 정부에 환급하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경우 외투자본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고용지원금을 받은 사람을 일정기간 내에 해고하면 돈을 물어내야 하는 조항이 있다. 이러한 조항에 근거해 2008년 경제위기 시기 대규모 해고가 발생하자 아일랜드 정부는 외투자본들에게 420만 유로를 받아내기도 했다. 만약 한국에서도 이러한 규제가 도입되었다면 초국적 자본에게 매각된 뒤 6개월 만에 폐업된 오리온전기와 같은 사태를 방지하거나, 최소한 정부지원금을 돌려받기라도 했을 것이다.  

사후에 규제조치를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전에 투기나 기술유출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을 걸러낼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명백하게 기술유출을 목적으로 하는 인수라거나 단기매각차액을 노린 인수라면 사전심의를 통해 제외시켜야 한다. 쌍용자동차의 기술유출 의혹이 다분했던 중국 상하이자동차나, 기업인수 이후 구조조정과 배당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매각하는 행태가 반복된 위니아만도의 사모펀드들을 사전에 심의하여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은 외투자본에 대한 심사기구를 두지 않고 있는데, 미국을 비롯한 일본, 영국, 독일 등에서는 해외자본에 의한 자국 기업인수를 규제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미국의 엑슨폴리오 법은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국자본을 규제하는 법안으로서, 실제로는 국가안보를 포괄적으로 적용하여 거의 모든 산업에 대해 규제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독일은 2009년 폭스바겐이 적대적 인수합병 대상으로 떠오른 사건 이후 ‘폭스바겐법’을 제정해 지방정부가 외국인자본의 기업 인수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처럼 한국 역시 외투자본을 사전에 심의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하여 노동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국내 제도개선을 통한 규제만이 아니라 ILO 기본협약이나 OECD다국적기업가이드라인과 같은 국제기준과 무역협정 내 노동조항에 근거하여 외투자본을 규제하는 방안이 있다. 물론 국제기준과 노동조항은 선언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강제력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협약에 근거해 정부가 외투자본에 대한 제재조치를 하도록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금속노조 사업장인 발레오공조에서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공장을 폐쇄했었는데 이는 OECD가이드라인 4조 6항의 “정리해고를 수반하는 사업장의 폐쇄를 검토하는 경우 … 근로자 대표 및 적절한 정부 당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조항에 위배된다. 노조는 가이드라인에 근거하여 정부가 특별근로감독에 나서 노조탄압을 자행하지 못하도록 나서라고 주장 할 수 있다.  
 

외투자본 규제를 위한 노동자운동의 과제

외투자본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횡포에 맞서는 운동이 필요하다. 정부가 외자유치를 주장하며 관련규제를 완화하려는 상황에서, 그와 반대로 규제를 강화하려면 외투자본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동의지반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운동은 외투자본이 고용창출과 기술력을 이전한다는 환상을 깨고 실상을 폭로하고, 규제 장치를 도입할 것을 정부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 외투사업장 노동조합을 묶어 공동 대응을 준비하고, 외투자본 규제 정책을 마련하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운동을 기획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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