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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 제22호

수습이냐 변화냐

  • 구준모 편집실장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 신속한 수사와 꼬리 자르기로 정리 수순을 밟으려 하고 있다. 해외 도피로 혐의를 부인하던 최순실 씨가 언론을 따돌리고 기습적으로 귀국한 것은 이런 수습 시도를 잘 보여준다.

반면 10월 29일 토요일 저녁 시위에 모인 3만여 명의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일관되게 요구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이 모인 참가자들은 광화문 세종대왕상 인근에서 경찰과 대치했고, 열렬한 이들은 다음날 새벽까지 박근혜 하야를 목놓아 외쳤다.

지금 누구보다 기회주의적인 세력은 보수 언론과 야당인 민주당·국민의당이다. 조중동은 박근혜 정부에게 야권 주도의 특검을 수용하고, 여야가 모두 참가하는 거국내각을 꾸리는 게 해결책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하야나 탄핵은 안 되지만 이 정도 해결책 없이는 국면 수습이 불가능하리라 보고, 정권에 대한 강한 압박에 들어간 것이다. 이런 입장은 사실 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의 대안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전혀 다른 입지의 보수 언론과 보수 야당이 비상시국에 입장의 수렴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2017년 대선에서의 정권 획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해법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이해관계를 보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수구보수의 유일한 탈출로라는 셈법, 지나친 혼란은 유력 야당과 대권주자에게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셈법이 다를지라도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잘 언급되지 않는, 자본의 문제도 있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 주총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되며 후계 절차를 일단락지은 이재용 씨가 최대의 수혜자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는 정경유착의 한 축인 재벌들에 대한 책임 추궁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는 우리를 집단적 혼란과 공허 상태에 빠뜨렸다.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이자 민주화 30년을 앞둔 나라에서 발생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여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일어났던 모든 불행과 역경이 비선의 음모와 보이지 않는 담합의 결과라는 해석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감춰진 것은 밝혀야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모든 의문과 구조적인 문제가 이런 믿음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낡은 질서가 썩어 문드러졌다는 점이다. 권위적 통치의 그늘이 드릴 수 있는 극단을 보여주었고, 정경유착의 구조가 은밀히 지속되고 있다는 걸 만천하에 밝혀주었다. 박근혜만 퇴진할 것이 아니라, 이런 정치를 만들고 옹호한 세력들, 그리고 이런 정권에 돈을 대고 그 속에서 이득을 얻고자 했던 전경련과 재벌까지 모두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정권 퇴진이라는 투쟁의 방향을 분명히 하고, 퇴진으로 변화시킬 구조의 영역은 확장시키자. 위로부터의 수습이냐 아래로부터의 변화냐는 두 선택지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사고하고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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