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세계
- 2016/08 제19호
지금, 중국 노동운동을 보라
2010년 중국 광둥성 팍스콘(애플, HP, 델 등 세계 유수의 전자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대만계 기업) 공장에서 10여 명의 노동자가 연이어 투신자살했다. 스무 살 전후의 젊은 노동자들이었다. 저임금 장시간의 열악한 노동환경, 군대식의 엄격한 노무관리가 죽음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비슷한 시기 광둥성 포산시에 위치한 혼다자동차 부품공장에선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이 공장에서 가장 낮은 1등급 노동자의 기본급은 675위안이었고, 전체 노동자 중 30퍼센트를 차지하는 10대 실습생의 임금은 500위안이었다. 당시 포산시 최저임금 720위안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임금이었다. 한국에서 완성차와 하청공장 간 임금 격차가 큰 것처럼 개혁개방 후 급성장한 중국 자동차 산업의 임금 격차도 상당히 크다.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들은 유일 합법노조인 공회(공식 명칭은 ‘중화전국총공회’로 중국 내에 유일한 전국단위 노동조합이다)의 지도를 받지 않았고, 집단적인 시위를 펼쳤으며,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공회 지도부의 민주적 선출 등을 요구로 내걸었다. 이는 중국 노동자운동의 판도를 뒤바꾸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자본이 가는 곳에 갈등이 따라간다.(비버리 실버)’ 개혁개방으로 산업화와 프롤레타리아트화가 급속히 진행된 중국에서 전투적 노동운동의 출현은 예견된 것이었다. 2010년대 중국 노동자들의 저항은 광둥성 등 제조업이 밀집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이들은 주로 신세대 농민공(일자리를 얻기 위해 농촌에서 도시로 온 노동자들)이었고, 기성세대 노동자에 비해 권리의식이 강하고, SNS를 통한 소통에 능숙했다. 중국과 세계경제를 지탱하는 연안지대 수출산업의 핵심 노동력이었지만 매우 낮은 임금을 받았고, 노동조건은 열악했다.
경제위기 시대 노동자 저항의 증가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0퍼센트를 상회하던 2000년대 초중반에 비해 둔화되었지만 7퍼센트 정도의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투자와 수출의 증가율은 둔화되고 있으나, 소비 비중이 증가하면서 소비주도 성장으로 변화하고 있고, 서비스업 등 3차 산업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채무가 많고 상환능력이 떨어져 잠재적인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국유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 압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률 저하에 대한 우려를 잠식시키기 위해 중국 정부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개혁을 시도할 것이다. 이는 노동자운동에 대한 통제와 공격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성장가도를 달리던 중국 제조업은 세계 경제위기의 여파에 큰 영향을 받았다. 많은 제조업체들이 자신의 수익 감소를 노동자들의 초과근무와 상여금 혜택 절감으로 인한 상쇄로 매웠다. 또 폐업이나 이전, 합병 등의 구조조정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미약한 보상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아졌으며, 이는 저항의 촉발기제가 됐다.
중국노공통신(China Labour Bulletin)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6월에서 2013년 말까지 총 1171건의 노동자 시위가 발생했다. 이 중 40퍼센트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대부분 광둥성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26퍼센트는 운수업, 특히 택시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시위였고, 그밖에 교사와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투쟁도 빈번했다. 제조업 공장을 중심으로 전개됐던 농민공들의 저항이 공장 밖 공공서비스업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노동자 시위 대부분은 연해지역에서 발생했고, 제조노동자 시위의 85퍼센트는 외자기업을 포함한 민간기업에 집중됐다. 광둥성 선전 지역에 위치한 IBM 공장의 경우, 2014년 3월 1000여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중국계 PC업체 렌샹그룹이 IBM x86 서버사업을 인수하기로 한 후, IBM측이 노동자들에게 제시한 배상 기준이 턱없이 낮았던 게 주된 불만요소였다.
월마트 노동자 네트워크
한편 2014년에 있었던 월마트 중국 매장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은 중국 노동운동이 여성 사업장, 유통서비스업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사측의 일방적인 폐업 및 해고,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단결해 싸웠고, 완전히 승리하진 못했지만 이후 조직력 확대를 위한 토대를 만들었다.
올해 봄 월마트 노동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월마트 노동자 네트워크’를 조직했다. 몇 주 새 1만여 명이 모였다. 2년 새 조직력이 100배로 늘었고, 한 기업 노동자들의 전국적 네트워크는 전례 없는 것이었다. 월마트 노동자들은 사측이 유연하게 노동시간을 분배하고, 연장근무에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노동시간제를 도입하려 하자, 7월 현재까지 전국 곳곳에서 포괄노동시간제 철회, 식대 지급, 기존 기업공회 대표 사퇴와 지도부의 민주적 선출을 요구하며 투쟁을 잇고 있다.
앞으로 수출 감소와 소비 증가 등으로 중국의 성장에서 유통부문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생산성 향상을 명목으로 한 유통업계 경쟁과 노동착취는 극심해질 것이다. ‘신경제’로 묘사되는 3차 산업 발전에서도 노동자들의 해묵은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오늘도 지속되는 투쟁
올해 1월 중국 내 노동자 파업과 시위는 예년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500여 건이었다. 제조업과 건설업, 광산업 부문 노동자들이 춘절 전에 체불되어있던 임금을 받기 위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개혁개방 이후 국유기업 노동자들의 반사유화 투쟁, 2010년 혼다자동차 농민공 파업 이후의 일련의 상황이 오늘날 중국 노동자운동을 만들어왔다. 이제 공회 개혁이나 노동자 조직화는 사회의제가 되고 있고, 파견노동자들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노동권에 대한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다. 나아가 ‘노동자가 주인’이라는 사회주의 노동자로서의 정서, 집단적 정체성은 신세대 농민공의 강한 권리의식과 결합되어 자생적 노동운동 확산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처럼 젊고 적극적인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오늘날 중국이 자본과 권력이 담합한 체제로 전락하고 있다는 구조적 비판과 함께, 부패한 관료들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표출한다. 또한 공회를 우회해 다양한 형태의 비공식적 노동자 조직을 만들고, 인터넷을 통해 빠르고 광범위하게 소통하며 폭넓은 사회적 공감도 만들어 내고 있다.
공회 개혁은 가능한가
공회는 중국공산당에 종속적이고, 노동자들과 기업의 중재자처럼 존재해 왔다. 개혁개방 이후 조직의 양적 확대와 간부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한계가 명백했다. 농민공들은 공회가 자신들을 대표하는 조직이라 여기지 않기 시작했다.
이제 중국 노동자계급은 몇 가지 과제를 안게 됐다. 우선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나 정서와 너무 멀리 떨어져 대표성과 신뢰를 잃고 있는 공회의 개혁이 필요하다. 공회 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공회가 명실공히 농민공의 대표 조직으로 거듭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자본과 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조합의 위상을 구축해야 한다.
2600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광둥성 총공회의 경우 직접선거를 확대하는 등 내부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기업별 전임자를 상급 공회가 직접 파견함으로써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등 개혁을 시도해왔다. 또 단체교섭을 실질화 하기 위해 ‘기업민주관리조례’를 만드는 작업과 신세대 농민공 조직화를 위한 사업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공회의 자주성·민주성 강화라는 과제가 만만치 않다. 광둥성 총공회의 개혁 시도에 대한 공회 중앙이나 타 지방 공회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개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가운데, 공회가 노동자들을 대표하고 교섭할 수 있는 시스템은 미비한 상태에 놓여 있다. 노동시장 규제를 위한 수단이 미비하고, 실제 협상을 할 사용자단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기업공회에 파견한 전임자가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투쟁을 이끌기보다 쟁의를 통제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크다. 공회는 당의 지도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해야 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기에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도 강하다.
독립노조 건설에 대한 논의도 있지만 그 미래는 불투명하다. 점증하는 시위를 적극 관리하려고 하는 중국 정부는, 공회를 우회한 저항들에 대해서는 탄압의 칼날을 겨누고 있다. 노동NGO나 격렬한 투쟁을 주도했던 몇몇 활동가들은 여전히 구속되어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중국 노동자운동이 민주적이고 조직적인 대중운동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우선 집단적이며 권리의식이 강한 신세대 농민공이 노동시장의 주력군으로 성장했고, 이들의 집단적 저항은 사회주의 유산을 원천으로 한다는 점에서 중국 내에서도 역사적 정당성을 지닌다.
동아시아 국제연대가 필요하다
이처럼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중국 노동자운동은 가능성과 난관을 모두 안고 있다. 한국 사회운동 입장에서도 인식의 변화와 실천적인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중국 노동자의 저임금이 한국 등 아시아 노동자들을 ‘바닥을 향한 경주’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중국 노동자운동의 성장과 노동조건의 개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계 경제에서 동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진 만큼, 동아시아 국제연대의 강화는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대안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한국 사회운동은 중국 노동자운동에 주목하고 이들의 저항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정서란 여전히 무시 혹은 공포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러한 관점으론 결코 한반도 주변 정세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중국 노동자운동의 변이를 유의 깊게 지켜보고 민주적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관계를 맺어나가야 한다.
노동조합 차원의 교류 확대도 필요하다. 북미서비스노조(SEIU)는 중국 공회와 접촉하면서 현지 진출 기업에 대한 노조 조직 등을 지원하고 있는데, 월마트에서 노조를 조직하여 역으로 중국에서의 조직화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 그것이다. 노동조합의 국제연대는 초국적기업을 보다 힘 있게 통제할 수 있게 한다. 한국의 노조 역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나 한국과 중국에 동시에 진출해 있는 초국적기업의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제조업 위기와 자본 유출에 대해 국수주의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은 언제나 산산이 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때 이중성을 안고 있는 상급공회보다는 사업장 내 활동가들과 연계를 강화하는 게 보다 바람직하다.
국제적인 노동기구, 노동조합, NGO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중국에 개입하고 있다. 중국 내 자생적 노동자운동의 이념적 지향엔 이런 개입이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대안적인 세계 질서를 그리는 사회운동이 중국 내의 활동가들, 비판적 지식인들과 교류하고 연계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민족국가의 틀에 갇히지 않는 동아시아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전망 역시 열릴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