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6/02 제13호

민중총궐기 체포·조사 가이드

  • 이상철 민주노총 강원본부 조직국장
경찰청은 지난해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 당시 불법·폭력집회에 참여한 혐의로 1097명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최대 규모다. 2008년 촛불집회는 6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인원이 점차 늘어난 것이고 ‘민중총궐기’는 단 하루 개최된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것이라 애초 비교가 안 된다. 게다가 이상원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진척 상황을 두고 “부산이 목적지라면 아직 천안 정도밖에 못 간 상태”라 하는 걸 보니 수사 대상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나는 수사가 천안까지 가기 전, 어림잡아 수원 부근인 작년 12월 중순 집 앞에서 체포됐다. 경찰청이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하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그동안 생길 미래의 체포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자 팁 몇 가지를 전달하려 한다. 

팁 하나. 목소리가 크면 유리하다? 체포 당일,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자마자 낯선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였다. TV드라마에서나 보던 ‘영장’을 보여주기에 소중한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 사진을 찍으려 하자 갑자기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다. 할부가 반년이나 남은 핸드폰을 빼앗기면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애잔한 마음이 들어 왜 그러냐며 소리 질렀다. 주택가의 평온한 아침, 괴성이 울리자 동네 주민들이 놀래서 뛰쳐나왔다. 당황한 경찰이 핸드폰은 빼앗지 않겠다고 해 사태는 잠시 일단락됐다.

팁 둘. 술 사먹을 돈으로 옷을 사자! 진정하니 바로 차 태워서 경찰서로 이동해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관은 민중총궐기 당일 찍힌 사진을 보여주면서 본인이 맞는지 물어봤다. 흔한 얼굴이라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진짜 문제는 얼굴이 아니라 신발과 옷에 있었다. 두툼한 수사 보고서엔 몇 달 전 행적들이 찍힌 사진이 있었는데, 죄다 같은 신발 같은 복장이었다. 대량 생산된 공산품만으로 개인을 특정하긴 어렵지 않겠냐는 반박을 하려다, 사진 속 신발과 가방을 지금도 그대로 착용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술을 줄이고 그 돈으로 옷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팁 셋. 사랑할수록, 중요한 순간엔 연락하지 말자. 조사 중 민중총궐기 당일 내 핸드폰 통화기록을 죄다 뽑아왔다. 소중히 간직한 핸드폰이 결국 내 뒷통수를 친 격이었다. 조사관은 번호를 하나씩 부르며 누군지, 같이 있었는지 캐물었다. 도저히 모를 수 없는 번호라 솔직히 말하고 나니, 자괴감과 동시에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선 가급적 연락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공안당국과 경찰이 이토록 광범위하게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운동에 대한 탄압 강도를 높이는 이유는 자명하다. 정부와 자본이 꾀하는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에 맞선 투쟁의 중심인 민주노총을 심리적으로 제압해 저항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다. 고강도 탄압 앞에 현명한 대처를 하고 나아가 위축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민중의 삶과 노동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변함없이 꿋꿋하게, 웃음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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